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 하반기 외국인 가사돌봄 서비스 시범사업 진행
조정훈, '월 100만 원' 외국인 가사도우미 '가사근로법' 발의
전문가 "노동계 처우 개선이 우선...인권문제에 고용불안도"

저출산 대안으로 제시된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 정책에 대한 찬반이 뜨겁다. [이미지=픽사베이 제공]
저출산 대안으로 제시된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 정책에 대한 찬반이 뜨겁다. [이미지=픽사베이 제공]

[뉴스캔=박진용 기자] 저출산에 따른 인구절벽이 국가 성장동력에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면서, 출산 장려책의 일환으로 제시된 '외국인 가사도우미' 활성화 논의가 활발하다.

내국인보다 인건비가 비교적 저렴한 외국 노동력으로 가사 부담을 덜고 이를 통해 젊은 여성들의 출산·육아에 따른 커리어 단절 부담과 출산 거부감을 덜자는 취지로 제안된 정부 정책이다.

하지만 정책 도입과 시행까지는 적잖은 난항이 예상된다. 전례가 없는 일이다 보니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으로 인한 경제적·사회적 효과를 참고할 만한 데이터가 없는 데다, 저임금 등 근무환경이 열악한 외국인 노동자 인권 문제가 걸리기 때문이다. 

아울러 당장 정부 정책으로 시행하기엔 외국인 돌봄노동 시장과 인력관리에 대한 구체적 방안 제시가 쉽지 않다. 이에 일각에선 이론적 효과에만 초점을 맞춘 졸속 정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외국인 가사도우미 정책은 지난해 9월 오세훈 서울시장이 국무회의에서 운을 띄우면서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당시 오 시장은 "한국에서 육아도우미를 고용하려면 월 200~300만원이 드는데, 싱가포르의 외국인 가사도우미는 월 38~76만원 수준"이라며 논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후 지난 3월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이 월 100만원에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고용할 수 있도록 한 내용을 담은 가사근로자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재차 불씨를 지폈다.

결국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외국인 가사도우미 정책 도입 검토를 지시하면서 정부 차원의 논의가 본격화됐다. 고용노동부는 올 하반기 외국인 가사노동자 시범사업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외국인 가사노동자에 대한 임금 체계는 추후 단계적으로 구체화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 국회 토론회서 전문가들 "저임금 돌봄 도입, 노동계 처우개선 일보후퇴 우려"


이와 관련, 8일 국회에서는 한국노총과 더불어민주당 전국노동위원회 노동존중실천단이 공동 주최한 '가사서비스 외국인력도입 문제점과 대응방안 토론회'가 진행됐다. 

이날 정책 토론회에서 노동계 전문가들은 저임금의 외국인 노동자들의 돌봄 서비스 활성화 정책이 노동계 처우개선이라는 시대 흐름에 역행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오히려 노동계에 대한 총체적 근로여건 개선을 도모해 내국인 가사 돌봄 서비스가 보편화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왔다.

이들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돌봄노동자의 평균 시급은 1만183원으로, 타 직군(1만6437원)에 비해 6254원 적다. 이들 중 급여로 최저임금의 120% 미만을 받는 취업자도 과반인 52.5%에 이른다.

이규용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돌봄서비스 부족 문제를 값싼 외국인 노동력 공급이라는 실현 가능성 낮은 논쟁으로 이끌어가는 게 바람직한가"라며 "돌봄서비스의 사각지대를 해소하려는 보다 적극적인 정책방안을 모색할 수는 없나"라고 정부 정책에 의문을 표했다.

또 그는 "돌봄노동시장의 열악한 근무환경과 장시간 저임금 개선 없이 외국인 노동력으로 인력부족을 충당하는 방식은, 돌봄노동시장 전체의 임금과 노동여건을 개선하는 데 제약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짚었다. 돌봄노동자 등 노동계에 대한 전체적 처우 개선이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최영미 한국노총 가사돌봄유니온 위원장도 "지금은 퇴직인구의 증가, 경제활동인구의 감소, 국민의 보편적 돌봄권이라는 관점에서 돌봄 자체에 대한 중장기계획을 세워야 할 시기"라며 "가사근로자법 활성화와 노동환경 개선을 통해 노동능력과 의사가 있는 중·고령층 인입, 국가자격증제도, 직업훈련 확대를 통한 업무 표준화, 서비스 질의 제고 등이 필요하다"고 이 연구위원과 궤를 같이했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고질적 저임금 문제는 노동력 이탈로 인한 고용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들에 대한 임금 등 근로여건 개선이 이뤄지지 않으면 당장 사용자 입장에선 값싼 노동력을 구할 수 있지만, 노동강도 대비 낮은 임금에 노동자가 장기근속을 꺼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연구위원은 "농어업에 종사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높은 이탈률은 노동환경과 낮은 임금수준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라며 "이런 현상은 돌봄서비스 분야 외국인 인력 도입 때도 재현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외국인 노동시장에서 업종이나 직종 간 임금 격차는 사업장 이탈의 핵심 이유였다는 점을 보면,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는 합법적인 가사서비스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비합법 시장화'를 조장할 가능성이 클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에 이 연구위원은 "적정 수준의 임금 가이드라인 설정, 직무 범위, 표준근로시간 설정 등 고용관계를 둘러싼 제반 규정들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채용할 경우 언어나 문화 차이에서 오는 소통 불편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분출한다.

배수민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는 "한국어능력자격 1급을 딴 외국인이라 하더라도 아이와의 소통은 난제 중의 난제일 것"이라며 "양육자와의 소통에서도 어려움을 느끼긴 마찬가지라 예상한다"고 봤다.

아울러 "외국인 입장에서도 사용자인 양육자의 신분을 알 길이 없다"며 "가정이라는 극히 사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인격모독, 인종차별, 성폭력 등 그들도 '안전하지 않은 일터'에 노출될 수 있다"고 부연했다. 고용자의 법적·도덕적 일탈 행위로 인해 가사노동자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말로 풀이된다.

정부가 저출산 문제에 단편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사회·경제 전반에 걸쳐 저출산을 야기한 근본 원인을 진단하고, 그에 따른 전방위적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배 활동가는 "단순히 가사와 돌봄을 누군가 저렴하게 대신해 주면 저출산을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은 저출산의 원인을 완전히 잘못 분석한 것"이라며 "정부는 저출산의 원인이 개인적 취향 문제가 아닌 사회적, 구조적 문제에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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