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부, '사업자 자가진단 개선' 촉구한 비정규직 차별 예방 권고안 제시
勞 "'동종업무 판단기준' 없어 근로차별 입증 쉽지 않아"
政 "천차만별 업종에 대한 일괄적 동종업무 판단기준 도입 어려워"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8일 은행회관에서 노사발전재단과 함께 개최한 ‘차별없는 일터 조성 우수사업장 시상식’에서 비정규직 차별 예방 및 자율개선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고용노동부 제공]

[뉴스캔=박진용 기자] 산업현장에서 동일 업무를 수행하더라도 정규직과 임시직에 대한 처우가 극명하게 다른 이른바 '비정규직 차별' 논란이 사회적 문제로 급부상한 가운데, 정부가 지난 8일 비정규직 차별 예방 권고안을 내놨다.

사용자가 근로자 대우 차별 문제를 자가 점검하고 이를 자체 개선할 수 있도록 매뉴얼을 제시한 것인데, 차별 예방을 위한 기본 준수사항과 사업장 자율점검표 활성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아울러 각종 사업장에서 발생하고 있는 비정규직 차별 사례를 들어 사용자들이 이를 지양할 수 있도록 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8일 노사발전재단과 함께 은행회관에서 개최한 '차별없는 일터 조성 우수사업장 시상식'을 통해 이같은 내용을 담은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이와 함께 '차별없는 일터 우수사업장'으로 선정된 12개 업체 대표의 우수사례를 공유하는 시간도 마련됐다. 

특히 이 장관은 이날 "'근로의 내용과 관계 없는 복리후생적 처우는 동종·유사업무 수행 여부와 관계없이 차별적 처우를 하지 않을 것'을 적극 권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여기엔 정작 근로현장에서 흔히 차별이 이뤄지고 있는 동종 업무에 대한 세부적 판단 기준이 포함되지 않아, 노동계를 중심으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근로현장 내 복리후생 차별 금지'라는 원칙론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보니 근로차별 사례에 대한 현실적 대안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근로차별 문제를 바로 잡으려면 사업장 내 비정규직이 정규직과 동일하거나 유사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근거가 제시돼야 하는데, 이를 입증할 만한 준칙이 없다면 사실상 근로차별을 근절하기 쉽지 않다는 게 노동계의 문제제기다. 

실제로 본지 취재에 응한 한 건설업체 사례를 살펴보면, 정규직 근로자 A씨와 하청 파견 근로자인 B씨는 건설현장에서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음에도 B씨는 사업주로부터 위험수당을 지급받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B씨는 "건설현장에서 사고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데, 파견직이라는 이유만으로 위험수당을 못 받는다는 것은 부당하다"라며 "위험요소가 많은 건설분야 특성상 생명을 걸고 하는 일이다. 이러한 차별적 복리후생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고 보는데,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차별 방지안을 보면 허술하기 그지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말 그대로 사업주들에게 권고하는 정도에 그치는 것인데, 관련법을 고치지 않고 자체점검표만 사업장에 방 붙이듯 붙이는 게 무슨 소용이 있나"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렇다 보니 그간 노동계를 중심으로 비정규직 차별 문제가 도마에 오를 때마다 동종·유사 업무 판단 기준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근로차별 논란이 일 때면 사용자가 차별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비정규 근로자에 대해 동종·유사 업무라는 점을 입증하기 쉽지 않다는 이유로 문제제기를 수용하지 않는 사례가 적잖은 탓이다.  


같은 업무라도 정규직-비정규직 따라 차별 존재...정부 "신중하게 접근할 것"


실제로 대법원은 지난 1일 비정규직 차별을 규정하기에 앞서 '비교대상 노동자'는 '동일성'이 인정되는 범위에 포함돼야 한다는 대전제를 제시한 판결을 낸 바 있다. 다만 법원 또한 그 '동일성'을 입증할 구체적 기준이 마련되지 않은 탓에 판결에 애를 먹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한국노총은 정부 권고안이 발표된 당일 즉각 성명서를 내고 "명백히 차별에 해당하여 차별시정명령의 대상인 사항에 대해서까지 개선권고로 일관하고 있다"며 "사용자의 '선의'에 기댄 가이드라인은 정부의 책임회피 및 생색내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오히려 현장에서 사업주의 차별회피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다"며 "근본적으로 차별비교대상 확대, 노조의 시정청구권 보장, 차별시정 신청기간 확대 등 본질적인 법제도 개선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정부 입장에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차별 문제와 관련해 동일·유사 업무 입증 기준을 마련하는 것은 현실장벽이 높다는 반론이 나온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업종이 다양하고, 업종별 세부 업무의 성격이나 메커니즘이 다 다르기 때문에 통합적으로 동일·유사 업무를 판단할 수 있는 세부기준을 마련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라며 "(노동계 요구에) 이러한 판단 기준을 어설프게 마련하게 되면 자칫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갈등을 부추기고 사업장에 혼란만 가중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정부에 따르면 정규직 외 근로형태로 일하는 근로자는 총 임금 근로자의 37% 수준인 812만 명에 달한다. 노동계는 이들 중 상당수가 정규직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지만 저임금은 물론, 각종 수당·연차 등 후생복리에서 상대적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유사 업무 수행을 온전히 동일선상에 놓고 볼 수 있느냐를 놓고는 논란의 소지가 큰 만큼, 정부의 산업현장 고용에 대한 면밀한 실태 파악과 사회적 합의가 병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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