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탄소배출 보고서 제출 의무화...2026년부터는 관세 부과
철강업계 "사실상 탄소집약형 해외 기업에 대한 관세 의무화"

유럽연합(EU)과 유럽 평의회, 유럽국 연대를 상징하는 유럽기. [사진=프리픽 제공]
유럽연합(EU)과 유럽 평의회, 유럽국 연대를 상징하는 유럽기. [사진=프리픽 제공]

[뉴스캔=박진용 기자] 유럽연합(EU)이 1일 글로벌 최초로 '탄소국경세' 첫 단계를 발령, 시행하자 산업 공정상 탄소 발생이 불가피한 국내 철강업계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향후 유럽향 철강제품 수출에 앞서 EU의 엄격한 '저탄소 규정' 문턱을 넘어야하는 부담을 안게 됐기 때문이다. 이에 포스코, 현대제철 등 국내 굴지의 철강사들은 EU의 탄소국경세 도입 움직임에 대한 대응방안 마련에 골몰하는 모양새다.


◆ EU, '탄소국경조정제' 첫 단계 발령...국제사회 동의는 '글쎄'


EU는 이날 부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시범 도입에 들어갔다. 철강·알루미늄·시멘트·전기·비료·수소 등 6개 제품군을 EU 가입국으로 수출하는 기업은 탄소 배출량을 매 분기마다 보고토록 한 것이 CBAM의 골자다.

CBAM은 당장 올 4분기(10~12월)부터 적용되며, 첫 보고 시한은 내년 1월31일까지다. 유럽향 수출 기업들은 마감 시한 전에 규정 양식에 따라 EU 역내 수입사업자에게 탄소 배출량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다만 EU는 CBAM 본격 시행에 앞서 2026년 1월까지 탄소 배출량 보고서 제출을 의무화하되, 관세 부과는 유예키로 했다. 그해로부터는 탄소 배출량 데이터를 제공하지 않는 사업체에 대해선 수출품 톤(t)당 최대 50유로(약 7만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이와 함께 EU는 2034년까지 유럽으로 들여오는 전 수입 품목에 대해 CBAM를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른바 '탄소세'로 불리는 EU의 CBAM은 철강·시멘트와 같이 공정상 이산화탄소(CO₂) 배출이 많은 품목에 관세를 부과해 수입품으로 인한 유럽의 녹색화 저해를 방지하기 위한 취지로 도입됐다. EU는 2030년까지 유럽 내 탄소 배출량을 1990년 대비 55% 이상 감축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아울러 EU는 탄소세 도입으로 유럽 기업들이 친환경 부문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가져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에 국제사회 일각에선 EU의 이같은 조치가 자유시장경제 논리와 배치된다는 반발도 나온다. 특히 세계무역기구(WTO) 협정과도 이해관계가 상충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실제 중국의 셰전화 기후특사는 최근 한 공식 석상에서 EU 탄소세와 같은 '일방적 조치'에 국제사회가 반대해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미국 역시 올 초 자국산 철강과 수출품에 대해 EU에 세금 면제를 요구한 바 있다.


◆ 국내 철강업계, EU 조치에 "관세 의무화와 다를 바 있냐" 반발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 생산된 열연제품 [사진=포스코 제공]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 생산된 열연제품. [사진=포스코 제공]

CBAM 첫 단계 발령으로 국내 철강업계도 유럽향 수출에 경고등이 켜졌다. 특히 철강의 경우 탄소 집약형 산업군으로 분류되는 만큼, 기술적으로 탄소 저감이 쉽지 않다는 게 중평이다. 

이렇다 보니 업계에서는 향후 탄소 저감 방안을 고심하면서도 유럽연합의 이같은 조치는 사실상 '관세 의무화'라는 냉소적 반응마저 나온다. 아울러 이러한 탄소 규제 시행에 앞서 국제사회와의 동의가 전제돼야 한다는 의견도 분출한다.  

6일 국내 철강업계에 따르면 CBAM 1단계가 시행된 1일부로 포스코, 현대제철 등 국내 대형 철강기업들은 탄소 배출량 보고 의무화 대상 기업으로 지목됐다. 2026년까지 철강 수출품에 대한 탄소 저감 방안을 마련하지 못할 경우 유럽향 수출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EU가 저탄소 기조를 점차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CBAM 보고서 제출과 규정 미이행에 따른 관세 부과를 제도화한 것은 국내 철강업계에 적잖은 부담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2025년까지는 EU가 'CBAM 전환기'로 지정한 만큼 별도의 관세가 부과되지 않지만, CBAM이 본격화되는 2026년이면 철강 등 국내 고탄소 산업군은 유럽발 탄소세라는 거대 압박에 직면하게 되는 셈이다.  

국산 수출품 중 CBAM이 우선 적용되는 품목은 철강·알루미늄·시멘트·비료·전력·수소 등이다. 특히 철강은 그 중에서도 탄소 배출량이 높은 고탄소 품목으로, CBAM 발효에 따른 거대 영향권에 놓이게 된다. 게다가 유럽으로 수출되는 철강제품 규모도 지난해 기준 48억 달러(약 6조3800억원)에 달해 국내 무역수지 하락과 직결될 수 있는 문제다. 

전통적 철강 제조기술인 '고로(高爐)' 공정은 석탄을 환원제로 쓰기 때문에 CO₂ 배출이 불가피하다. 최근 고로 대신에 탄소 저감이 가능한 '전기로' 방식의 철강 생산이 확대되고는 있지만 여전히 고로 의존도는 높은 편이다. 

이렇다 보니 당장 포스코, 현대제철 등 국내 철강 대기업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중장기 대응방안 마련은 물론, EU 저탄소 인증에 골몰하고 있지만 3년 뒤 본격화될 CBAM 문턱을 온전히 넘기엔 현실장벽이 높은 실정이다.    

포스코는 지난해부터 일찌감치 사내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며 중장기 대응에 나섰고, 현대체절 또한 전략기획본부 산하 통상전략실을 꾸리고 저탄소 인증 작업에 돌입했다.

 탄소발생을 최소화한 현대제철의 전기로. [사진=현대제철 제공]
 탄소발생을 최소화한 현대제철의 전기로. [사진=현대제철 제공]

아울러 이들 기업은 기존 환원제인 석탄 대신 수소를 제철에 활용하는 방식을 채택하거나 저탄소 강판을 생산하는 인프라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포스코의 경우 2050년까지 기존 고로를 수소제철 방식으로 전면 대체시킨다는 구상이다. 현대제철은 EU의 CBAM이 본격 시행되기 전인 그해로부터 탄소 함유량을 20% 수준 낮춘 저탄소 강판 보급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당장 3년 뒤 EU의 저탄소 규제에 부합한 제철 패턴을 구축하기엔 재정적, 시간적 여유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업계 중평이다. 

철강업계 한 관계자는 <뉴스캔>과 통화에서 "가뜩이나 국내 탄소배출권거래제 인증에 EU 인증까지 이중고를 겪고 있는 마당에 이제는 이중 과세라는 모래주머니까지 차게 됐다"고 토로했다.

이어 "포스코, 현대제철 등 철강 대기업들의 고로 비중은 저탄소 제철 인프라에 비해 여전히 압도적으로 높은 편이다. 이를 모두 저탄소 제철 방식으로 전환하려면 현실적으로 비용도 비용이지만 EU의 타임라인을 도저히 맞출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EU의 탄소세 시행은 사실상 외국 기업들에 대한 '과세 의무화' 지침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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