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불법쟁의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거액 손배청구 '부적절' 판단
국회 본회의 문턱 남은 노란봉투법, 대법원 판결에 처리 급물살 전망
여야 대법원 판결에 온도차 극명...與 '알박기 판결' vs 野 '판결 정당'

 노란봉투법을 둘러싸고 재계와 노동계, 정부·여당과 야당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일러스트=뉴스캔 이하나 기자] 
 노란봉투법을 둘러싸고 재계와 노동계, 정부·여당과 야당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일러스트=뉴스캔 이하나 기자] 

[뉴스캔=박진용 기자] 대법원이 점거 농성 등 노동쟁의로 거액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에 휘말린 현대자동차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이는 현재 국회 본회의 처리를 앞두고 있는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의 향배를 결정지을 중대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노란봉투법은 불법 쟁의행위에 대한 기업의 과도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법안인 만큼, 이번 대법원 판례가 관련법 국회 처리 수순에 탄력을 불어넣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다만 당정은 노동자 측 손을 들어준 대법원 판결은 정치 편향성을 띠고 있다고 주장하며 노란봉투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경우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한다는 방침이어서 혼돈 국면이 지속될 전망이다.


◆ 현대車 비정규지회 점거시위, 法 판결 일지는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15일 현대차가 비정규직지회 소속 노동자 4명을 상대로 낸 불법행위 손해배상 소송 상고심에서 20억원과 지연 이자를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노동쟁의에 대한 사측의 손배 청구 규모가 과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현대차 비정규직지회는 2010년 11월 15일부터 같은 해 12월 9일까지 현대차 울산공장 1·2라인을 점거해 약 278시간 동안 생산공정을 중단시켰다. 현대차는 이로 인한 손해 총액을 약 271억원으로 산정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노란봉투법 환노위 통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정의당 제공]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노란봉투법 환노위 통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정의당 제공]

이에 현대차는 점거 시위에 가담한 사내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 29명을 상대로 손해배상으로 20억원을 청구했다. 피소된 노동자들은 하청 노동자들을 직고용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사측이 교섭을 거부한 만큼, 한 달간 진행된 점거 시위는 정당한 쟁의 행위에 해당한다고 물러서지 않았다.   

다만 1심에서는 이들의 노동쟁의 행위에는 정당성이 없으며 현대차의 손배 청구가 타당하다고 판단, 점거 시위 가담자들에게 20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후 현대차는 정규직 전환 소송을 포기한 25명의 노동자들에 대해선 손배 소송을 취하, 정규직 전환 의지를 굽히지 않은 4명에 대해선 항소를 제기했다. 2심 판결도 이와 궤를 같이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노동자들에게 20억원의 손해배상을 판결한 1·2심과 상반된 결론을 냈다. 불법 점거시위를 주동한 비정규직지회와 이에 동참한 노동자 개개인의 책임을 동일선상에 놓고 손해배상액을 책정한 것은 부적절하다는 이유에서다.  

이와 관련, 대법원은 "헌법상 근로자에게 보장된 단결권과 단체행동권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을 뿐 아니라 손해의 공평·타당한 분담이라는 손해배상제도의 이념에도 어긋난다"고 판시했다.

이날 대법원 3부는 현대차가 비정규직지회 소속 근로자 5명을 상대로 4500만원을 청구한 손배 소송 상고심에서도 배상액으로 2312만원과 그 지연 이자를 지급하라는 원심 판결을 뒤집고 사건을 울산지법으로 환송시켰다.

해당 비정규 근로자 5명이 소속된 비정규직지회는 2013년 7월경 현대차 울산공장 내 생산라인 일부를 점거해 약 한 시간가량 공정을 중단시켰다. 대법원은 이에 대해 쟁의행위에 따른 생산 차질이 반드시 고정비용 손해로 이어진다고 볼 개연성이 부족하다고 봤다. 

이와 관련, 민주노총 한 고위 관계자는 <뉴스캔>과의 통화에서 이번 대법원 판결이 "정당한 노동쟁의 행위에 대해 천문학적 금액의 손해배상 청구로 노동자 죽이기 식 소송을 거는 기업들의 행태를 바로잡을 계기가 될 것"이라며 "이번 판례가 노란봉투법 국회 처리에 큰 자양분이 되리라고 본다"고 대법원 판결을 환영했다.

반면 현대차 측은 대법원 원심 파기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파기환송심에서 추가 대응한다는 입장이다. 노란봉투법을 반대하고 있는 기업계도 불법 노동쟁의에 대한 유일한 대응 수단마저 제한하는 것은 기업 생태계를 파괴하는 악법이 될 것이라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4월 25일 국회 환경노동위에서 여야 의원들이 노란봉투법을 놓고 언쟁 중이다. [사진=국회 사무처 제공]
4월 25일 국회 환경노동위에서 여야 의원들이 노란봉투법을 놓고 언쟁 중이다. [사진=국회 사무처 제공]

◆ 여야, 대법원 판결에 온도차 극심...'입법 전쟁' 불가피


대법원 판결에 여야 반응은 크게 엇갈렸다. 여당은 대법원의 '노란봉투법 알박기 판결'이라며 날을 세운 반면, 야당은 '노조법 개정안의 취지에 부합한 판결'이라며 반색했다.

국회 본회의에 회부된 노란봉투법은 양곡관리법, 간호법에 이어 쟁점 법안 3호로 줄곧 지목돼 왔다. 여당의 '노란봉투법 총력 저지' 기조와 야당의 '6월 임시국회 강행 처리' 기조가 상충하고 있는 만큼,  국회 입법 전쟁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는 김영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법원 판결이 있은 다음 날 국회 기자회견을 통해 "어제 판결 취지는 지난 1년여 국회에서 논의했었던 노조법 2조, 3조 개정 취지에 명확히 부합하고 현재 상황을 반영한 판결"이라며 "판결을 존중하고 같이 개정에 나갈 것을 약속드린다"고 강조했다.

이어 본회의 처리 방침에 대해선 "원내지도부와 긴밀하게 협의해 최대한 빨리 진행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여당은 대법원 판결을 부정하며 노란봉투법 국회 처리를 총력 저지한다는 방침이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대법원 판결에 대해 '노란봉투법 알박기 판결'이라며 "입법과 사법을 분리한다는 헌법 원리에 대한 도전"이라고 고강도 비판을 냈다. 노란봉투법이 국회에 계류된 상황에서 나온 이같은 판결은 국회 입법권에 대한 간접적 영향력 행사라고 판단한 것.

현재 여당은 노란봉투법 본회의 통과를 저지하기 위한 방법론의 일환으로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방해) 등을 고려하고 있다. 아울러 본회의 통과 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적극 건의한다는 방침이다.

한편 노란봉투법은 국회 환노위를 거쳐 지난달 24일 본회의에 직회부됐다. 이에 관련법안은 숙려 기간 등을 고려해  이달 임시회 내 본회의 처리가 가능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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