최저임금 차등 적용으로 경쟁력 확보 의견에 논쟁 가속화

저출산, 고령화로 촉발된 인력난 완화를 위한 대안으로 조명받는 외국인 노동자 활용방식을 둘러싼 이견이 가속화되고 있다. [사진=민주노총 제공]
저출산, 고령화로 촉발된 인력난 완화를 위한 대안으로 조명받는 외국인 노동자 활용방식을 둘러싼 이견이 가속화되고 있다. [사진=민주노총 제공]

[뉴스캔=손영남 칼럼니스트] 가히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이어가고 있는 우리나라를 보며 선망의 눈길을 보내는 나라들이 적지 않다. 덕분에 치솟은 어깨가 좀처럼 내려앉질 않고 있지만 그렇다고 근심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저출산과 고령화로 이어지는 극단적인 인구감소세다. 여러 해외언론들이 한국의 소멸까지 논할 정도로 유례없는 이 사태는 현재 별 해법 없이 진행 중인 상황. 다소 과장된 감은 있지만 해외언론들의 우려가 허황된 것만은 아니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4분기 0.65명, 연간 기준으론 0.72명으로 통계집계 이래 가장 낮았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에 정부는 출산 장려를 위한 다각적인 대책 모색에 나섰지만 현재로서는 뾰족한 해법을 못 찾고 있는 게 사실이다. 문제 해결이 여의치 않으니 상황이 지속될 밖에 없는 형국이다. 여성들이 출산을 기피하는 이유로 여러 요인이 거론되지만 개중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는 것이 여성의 가사·육아 부담이다.

아이를 출산한다 해도 그에 따르는 시간적, 경제적 부담이 너무 커 그를 감당하기 힘들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이 불분명하다는 것이 여성들이 출산을 기피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이라는 것이다.

이에 사태 해결을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이 검토되었지만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거론된 것이 외국인 가사도우미의 활용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5월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 검토를 지시하면서 활기를 띠고 있는 이 정책은 고용노동부가 외국노동력 확보를 위해 허용된 비전문취업(E-9) 비자에 ‘가사·돌봄서비스업’을 추가하겠다고 밝힘으로써 힘을 얻고 있다. 특히 해외에서 이 방식이 효율적임이 입증된 터라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평을 얻고 있다. 

우리보다 앞서 이를 적용한 홍콩의 경우 외국인 가사 도우미의 임금이 충분히 낮아진 뒤 고용이 늘어 어린 자녀를 둔 내국인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이 크게 높아졌고, 오스트리아에서도 상대적으로 임금이 적은 외국 국적 간병인 고용이 늘자 부모 간병에 따른 자녀의 경제 활동 제약이 완화된 사례가 그것이다. 정부는 이런 방식으로 국내 저출산 문제에 대응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걸림돌이 적지 않아 골머리를 앓고 있다.


◆ 국제노동기구 권고안대로라면 차등 적용은 불가


외국인 노동자의 가사도움을 활용하는 방법이 부각되자 국책은행인 한국은행 역시 이와 관련된 방안을 연구하기도 했다. 지난 3월 5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돌봄서비스 인력난·비용부담 완화 방안' 보고서가 그것이다.

돌봄 서비스 일자리 수급 불균형 등으로 간병 도우미 비용이 계속 늘어나는 현 상황이 사태를 악화시킬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이는 곧 여성 경제활동의 기회비용 확대로 이어져 젊은 여성의 퇴직과 경력 단절, 저출산의 주요 원인이 될 것으로 우려했다. 그리고 그를 위한 대안으로 외국인 노동자 활용을 제안한 것.

이를 통해 돌봄 서비스 인력난과 비용 증가를 완화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육아 도우미 비용(264만원)이 30대 가구 중위소득의 50%를 넘어서고 있고 앞으로도 인력난에 따른 비용 상승은 불가피하기에 임금상승 우려가 적은 외국인 노동자 활용이 대안이라는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개별 가구가 외국인을 직접 고용하게 되면 사적 계약 방식이라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아도 되는 만큼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실제로 이 방식을 활용 중인 홍콩(2022년 기준 시간당 2797원)·싱가포르(1721원)·대만(2472원)의 외국인 가사 도우미 임금은 우리나라 가사 도우미 임금(1만 1433원)보다 현저히 적다. 2022년 기준 33만 8000명(전체 취업자수의 9%)의 외국인 가사도우미가 근무하고 있는 홍콩의 경우 이들 중 47%가 육아, 46%가 노인돌봄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외국인 가사도우미의 월평균 임금 및 최저임금은 2022년 기준 약 87만원 및 77만원 수준으로 전체 최저임금(시간당 6600원)을 크게 하회했다.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 없는 내용이다. 

