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재출시된 '혜자 도시락'이 1년 만에 판매실적 2800만개를 돌파했다. 그녀의 혜자로움이 덧붙여진 것이었으니 당연한 결과란 게 공통된 반응이다. [사진=GS리테일 제공]
지난해 재출시된 '혜자 도시락'이 1년 만에 판매실적 2800만개를 돌파했다. 그녀의 혜자로움이 덧붙여진 것이었으니 당연한 결과란 게 공통된 반응이다. [사진=GS리테일 제공]

[뉴스캔=김나현 칼럼니스트] 죄송스럽지만 오늘도 술자리에서의 에피소드로 시작하려 한다. 오해는 하지 말았으면 싶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하루가 멀다 하고 술을 마시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런 건 전혀 아니니 말이다. 다만 친구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고 가니 글거리로 활용하는 것뿐이다.

안 그래도 이 문제로 친구들이 몇 번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렇게 자기들을 글 소재로 우려먹는 거면 받는 원고료 일부를 떼어주라는 그런 이야기다. 이것들이. 이거 하나 써봐야 원고료가 얼마나 된다고.

술자리에서 하는 이야기가 다 그렇듯 오늘도 누가 누가 더 불쌍하냐로 운을 띄우기 시작했다. 한 놈이 회사 생활이 더럽고 아니꼽고 메스껍고 치사하다고 그랬던 게 시작이었다.

“나만 할까. 그래도 00이 말이 마냥 틀린 말은 아니지. 다 먹고 살자고 이 고생을 하는 건 맞지. 그거만 아니었으면 진작 이 놈의 회사 때려치우고도 남았다. 먹고 사는 게 뭔지. 에휴, 술이나 먹자.”

이 나이쯤 되면 몰라도 안다. 그 친구의 말대로 먹고 산다는 일이 얼마나 녹록치 않은 지를. 우리 부모님 세대처럼 정말 먹고 살 게 없어서 그러는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먹고 사는 일이 그리 만만치는 않다는 것 정도는 몸소 겪어온 세대가 아닌가. 결국 그 날의 주제는 먹고 사는 것의 지난함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다 보니 최근 미친 듯 오르는 물가에로까지 이야기가 옮아갔고.

“사과 하나에 5천원이야. 그래서 못 먹어.”

“냉면 한 그릇에 1만 5천원이야. 그래서 못 먹어.”

“설렁탕 한 그릇에 1만 2천원이야. 그래서 못 먹어.”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을 해야 믿지. 다들 벌 만큼 버는 인간들이 할 이야기는 아니었다. 물론 최근의 물가가 무섭긴 하다. 그래도 다들 먹고 살만한 놈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니 그저 중년들의 블랙 코미디 정도로 이해하고 넘어갈 수준이었다. 그러다 문득 등장한 한 후배의 이야기에 귀가 번쩍 뜨였다.

“이야기 들었니? 00이 사업이 잘못 됐나봐. 빚이 수십억이라던데.”

지금은 만나지 않는 한 후배에 관한 이야기였다. 한때는 참 친했던 후배였는데 어느 순간 멀리하게 된 친구였다. 딱히 다툰 것도 아니었는데 왜 그리 됐을까 싶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워낙 돈 있는 집 자식으로 자랐다보니 어느 지점에서는 필자와 너무 다른 성향을 보였었고 그게 조금씩 불편하던 때였다. 그러다 불거진 어느 문제 때문에 점차 소홀해지고 결국은 만남을 접기까지 했던 거였다.

세상 어리석은 사람처럼 투자를 결정한 내 자신에게 스스로 벌을 내려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그래서 남들처럼 식당에 가서 외식을 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한 십여 년 조금 더 된 이야기다. 당시 초등학교 무상급식 문제를 두고 사회적 논쟁이 불 지펴지던 시절이었다. 대략적인 내용은 다들 아실 테니 건너뛰자. 필자의 경우, 당연히 그에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돈이 없어 밥을 못 먹는 결식아동이 생겨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었으니까. 근데 그 후배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젠 시간이 너무 지나 기억이 희미하지만 아마 그랬을 거다. 괜한 세금 들여서 전체 무상 급식을 할 필요가 있냐는 식이었을 거다. 형편이 되면 돈을 내고 형편 안 되는 애들에겐 따로 쿠폰이든 현물 지원이든 하면 되지 않겠냐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었던 기억이 난다. 충분히 그리 말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어쨌든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지원은 하자는 어조였으니까. 근데 난 그게 너무 싫었다. 그래서 다퉜고(정확히는 나 혼자 열 받아서 쏘아붙인 거지만) 그 결과 소원해진 케이스였다.

◆ 누구보다 혜자스럽게 날 먹여 살린 도시락

그랬었다. 초등학교 애들이라고 세상 물정을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자기 집에 돈이 없어 무상 쿠폰을 받는 모습을 다른 아이들이 알게 되면 그 아이들에겐 정말 큰 상처가 될 거라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좀 격한 어조로 반론을 제기했는데 그 후배가 ‘그깟 돈 몇 푼’이란 말을 내뱉었고 그게 내 뇌관을 건드리고 말았다. 너무 기가 차서 후배를 몰아붙였을 거다.

“그깟 돈 몇 푼 없어 죽는 사람도 있어. 니가 뭘 알겠니? 좋은 부모 만나 평생 돈 걱정 없이 살았으니.”

