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삶의 질 개선을 위한 최선의 방안 찾기가 우선돼야

포괄임금제 폐지는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해 반드시 이뤄져야 할 일이라는 게 노동계의 일관된 주장이다. 사진은 포괄임금제 폐지 기자회견중인 노동자들. 사진= 민주노총
포괄임금제 폐지는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해 반드시 이뤄져야 할 일이라는 게 노동계의 일관된 주장이다. 사진은 포괄임금제 폐지 기자회견중인 노동자들. [사진= 민주노총 제공]

[뉴스캔=손영남 칼럼니스트] 최근 들어 무미건조하기만 하던 출퇴근길 풍경이 달라졌다. 누군지도 모를 이들로부터 받는 인사 덕이다. 출근을 위해 들어선 지하철 역사에서 오늘 하루도 파이팅이라고 외치는 여성의 목소리를 듣는가 하면 퇴근길에는 수고하셨다고 악수를 청하는 중년남성의 손길이 더해지기까지 한다힘내라는데 기분 나쁠 턱이 없지만 그래도 딱히 반갑지는 않다. 한 달여 남짓이면 사라질 풍경이기 때문이다. 4·10 총선 출마자들의 얼굴 도장 찍기 모습이다.

4년 마다 반복되는 이 모습이 못내 마뜩찮은 이유는 그들의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는 일이 즐겁지 않음을 몸소 깨달은 탓이랄까. 선거 전에는 온 몸을 바쳐 국민의 종복 노릇을 하겠다던 이들이 막상 선거가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태도를 달리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 어디 하루이틀 일이던가.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극명하게 달라지는 얼굴 표정이 꼭 그런 것처럼 말이다. 그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선거 공약이다.

선거 전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실현시키겠다며 거창하게 선포식을 열지만 막상 그 공약이 제대로 지켜지는 경우는 사실 그리 많지 않다. 오죽하면 공약(公約)은 역시 공약(空約)이란 말이 다 나올까. 이는 단순한 말장난의 수준이 아니다. 지난 38, 한 매체가 21대 국회의원들의 총선 공약 실행도를 점검한 결과, 그중 반 정도는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음을 확인했다고 보도한 것이 그 증거다.

놀라운 건 반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반이나 집행되었다는 사실이라고 느낄 정도로 총선 공약은 지켜지지 않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이번 총선 공약들 역시 선례를 충실히 따를 것이라며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이유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게 인간 심리다. 이번에도 아니겠지 하는 마음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유권자들은 이번에는이라는 기대감으로 또 한 번 속아보려는 중이다. 특히 그 공약이 서민들의 월급봉투의 무게를 좌우할 정책이라면 더더욱 무게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그중 하나가 바로 포괄임금제 폐지에 관한 것이다.

지난 2월28일, 민주당은 직장인에 대한 총선 공약을 발표했는데 그중 가장 눈에 띠는 것이 바로 주 4.5일제 도입 안건과 포괄임금제 금지의 근로기준법 명문화였다. 두 안건 모두 직장인이라면 혹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인 탓이다. 그러나 그게 성사될 거라는 기대감을 가지긴 힘들어 보인다포괄임금제의 경우, 매번 총선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공약이었을 정도로 지켜지지 않는 공약인 덕분이다. 여러 요인을 감안해보면 그는 더욱 확실해진다. 포괄임금제가 공짜야근의 주범이라는 악명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체포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포괄임금제, 공짜야근의 주범일까 아닐까


포괄임금제를 둘러싼 가장 첨예한 키워드는 '공짜야근'이다. 야근이나 특근처럼 기본 노동시간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별도의 근무 시 그에 해당하는 노임을 지급해야 함은 삼척동자도 알만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상식이 무시되는 경우가 바로 노동자가 회사와 포괄임금에 동의하는 임금협정을 맺었을 경우다. 이 경우 노동자들은 얼마를 더 일하건 이 노동에 대한 대가를 요구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때문에 포괄임금제의 또 다른 이름이 공짜야근의 주범이 된 것이다.

노동자들은 얼마를 더 일하건 이 노동에 대한 대가를 요구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때문에 포괄임금제의 또 다른 이름이 공짜야근의 주범이 된 것이다. [일러스트=프리픽 제공]
노동자들은 얼마를 더 일하건 이 노동에 대한 대가를 요구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때문에 포괄임금제의 또 다른 이름이 공짜야근의 주범이 된 것이다. [일러스트=프리픽 제공]