또 외국인 고용허가제 대상 업종에 돌봄 서비스업을 추가하고, 해당 업종의 최저임금을 상대적으로 낮게 설정하는 방식도 활용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를 활용하면 외국 인력을 재가·시설 요양에 모두 활용할 수 있고 관리·감독 우려도 적다는 것. 이렇게만 된다면 돌봄 서비스 인력 확충에 숨통을 트게 할 수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

다만 이러한 방식은 최저임금이라는 제도 철학에 일부 반하게 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문제는 최저임금 차등적용에 대한 사회적 합의 도출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이주 노동자 단체와 여성단체 등 관련된 단체들의 거센 항의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은의 보고서 발표 직후인 지난 10일, 한국노총, 민주노총과 13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돌봄 공공성 확보와 돌봄권 실현을 위한 시민연대'는 한국은행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해당 한은 보고서가 차별적이고 반인권적이라고 주장한 것이 그 증거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이번 보고서 내용 상당수가 심각한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에 시달리는 돌봄 노동자들의 현실을 외면하고 돌봄 노동을 저생산 노동으로 낙인찍어 노동의 가치를 훼손하는 것인 동시에 이주노동자에게 돌봄의 부담을 전가해 국가의 책임을 회피하는 안이라고 지적하고 나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또한 국제노동기구(ILO) 규약에 따른 외국인 노동자 차별 금지 규정에도 저촉되는 사항이라 섣불리 부담을 짊어질 수 없는 형편이기도 하다. 개별 가구가 사적 계약 방식으로 가사도우미를 직접 고용하는 방안을 한은이 제시한 것 역시 이를 우회하기 위한 방식이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정부로서도 이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노동계와 여성계의 반발이 따르는 이유는 자명하다. 계속되는 인력난에 따라 외국인 노동자의 활용은 불가피한 상황이지만 제도가 완벽히 구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외국인 노동자 취업이 늘어나게 되면 그 과정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착취당하는 등의 부작용이 양산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우려는 단순한 기우가 아니다.

지난 2일, 미국의 유력일간지인 뉴욕타임스가 한국 내에서 저개발국 출신 노동자들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음을 보도한 것이 그를 증명한다. 보도에 따르면 한국 내 소규모 공장이나 외딴 농장, 어선에서 일하고 있는 베트남, 캄보디아, 네팔 등 저개발국 출신 노동자 수십만 명이 고용주를 선택하거나 바꿀 수 있는 권한이 거의 없어 일부 악질 고용주들로부터 열악한 주거를 제공받는 등의 차별과 학대에 노출되어있다는 것이다.

보도 내용 전부를 믿을 수는 없지만 관련 시설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사망사고나 안전사고에 관련된 국내 뉴스도 심심찮게 나오는 걸 보면 일부분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건 분명하다. 

있어서는 안 될 인종차별과 노동착취 등이 이루어지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바로 현재 시행 중인 고용허가제를 들 수 있다. 현행 고용허가제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좋은 노동환경에서 일하고 싶은 본성을 강제로 억압한다는 점이다.

E-9 비자를 발급받은 외국인은 일할 곳을 마음대로 정할 수 없고 사용자가 근로계약을 중도에 해지하거나 갱신하지 않을 때만 이직이 가능하다는 것. 이를 어기고 임의로 근무지를 옮기면 발급받은 E-9 비자의 효력이 말소되고 이 경우 그 노동자가 한국에서 더는 합법적으로 일할 수 없게 된다. 폐업, 휴업, 실정법 위반 등 사용자에게 잘못이 있어도 이직할 순 있지만, 외국인 노동자가 이를 증명하고 적법하게 ‘자유의 몸’이 되기엔 현실적인 제약이 많아서 결코 쉽지 않다. 

사정이 이러니 외국인 노동자들은 웬만한 경우가 아니라면 고용주의 무리한 대접을 감수할 수밖에 없게 되는 셈이다. 물론 모든 고용주들이 다 그럴 리는 없다. 언제나 물을 흐리는 것은 몇 마리의 미꾸라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원적인 해법 제시는 필수적이다. 몇 마리 미꾸라지조차도 움직일 수 없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는 한 대한민국이 외국인 노동자를 착취한다는 오명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갈수록 인력난이 심화되는 지금, 외국인 노동자의 활용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가고 있다. 우리보다 반 발짝 앞서 달리고 있는 일본은 일손이 부족한 분야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수용하기 위해 운용하는 ‘특정기능’ 체류자격 인원을 크게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와 유사하게 인구가 감소하고 일손 부족이 심화하자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입국 문턱을 낮추겠다는 의도다.

이에 따라 향후 5년간 특정기능 수용 전망 인원을 최대 82만 명으로 제시하는 안을 검토 중이다. 이는 2019년 특정기능 제도를 도입할 때 5년간 약 34만 5000명으로 설정한 종전 규모의 2.4배에 달한다.

우리나라 역시 이런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기에 서둘러 이에 관한 대책을 마련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어야 할 것은 당연지사다. 다만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차별과 착취의 가능성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뒤따라야 한다. 지금은 우리가 해외 인력을 받아들이고 있지만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우리가 해외에 사람들을 내보낸 경험도 있지 않은가.

1960~70년대 독일로 건너간 2만 여명의 우리 국민들이 지하 2000m 깊이의 갱도에서, 환자들이 넘쳐나는 병원에서 일하며 당시 한국 총 수출액의 2%에 달하는 규모인 1억여 달러를 고국에 송금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파독 광부들의 당시 월급은 평균 650∼950마르크(당시 원화가치 기준 13만∼19만원)로 국내 직장인 평균의 8배에 달했지만 광부들은 번 돈 대부분을 국내로 송금하며 어렵게 살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원체 성실한 한국인들인 만큼 독일인들로부터 좋은 대접을 받았다지만 그 과정에서 차별이나 착취가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어느 곳이든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함께 사는 것이 진리니 말이다. 그런 설움을 견디고 묵묵히 일했던 민족이 우리다. 두 번 다시는 없어야 할 역사의 아픈 상처이기도 하고. 그런 우리가 저개발 국가에서 왔다는 이유로 노동자를 차별해서는 안 되지 않을까. 대한민국 국민과 외국인 노동자들이 상생하며 살 수 있는 최적의 대안을 찾으라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손영남 칼럼니스트
손영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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