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정부, 민노총·한노총 등 양대 노조에 '회계 투명성 보장' 요구
노조 "정부 회계공시 시행, 노조 탄압 수단이자 민주성 훼손"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노동조합 회계공시 제도 시행’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고용노동부 제공]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노동조합 회계공시 제도 시행’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고용노동부 제공]

[뉴스캔=박진용 기자] 정부가 한노총·민노총 등 국내 거대 노동조합의 이른바 '깜깜이 회계'를 방지하기 위한 회계공시 시스템을 지난 1일부로 개통했다. 이로써 노조는 중앙본부 등 상급 지휘체계 단계에서 회계를 투명하게 공시하지 않을 경우 세액공제 혜택에서 배제된다.

윤석열 정부는 3대 중점 국정과제 중 하나인 '노동개혁'의 일환으로 노동계에 만연하다고 지적되는 깜깜이 회계를 막기 위해 회계공시 시스템을 전격 시행하는 등 단호한 기조를 이어나가고 있다. 이들 노조에 국고가 지원되는 만큼, 투명한 회계 보고체계를 확립해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노조 지원금이 부당하게 사용되는 등의 혈세 누수를 방지하자는 취지다.  

이에 노동계는 양대 노조인 한노총과 민노총을 중심으로 "정부의 과도한 운영 개입"이라며 반발하는 모양새다. 이들은 이미 알 권리가 충분히 보장되고 있다며 정부의 이같은 조치는 노동계의 자주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강력하게 저항하고 있어 정부와 노동계 사이에 갈등 기류가 이어질 전망이다. 

관할 부처인 고용노동부는 지난 5일 노조 회계 공시시스템 시행을 공표하며 노조계가 이에 적극 협조해 줄 것을 요청했다. 노조의 자율적 회계 공시로 대국민 신뢰를 높이고, 회계 투명성 확보는 노조를 향한 민주성 '침해'가 아닌 '회복'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이를 통해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 의지를 재확인한 것으로도 풀이된다.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1일부로 노동포털 내 회계공시 시스템이 시행됨에 따라 오는 11월 30일까지 지난해 회계 결산내역 공시에 응한 노조나 산하조직에 대해선 세액공제 혜택이 제공되지만, 이에 불응한 노조(산하조직 포함)는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없다. 국고 보조를 받고 있는 노조로선 세제 혜택을 받지 못할 경우 재정 공백 우려에 직면할 수 있다.

노동조합 회계공시시스템 [이미지=정부 홈페이지 갈무리]
노동조합 회계공시시스템 [이미지=정부 홈페이지 갈무리]

정부는 노조 활동비가 세금으로 지원되는 만큼, 그에 상응하는 회계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은 필연적이라는 입장이다. 세제 혜택을 매개로 노조의 회계공시를 유도한 것도 이에 따른 조치다. 

현행 제도상 노조비는 '지정지부금'으로 분류되며, 납부 금액의 총 15%가 세액공제된다. 납부액이 천만 원 이상일 경우 30%까지 공제된다. 노조로선 반드시 세제 혜택을 받아야 재정 지속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셈이다.

현 정부는 지난해 말부터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해 국내 양대 노조의 회계 투명화를 국정 핵심과제로 지목했다. 실제로 그간 양대 노조 간부급 인사들의 공금 횡령 사례가 이어졌던 만큼, 세금이 일부 노조원들의 사익을 위해 쓰이거나 남용되는 문제에 대한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정부는 이들 노조 단체에 노조법 14조·27조에 의거해 재정 관련 서류를 반드시 비치(노조법 14조)하고, 결산내역과 조직 운영상황을 의무적으로 보고토록 요구했다. 해당 요구에 불응한 노조에 대해선 즉각 현장 행정조사에 착수하는 한편, 행정조사에 협조하지 않는 노조에는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 고강도 압박에 나섰다.

최근 시행된 회계공시 시스템도 정부의 이러한 대(對)노조 후속 강경 조치다.

노동부 핵심 관계자는 <뉴스캔>과의 통화에서 "국내 거대 노조에 지급되는 국고 규모가 천문학적 규모이다 보니 회계 투명성을 반드시 보장해서 국민들의 알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게 회계공시(시스템)의 기본 취지"라며 "산하조직이 회계공시에 응했다고 해도 노조 본부가 이에 불응한다면 산하조직도 세제 혜택을 받지 못한다. 노조들의 적극적인 회계공시 참여를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노조계 "회계공시 시스템, 노조탄압이자 민주성 침해"


정부의 이같은 강경 기조에 노조계는 "노조 탄압"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정부가 회계공시를 노조 압박 수단으로 삼고 있다고 보는 시각에서다. 

11일 노동계에 따르면 한노총, 민노총 등 양대 노조는 정부의 회계장부 비치 및 행정조사 불응에 따른 과태료 부과 등에 대해 부당함을 호소하며 소송으로 맞불을 놓고 있다. 

앞서 정부가 노조 회계공시 시스템 개시 시점을 당초보다 3개월가량 앞당길 예정이라고 밝혔을 당시에도 이들 노조는 즉각 논평을 통해 "연말정산을 앞두고 시행 시기를 앞당긴 것은 노동자 불만을 증폭시켜 노조를 옥죄고 총연합단체 탈퇴를 부추기려는 의도"라고 날을 세웠다.

아울러 노조 본부 등 상급단체가 회계공시에 참여하지 않았을 경우 산하조직까지 세제 혜택에서 제외되는 것을 두고는 "연좌제"라며 정부 조치의 부당함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민노총 고위 관계자는 <뉴스캔>과의 통화에서 "회계공시 시스템 적용부터가 노조들을 정부 감시망 아래 두려는 고압적 행정인데, 세액 비공제까지 '연좌제'로 묶는 것은 명백히 노동계를 탄압하는 처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노조계는 현재 정부의 회계공시 지침에 반발하며 불참 의사를 굽히지 않는 모양새다. 실제로 이날(11일) 기준 회계공시에 응한 노조도 김포도시공사 노조 등 4곳에 불과하다. 노동부가 지난달 회계공시 시스템 적용에 앞서 노조(산하조직 포함) 673개소를 대상으로 사전 교육을 진행했지만 참여율은 12.5%에 그쳤다.

한편, 노정 갈등 요소는 이뿐만이 아니다. 민노총 건설노조 간부의 분신 사망을 비롯해 한노총 간부에 대한 강경 진압에 이르기까지 뇌관이 산재해 있다는 평가다. 여기에 회계공시 시스템 개통으로 가뜩이나 경직된 노정 관계에 기름을 끼얹은 형국이 전개되면서, 노정 간 대화의 장을 적극 마련해야 한다는 일각의 제언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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