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 자초한 쿠팡의 시대착오적 발상 정당한가

 쿠팡 대구 물류센터 [사진=쿠팡 제공]
 쿠팡 대구 물류센터 [사진=쿠팡 제공]

에이, 그냥 똥 한 번 밟았다 치지 뭐. 더도 말도 덜도 말고 딱 그런 심정이었다. 지난번 쿠팡에서의 극한 체험 이후 필자가 느낀 진솔한 심정을 표현하기에 이보다 더 적절한 것은 없었다.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불쾌한 일을 겪은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 그거니까.

이는 바꿔 말하면 필자가 앞으로는 절대로 쿠팡 사업장에 가는 일은 없을 거라는 말이기도 하다. 정말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만 하는 많은 분들에게는 죄송스런 말이지만 굳이 그런 식으로 돈을 벌어야 할 이유가 없는 '배부른 자'의 입장이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힘든 군대 생활을 겪어본 이들이 전역 후 자신의 부대가 있는 쪽으로는 소변도 누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이해하면 될 듯하다. 

그렇게 체험 아닌 체험은 종료되면서 나름의 마음 정리를 했던 참이었다. 어차피 두 번 다시 상종하지 않을 사이이니 이제 쿠팡과의 관계는(적어도 업무상으로는 그렇다) 정리됐다고 믿었다. 일을 위해 깔아두었던 쿠펀치 앱도 삭제했고 카톡의 친구 목록에서도 관련 방들을 차단한 것이 그 증거였다.

그럼에도 못내 찝찝한 마음을 가라앉힐 수 없던 이유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에 관한 내용은 뒤쪽에서 언급하겠다. 따지고 보면 그는 필자만의 부질없는 상상일 확률이 더 크다는 것이 옳다. 근데 그 찝찝함이 마냥 허튼 것이 아님을 증명하는 사건이 터졌다.

지난 2월 13일과 2월 14일, MBC는 상당 시간을 할애해 쿠팡이 지난 2017년부터 2023년까지 약 7년 동안 '페르소나 논 그라타'(PNG, Persona Non Grata) 명단을 작성해 관리해왔다는 방송을 내보냈다. 상대 국가의 특정 외교관을 거부할 때 사용하는 '기피인물'을 뜻하는 외교전문용어를 사용한 쿠팡의 비밀 파일, 즉 'PNG 리스트‘가 존재한다는 것이 방송의 주된 골자였다.

보도에 따르면 이 명단에 포함된 사람이 총 1만6450명에 달할 정도로 광대하며 그중 영구 채용불가 인원도 7971명이라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보다 상세한 내용은 이미 각 언론을 통해 정리된 만큼 이곳에서는 더 이상 언급을 하지 않겠다. 

중요한 것은 MBC의 쿠팡 블랙리스트 보도 이후, 정치권과 노동계를 아우르는 사회 전반에 큰 파장이 불어 닥쳤다는 점이다. 당연한 귀결이다. 그런 게 있을 지도 모른다는 합리적 의심이 이번 MBC의 취재를 통해 사실로 확인된 때문이었다. 야당은 물론이고 노동계에서 즉각적인 반향이 일어난 것은 정해진 수순일 수밖에 없다.

그간 심증은 있되 물증은 없어 의혹만 무성했던 일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그에 따른 반향이 일파만파 확대되고 있는 것 또한 예견된 상황이다. 무엇보다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함으로써 국가 경제에 지대한 공적을 쌓고 있다는 거대 기업의 음흉한 속내가 드러났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그 파장은 더더욱 커질 전망이다.


◆ 관리자에게 시시콜콜 따진 당신, 이제 떠나라


MBC의 보도 이후, 이 사태와 관련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야당과 노동계의 반쿠팡 공세에 즉각적으로 쿠팡이 대응하는 것은 물론이고 보수 진영에서도 쿠팡의 입장을 지지하는 각종 주장들이 불거지고 있는 것. 기본적으로 쿠팡의 입장은 단순하다.

방송이 나가기 무섭게 입장문을 낸 쿠팡은 ‘직원에 대한 인사평가는 회사의 고유권한이자 안전한 사업장 운영을 위한 당연한 책무’라는 것이 그것이다. 옳은 말이다. 어느 회사든 인사평가는 회사를 운영하기 위한 기본적인 장치이기 때문이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인사평가를 통해 직원의 상벌을 책정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이를 통해 회사의 발전을 이끌고 개인의 동기부여를 이끌어낸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사진=쿠팡 제공]
 [사진=쿠팡 제공]

그러나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사실이 있다. 바로 ‘객관적이고 공정한’이라는 대목이다. 이것이 담보되지 않는 평가기준이라면 분명히 문제가 있을 테니 말이다. 이미 우리는 지난 역사 속에서 이와 유사한 식의 노동탄압을 수차례 경험한 적이 있지 않은가. 말로는 객관적이고 공정하지만 실제로는 자기들의 입맛에 맞는 억지투성이의 평가 말이다. 그를 통해 노동자들을 강압적으로 지배한 암울한 역사가 아직도 선연하다. 

이번에 불거진 쿠팡의 블랙리스트가 의심을 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쿠팡의 말처럼 직원에 대한 인사평가라는 대목이 무색하게 직원이 아닌 존재들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는 것만 봐도 그 진위를 의심하게 하는 때문이다. 보도에 따르면 방송과 신문의 기자와 PD들도 이 리스트에 올라가 있었는데, 확인된 이름만 100명에 가깝다. 자신들의 직원도 아닌 존재가 리스트에 오를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리스트에 등재된 언론인 대부분은 '허위사실 유포'라는 사유로 자신들의 이름을 올린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게 사실이라면 쿠팡의 자신들의 사내 리스트에 그들의 이름을 올릴 것이 아니라, 언론중재위원회를 통해 합법적으로 의문을 제기하고 명예를 회복하는 절차를 밟는 것이 정상적인 루틴이지만 쿠팡은 그를 행하는 대신 블랙리스트 등재를 통해 취재 접근을 봉쇄한다는 방법을 택한 것이 된다.

