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네이버 블로그 '꿈꾸는 다락방']
 [사진=네이버 블로그 '꿈꾸는 다락방']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내게 이런 날이 올 줄이야. 최근 들어 한 노래에 심하게 꽂혀 수시로 그 노래를 듣고 사는 중이다. 하루에 족히 10여 번은 듣는 느낌이랄까. 좋아하는 노래라면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이라면 그런 걸로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라는 지극히 꼰대스러운 발언을 한다는 게 의아할 테지만 최소한 내 입장에서는 분명히 그렇다. 음악이란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 성정의 소유자가 바로 나니까. 

음악을 싫어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다른 이들처럼 이어폰을 꽂고 지하철에서, 길거리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나다. 음악을 듣는 그 시간에 차라리 책을 보거나 이도저도 아니면 하잘 데 없는 공상을 하는 게 백번 낫다고 믿어왔던 인간이기 때문이랄까. 

어린 시절부터 그랬다. 젊은 시절, 대학 동기들이 열심히 출근부를 찍던 락카페도 딱 한번 가보고 발길을 끊었었고(음악이 너무 시끄러웠다) 친구들이 이문세와 서태지에 열광하며 앨범을 사들였을 때도 그 돈이면 책이 몇 권인데 하며 시큰둥했던 이였으니까.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나이가 들어서도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회식 후엔 필수적으로 가야만하던(구석기 시대 회사원이라면 누구나 아는 일이다) 노래방도 웬만하면 핑계를 대고 도망칠 정도로 음악과는 데면데면한 관계를 이어왔다. 이 정도론 수긍이 어렵다면 이건 어떨까. 이제는 폐차를 눈앞에 둔 14년 된 내 차의 라디오 버튼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면서 살아왔다면 조금은 이해가 되지 않을는지.

그랬던 내가 노래를 듣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얼마 전 나온 따끈따끈한 노래다. 더 놀라운 건 그 노래를 부른 사람의 정체다. 이 나이 또래의 여자가 좋아할 만한 가수들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오산이다. 김광석도 아니고 유재하도 아니다.

중년의 아줌마들에게는 신적인 존재라는 임영웅은 더더욱 아니다. BTS나 세븐틴처럼 젊고 잘 생긴 꽃미남 그룹도 아니다. 주인공은 비비라는 여자 가수니까. 그녀의 달달한 노래 ‘밤양갱’에 꽂혀 하루를 살아가는 중이란 말이다. 들어보면 안다. 미칠 정도로 달달 그 자체인 노래다. 뭐, 내용은 남자에게 차인 여자의 넋두리이지만 그 목소리가 너무도 달달하다. 그래서 꽂힌 거다.

설탕성애자의 효시로 불리는 백종원의 등장 이후 조명된 대한민국의 달달함은 멈추지 않고 쾌속진격중이다.

임영웅에 꽂혀 덕질을 해대던 이모를 보며 한심하다고 생각했던 내가 바야흐로 덕질을 하고 있는 이 상황을 스스로도 의아해하고 있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진짜 진심 완전 달달하거든. 아련한 목소리로 내 영혼에 당을 강제주입하는 그 경험은 해보지 않으면 모를 일이다. 이렇게 달콤해도 될까. 금세 물리지는 않을까.

걱정은 되지만 현재로서는 지금 이 순간을 즐길 밖에. 이러는 사람이 어디 나 하나뿐일까. 다들 설탕범벅에 열광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설탕성애자들이 넘쳐나는 대한민국에 나 하나 더 보탠다고 뭐 그리 문제가 될까. 

◆ 달콤한 마법의 주문을 외워보자

설탕성애자의 효시로 불리는 백종원의 등장 이후 조명된 대한민국의 달달함은 멈추지 않고 쾌속진격중이다. 그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곳이 바로 식당가다. 요즘 식당에 가면 경험하게 되는 가장 큰 문제는 전반적으로 음식들이 너무 달다는 것이 그것. 밥을 제외한 모든 반찬이 과도할 정도로 달게 느껴지는데 이는 단순한 느낌이 아니라 실제상황이다. 오죽했으면 가게 주인들에게 묻기까지 했을까.

그때마다 대답은 한결 같았다. 그래야 맛있다는 소리를 듣는다는 거였다. 젊은 세대들의 입맛이 그걸 원하니 가게 주인들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는 건데, 그럴 때마다 답답함이 밀려온다. 모든 음식에는 각자의 정체성이 있는 법인데 그걸 무시하고 무작정 달기만 하니 음식 본연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가 없는 사태를 초래하는 것 아닌가 싶어서다.

물론 달아야 하는 음식들이 있다. 디저트류가 대표적이다. 요즘 젊은 세대들의 소울푸드라는 탕후루처럼 이보다 더 달 수 없는 음식들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는 것도 안다. 냉정히 말하면 필자는 누구보다 더 설탕성애자에 가깝다.

설탕이 포함되지 않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커피도 아니라는 말도 안 되는 신념은 기본이고 밋밋하기 그지없는 바게트나 소금식빵을 왜 먹을까 하는 주장까지도 펼치는 그런 사람이 바로 필자니까. 달기로 정평이 난 딸기에조차 설탕을 뿌려야 직성이 풀리고 팥죽엔 소금이 아닌 설탕이 국룰이라고 믿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그런 필자조차도 고사리나물에서 느껴지는 설탕의 달콤함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요즘 음식은 달기만 하다. 왜 그럴까 싶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봤다. 지금부터는 지극히 뇌피셜에 근거한 주장이니 그냥 듣는 둥 마는 둥 해주시면 감사하겠다. 