기업 입장에서는 번거로운 절차 없이 노동자의 노동력을 언제든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일부 산업군을 중심으로 포괄임금제 폐지에 나서는 기업들이 생겨나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많은 기업들이 포괄임금제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노동자 입장에서는 불리하기 그지없는 제도지만 기업의 이해타산 앞에 상대적 약자일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이 이를 감내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노동계와 진보 진영에서는 끊임없이 포괄임금제 폐지를 주창하고 있지만 쉽사리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단순히 포괄임금제 폐지라는 것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산적해있기에 정부로서도 이를 쉬이 받아들일 수 없는 입장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현재처럼 국내 상당수 기업들이 포괄임금제를 채택하고 있는 상황에서의 일률적 입법 규제는 자칫 임금 분쟁으로 이어지는 등 산업 현장에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가장 먼저 포괄임금제 폐지에 나섰던 IT업계에서 노사 합의를 통해 되돌린 사례도 나왔을 만큼 현장에서의 혼선이 적지 않았던 것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전면폐지 대신 꾸준한 감독 관리를 통해 일선의 혼란을 최소화시키고 노동자들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는 방향으로 키를 돌린 상황이다.


노동자들의 삶이 좀더 나아질 수 있는 방안 강구가 먼저


대다수 기업들이 포괄임금제 자체의 흠결 대신 그 적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근거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공짜 야근 관행을 개선하려면 단순히 포괄임금제 폐지를 주장할 것이 아니라 포괄임금제가 본래적 의미로만 활용되도록 오·남용을 경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

이런 점을 간과하고 판례상 형성돼온 포괄임금제를 무조건 법률로 폐지해 버리면 근로시간 산정, 근태 관리, 기본급 저하를 두고 지금보다 더한 혼란과 갈등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경영계의 주장 역시 현실에 기반한 판단이라고 여겨진다. 그럼에도 노동계의 반발은 끊일 줄을 모른다. 이유는 자명하다.

경영계의 주장대로 포괄 임금제 운영엔 여러 제약이 따르는 것이 사실이다. 근로시간의 산정이 어려운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운영되어야 하는 것이고 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 경영계의 입장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잡음의 소지는 현저히 줄어들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문제는 그게 원활치 않다는 것. 지난해 정부의 감독 결과 포괄임금 오남용이 의심되는 87개 사업장 중 64곳(73.6%)에서 약 26억 3000만 원의 수당을 지급하지 않은 '공짜 야근'이 확인됐다고 밝힐 정도로 상당수 기업에서는 근로시간 및 임금 계산의 편리함을 이유로 근로시간 산정의 어려움 여부와 관계없이 다수의 분야에서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만 놓고 보면 포괄임금제가 임금수준의 저하, 장시간 근로 등의 문제를 발생시키는 제도임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주 52시간을 초과해 일을 시켜놓고도 제대로된 임금을 주지 않으려는 일부 몰지각한 기업들에게는 보다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 [일러스트=프리픽 제공]
주 52시간을 초과해 일을 시켜놓고도 제대로된 임금을 주지 않으려는 일부 몰지각한 기업들에게는 보다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 [일러스트=프리픽 제공]

문제를 발생시켰다면 법에 근거해 해소하면 되지 않겠냐 싶겠지만 그게 또 쉽지가 않다. 포괄임금제가 법의 우산 안에 편입되지 않은 제도이기 때문이다. 법이 정확히 규정하지 않으니 단속이나 처벌 등이 쉽지 않은 것. 실제로 포괄임금제는 노동관계법 어디에도 적시돼 있지 않은 제도다. 다만 법원 판례에 따라 관례처럼 사용되고 있을 뿐이다.

물론 그 법조차 포괄임금제를 둘러싼 해석이 다양하게 존재할 만큼 이에 대한 시선은 상황에 따라 엇갈리고 있다. 명문화된 조항이 없는 탓에 해석에 따라 적법할 수도 아닐 수도 있는 제도란 뜻이다. 소위 말해 다툴 여지가 차고 넘치는 제도이기도 하고. 상황이 그런 만큼 여기서 포괄임금제 폐지를 놓고 대립하는 한 집단의 손을 들어줄 의사는 없다.

중요한 건 노동자들의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먼저라는 점이다. 포괄임금제가 문제가 되는 것은 결국 우리나라 노동환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세계적으로도 유래를 찾기 힘든 장시간 노동의 폐해가 그것. 그 때문에 주52시간 제도가 채택되었지 않은가.

주 52시간을 초과해서 일하게 하고도 제대로 된 임금을 주지 않으려는 일부 몰지각한 기업들에게 보다 강력한 규제를 가함으로써 노동자들의 권리를 찾아줌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뜻이다. 4·10 총선이 현재의 상황, 그러니까 기업들이 포괄임금제를 테마파크의 자유이용권처럼 사용하는 왜곡된 현 세태를 개선하는 디딤목이 되어주기를 바란다면 너무 큰 욕심일까. 우리가 찍은 한 표 한 표가 모인다면 마냥 불가능한 이야기만은 아닐 거라 믿어본다.

손영남 칼럼니스트
손영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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