당연히 쿠팡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상황. 그게 사실이라면 문제가 될 소지는 다분하다. 이런 행위는 언론의 자유를 말살하는 반헌법적인 액션이기 때문이다. 이를 둘러싼 공방 역시 상당 기간 이어질 것이 자명하다.

아직 분명한 것은 없다. 쿠팡의 주장대로 회사 고유 권한에 따른 직원 인사평가 자료일 수도 있다. 사업장 운영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논란이 불거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많은 노동자들이 쿠팡의 사업장에서 겪어야만 했던 불합리한 현실을 연이어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아무리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이 오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는 것을 역사는 증언하고 있다. 필자 역시 그 수많은 닭 중의 하나인 탓에 쿠팡의 이번 블랙리스트 의혹에 도끼눈을 뜨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

이쯤에서 지난 기사에서 밝히지 않았던 몇 가지 사실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지난번 쿠팡의 허브 업무를 진행할 당시, 필자는 작업 속도가 미진하다는 이유로 관리자로 여겨지는 몇몇 직원들의 채근을 받은 바 있다고 전했었다.

필자와는 달리 가족들의 생계 내지는 자신의 생활고를 타파하기 위해 작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은 그 채근에 부득불 고개를 숙여야 하지만 그로부터 자유로운 필자는 고개를 꼿꼿이 치켜들고 그의 부당함에 항의를 전했었고 덕분에 실랑이 아닌 실랑이까지 벌이기도 했다. 그 결과는 무엇이었을까? 눈치가 빠른 독자라면 충분히 짐작 가능하리라 생각된다. 바로 작업장 퇴출이었다. 


업무신청 3일인데, 컴플레인 걸었더니 '업무취소' 통보


사실 필자가 처음 신청한 업무 일수는 총 3일이었다. 그날 현장에서 겪었다시피 만성적인 업무 적체에 시달리는 만큼 필자를 위시한 노동자들의 업무 신청을 거절할 이유는 없다고 보는 게 상식적이다. 손이 느리다 해도 그만큼의 일손을 덜어줄 사람을 못 구해서 안달인 상황이니까. 그러나 놀랍게도 그 날 이후 필자의 업무 신청은 모두 반려되었다. 보내온 문자를 그대로 표시하면 다음과 같다.

<안녕하세요. 쿠팡고양센터입니다. 아쉽게도 01월 00일 주간조 모집이 모두 마감되었습니다. 근무 지원을 감사드리며 다음에 다시 신청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부른다고 해도 다시 갈 것도 아니었지만 못내 찝찝함이 드는 대목이었다. 분명히 어제까지만 해도 사람이 없어서 다른 파트에 지원한 지원자들까지도 당겨써야 했었는데 불과 하루 사이에 지원자가 다 찼다고 말하는 것을 쉬이 이해할 수가 없었던 때문이었다.

 [사진=쿠팡 제공]
 [사진=쿠팡 제공]

그래도 그러려니 했다. 완장을 찬 하늘같은 관리자님(?)들에게 몇 번의 항의를 했다는 것이 설마 퇴출의 근거가 될 거라는 생각은 못 했으니까. 요즘 같은 세상에 말대꾸(?) 몇 번 한 것이 무어 그리 큰 죄가 될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닐까. 

그러나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사실 그 일 이후 이상하게 필자의 업무를 시간 단위로 체크하는 일을 경험했다. 내 옆에 있던 다른 참가자에게는 안 그랬는데 필자에게는 수시로 와서 이름을 물어왔던 것. 그 간격이 얼마인지는 모른다.

현장에 시계가 따로 없었으니 알 수도 없었고. 너무 궁금해서 묻기까지 했다. 그때 관리자라는 사람들이 뭐라고 했던가. 단순한 업무 체크라는 대답이었다. 이제와 생각하니 그게 정말 정당한 업무 체크였나 하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랬다면 내 곁에서 일하던 일용직 노동자 역시 동일한 질문을 받았어야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따지고 보면 모든 것이 필자의 뇌피셜에 불과하다. 겨우 그 정도 사유로 업무 참가를 거부당했다는 것도 웃기고 말도 안 되는 일이니까. 근로기준법이 서슬 퍼런 2024년에 생길 수 있는 일이라고 믿는 것도 과대망상에 가깝다. 그럼에도 좀처럼 의혹을 거두지 못하는 이유는 그날 겪어본 쿠팡의 노동 환경이 그만큼 가혹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블랙리스트라는 웃기지도 않은 것까지 등장했으니 스스로를 과대망상이라 믿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에서 탈출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런 생각을 가진 이가 어디 필자 하나뿐일까.

이 상황이 이어지는 것이 바람직할 수는 없다. 소모적인 논쟁 따위로 국가 경쟁력을 해칠 이유는 없으니까. 차제에 대대적인 조사가 공신력 있는 기관에 의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진상이 규명되고 차후 조치 역시 뒤따라야 한다.

MBC의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면 쿠팡의 명예 회복이 뒤따라야 할 것이고 사실이라면 쿠팡의 전근대적인 경영 마인드 개선이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게 무엇이든 조속한 진실 규명은 필수적이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것이 세상 이치다. 안 그래도 휘어진 등을 가진 이 땅의 수많은 노동자들의 피곤한 등을 조금이라도 세울 수 있는 결말을 기대해본다. 

손영남 칼럼니스트
손영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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