해선 안 되는 말이었다. 살다보면 서로의 의견이 맞지 않는 일은 하루에도 몇 번씩 일어나는 거란 걸 모르지도 않는 나이였다. 그럴 때마다 감정의 찌꺼기를 맹렬하게 소진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걸 모르지도 않았고. 뻔히 알면서도 종소리를 들은 파블로프의 개처럼 침을 흘리며 반응한 건 아마 당시 내 경제 사정이 원활치 않은 탓이었을 거다. 그러니까 일종의 자격지심이 발동을 한 탓이란 말이다.

GS25가 최근 출시한 '혜자 도시락' 신제품. [사진=GS25 제공]
GS25가 최근 출시한 '혜자 도시락' 신제품. [사진=GS25 제공]

이 칼럼에서도 지나치듯 언급한 적이 있는데 내 통장이 바닥을 보인 적이 지금껏 두어 번 있었다. 그때가 그랬다. 돈이 눈이 멀어 어리석은 투자를 하다 정말 기초생활수급자 신세가 되어버렸던 때였다. 그래도 다니던 회사가 있고 그래서 월급이란 걸 받으니 아예 못 살 정도는 아니던 수준이었지만 십수년간 모아둔 돈이 한꺼번에 날아가는 충격 앞에 방황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때였으니 집에 돈이 없어 밥을 못 먹는 결식아동들에게 극도의 감정이입을 했던 것. 마치 그 아이들의 대변자라도 된 양 할 때였으니 후배의 이야기에 불을 켤 수밖에 없었던 거였다. 지켜보던 사람들이 뜯어말릴 정도로 내 감정이 격앙되는 통에 그날의 자리는 어색하게 파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는 앞서 이야기한 대로다. 그렇게 후배와 나는 멀어졌다.

그 일 이후 상당 기간 난 그 날의 내 행동을 후회하며 살아야 했다.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음에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건 매 끼니 먹는 걸로 고민을 하던 내 신세가 서럽고 서러워서가 아니었을까. 앞서도 말했지만 모아둔 돈이 날아가긴 했지만 그래도 월급을 적잖이 받으니 사는 게 힘들 일은 없었다.

이전처럼 먹고 싶은 거 먹으면서 살아도 되었다는 말이다. 근데 그럴 수가 없었다. 세상 어리석은 사람처럼 투자를 결정한 내 자신에게 스스로 벌을 내려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했던 탓이었다. 그래서 남들처럼 식당에 가서 외식을 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도 안 먹을 수는 없었다.

 [일러스트=프리픽 제공]
 [일러스트=프리픽 제공]

못난 자식이지만 그마저도 이쁘다며 삼시세끼 끼니를 챙겨주던 부모님 덕에 적게라도 매 끼니를 챙기던 습관이 몸에 익은 탓이었다. 결국 선택한 건 라면과 삼각김밥, 혹은 저가의 편의점 도시락이었다. 먹어본 사람은 안다. 아무리 라면을 좋아해도 매일 먹다보면 금세 물려온다는 사실 말이다.

그래서 결국은 밥과 반찬으로 구성한 편의점 도시락이 주된 메뉴가 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야 편의점 도시락의 퀄리티가 크게 나쁘진 않지만 십년도 훨씬 전인 그때는 좀 그랬다. 그러나 단 하나의 예외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마더 혜레사'로 불리는 탤런트 김혜자 선생님의 이름을 딴 모 편의점의 ‘혜자 도시락’이었다.

기억으로는 한 3000원 조금 안 되는 가격이었던 것 같다. 이전까지의 편의점 도시락과는 달리 가격 대비 은혜로운 구성으로 '가성비가 좋다'는 의미인 '혜자롭다' 혹은 ‘혜자스럽다’는 신조어를 만들어낼 만큼의 품질이었다.

듣기로는 김혜자 선생님이 새로이 출시되는 혜자 도시락의 출시 조건으로 학생과 청년들이 양질의 먹거리를 저렴하게 누릴 수 있게 해 달라는 걸 내걸었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참 많이도 먹었다. 종류도 다양해 이맛 저맛 골라먹는 재미를 누려가며 즐겼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과장이 섞이긴 했지만 그 덕분에 지금의 풍요(?)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고까지 생각할 정도다. 이런 성은을 입은 이가 비단 필자만은 아닐 것이다.

지난해 한동안 단종되었던 혜자 도시락이 재출시되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물론 사먹어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왠지 추억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만큼 혜자 도시락은 필자에겐 좋은 기억으로 남은 때문이다. 듣기로는 김혜자 선생님이 새로이 출시되는 혜자 도시락의 출시 조건으로 학생과 청년들이 양질의 먹거리를 저렴하게 누릴 수 있게 해 달라는 걸 내걸었다고 한다. 정말 '마더 혜레사'다운 선택이 아닌가 싶다.

근데 이런 걸 먹고 산 나는 왜 이리 졸렬하고 옹졸한지 모르겠다.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사정이 어려워 주변 지인들에게 돈을 빌리고 다닌다는 그 후배가 내게 연락을 해왔으면 싶다. 큰 돈은 아니겠지만 다만 얼마라도 그 친구에게 보탬이 되고 싶은 마음이니까. 그게 내가 저지른 잘못을 사과하는 길인 것도 같고.

꼬릿말 하나. 이 글은 절대로 광고가 아닙니다. 요즘 식으로 표현하자면 100% 내돈내산이라는 말이지요. 그럼에도 굳이 광고를 주시겠다면 너무 감사합니다만, 헤헷.

김나현 칼럼니스트
김나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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