그런 경험들 있을 것이다. 모처럼 몸을 과하게 움직여 기력이 소진하게 되면 으레 당이 떨어져서 그렇다는 말과 함께 달달한 음식을 섭취하게 되는 그런 경험들 말이다. 달콤한 음식을 먹으면 금세 기운이 돌아오는 건 단순한 플라시보 효과가 아닌 실제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이다.

 [사진=네이버 카페 '진아마켓']
 [사진=네이버 카페 '진아마켓']

설탕에 포함된 당이 우리 몸의 원기를 북돋워주는 작용을 하는 것. 타고난 문과 체질이라 정확한 메커니즘은 모르지만 분명한 과학적 증거가 존재한다는 정도는 안다. 이렇듯 설탕으로 대표되는 당의 존재는 우리 삶에 원기를 북돋워주는 중차대한 임무를 띠고 있다. 그럼에도 매번 욕을 먹는 설탕이 불쌍하다.

다들 잘 알 거다. 설탕은 반드시 필요한 식재료라는 걸. 때론 퀴퀴한 냄새를 잡아주기도 하고 또 때론 짠맛을 중화시켜주기도 하는 능력을 지녔다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현재의 설탕 사랑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발생하는 건 행여 건강에 해를 끼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건 각자가 알아서 조절해야 옳을 일이다.

아무튼 그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설탕은 갈수록 그 위세를 키우고 있다. 왜일까? 지금처럼 설탕이 사랑받는 건 어쩌면 그만큼 설탕이 필요한 일이 잦아진다는 반증 아닐까. 피곤할 때면 떠오르는 게 단 음식이라고 한다면 그만큼 자주 피곤해지고 있다는 뜻이겠지. 근데 그 피곤이 꼭 몸의 피곤만일까.

지금 당신을 괴롭히는 것들을 떠올려보자. 아마 몸이 아닌 정신이 피곤한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그런 상황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간단하다. 정신을 위로해줄 달달한 걸 찾아야겠지. 내 마음에 설탕 한 수저 뿌리는 일. 필자가 비비의 노래 밤양갱을 들을 즈음이 딱 그랬다. 하던 일이 조금 꼬여 마음이 극히 심란했던 차였다. 바로 그때 우연히 유튜브의 알고리즘에 의해 듣게 된 그녀의 노래 한 소절, ‘달디달고 달디달고 달디단 밤양갱 밤양갱.

내가 먹고 싶었던 건 달디단 밤양갱 밤양갱이야’ 너무나도 상큼한 그 노랫말에 반강제적으로 무장해제를 당했었고 이는 곧 그 가수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는 익히 알다시피 그녀의 이전 노래들을 모두 찾아듣는 지경으로까지 발전하고야 말았다. 아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그녀의 노래는 사실 달달한 노래가 아닌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오죽하면 어둠의 아이유라는 별명까지 있을까.

그랬던 그녀가 세상 달콤한 여자로 돌아온 거였다. 달라진 변신이 더 드라마틱해보이는 이유기도 하다. 안 그랬던 사람이 달달해지니 그 달콤함이 더 짜릿하게 느껴졌달까. 

그 달달함에 매료된 나는 그녀의 새로운 팬이 되었고 그녀가 원하는 대로 달디 단 밤양갱을 마트에 가서 사오기까지 했다는 점이다. 밥을 먹고 난 뒤면 으레 찾았던 카라멜 마끼아또 대신 밤양갱 한 개를 우적우적 씹으며 행복함을 만끽하는 중이다.

이전에도 먹었던 밤양갱이지만 지금 먹으니 또 새로웠다. 모르긴 해도 세상에는 나처럼 그녀의 노래를 통해 밤양갱의 존재를 새삼 접한 이들이 존재하지 않을까. 한국의 달달함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밤양갱은 그래서 반갑다.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독특한 텍스처와 함께 정신까지 어루만지는 듯한 그 달콤함이 주는 마력은 쉬이 뿌리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달콤함이 전 세계인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근데 생각해보면 그 노랫말에 밤양갱 대신 다른 음식이 들어섰다 해도 난 반했을 것 같긴 하다. 달디 단 식혜여도 괜찮았을 것 같고 달디 단 한과거나 달디 단 곶감이어도 괜찮았을 것 같다는 그런 생각. 따지고 보면 우리 음식에도 달달한 것은 차고 넘쳤다. 그렇게 오랜 세월 먹어온 달콤함을 새삼 2024년에 이르러서야 재인식하고 있는 셈이다. 

하긴 꾸며지지 않은 달콤함이 가득 깃든 대한민국의 음식들에 열광하는 건 비단 우리들만이 아니다. 최근에는 곶감이 그 지명도를 넓히고 있다는 뉴스도 접한 바 있을 정도로 문화와 음식의 콜라보가 활발해지고 있으니까. 팬심인지는 모르겠지만 조만간 밤양갱도 그 대열에 합류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자라고 있는 중이다.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독특한 텍스처와 함께 정신까지 어루만지는 듯한 그 달콤함이 주는 마력은 쉬이 뿌리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달콤함이 전 세계인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라고 믿는다. 

오늘도 난 주문을 왼다. ‘달디 달고 달디 달고 달디 단 밤양갱’이란 주문. 그러면 언제 그랬냐는 듯 행복해지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거기에 더해 흘러나오는 달콤한 음악에 맞춰 먹는 밤양갱 하나면 난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여자가 된다. 진짜 세상은 오래 살고 볼 일이다. 

김나현 칼럼니스트
김나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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