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둘씩 새로운 K-푸드가 외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이러다 '마리아주'란 프랑스 말 대신 '음식 궁합'이란 우리말이 세계를 호령하지 않을까. [일러스트=이하나 기자]
 하나둘씩 새로운 K-푸드가 외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이러다 '마리아주'란 프랑스 말 대신 '음식 궁합'이란 우리말이 세계를 호령하지 않을까. [일러스트=이하나 기자]

살면서 스스로를 특별히 애국자라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특정 시즌에 접어들면 가끔은 ‘혹시 나도’란 착각 아닌 착각을 하게 된다. 월드컵이나 올림픽처럼 국가 대항전이 펼쳐지는 때가 그렇다.

다들 알겠지만 지금 카타르에선 축구 아시안컵이 한창이다. 개인적으로 축구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물론 손흥민, 이강인은 안다. 덤으로 조규성도..) 그래도 우리나라 경기는 놓치지 않고 보는 편이다. 16강전에서 사우디를 극적으로 제압한 우리 국가대표 축구팀은 호주와의 8강전에서 1대0으로 패색이 짙다 추가시간 1분을 남겨놓고 극적인 동점골로 연장전에 들어갔고, 이후 손흥민의 결승 프리킥이 나오면서 4강 진출을 일궈냈다.

물론 대회 우승이 최종 목표겠지만 그래도 축구란 건 누군가의 말처럼 둥근 공으로 하는 것이니 어디로 튈지는 모를 일이다. 승패야 병가지상사이니 행여 진다 해도 그간 수고한 선수들의 노고를 위로할 생각이다. 

중요한 건 그 순간 내 옆에 시원한 맥주 두어 캔과 그의 영원의 파트너인 치킨이 준비되어 있을 거란 점이다. 응원을 하며 먹는 치킨만큼 맛있는 음식은 없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주객전도의 발상일지는 모르겠지만 축구를 보기 위해 치킨을 먹는 게 아니라 치킨의 맛을 더해주기 위한 소스로 축구가 필요하다는 그런 발상을 떠올릴 만큼 축구를 보며 먹는 치킨의 맛은 환상적이다.

물론 그 시간을 책임져줄 야식은 차고 넘친다. 족발도 있고 보쌈도 있고 요즘 한창 즐기는 마라샹궈도 치킨의 자리를 대신해줄 수 있는 대체재니까. 그래도 치킨을 따라갈 순 없다. 축구와 치킨의 궁합은 그만큼 절묘하기 때문이다. 이런 걸 가리켜 마리아주라고 하든가. 

음식 궁합 따지는 걸로는 우리만큼 까다로운 민족이 없다.

왜 쉽고 편한 우리말을 놔두고 혀도 잘 굴러가지 않는 마리아주란 말을 써야하나 싶어서다.

한번쯤 들어봤겠지만 서로 어울리는 음식을 찾아내서 조화를 이뤄 최상의 맛을 얻어내는 것을 ‘마리아주(Mariage)’라고 한다. 마리아주는 매리지, 즉 결혼이란 의미를 지닌 프랑스어다. 결혼생활을 하는 동안 서로 융화가 되는 궁합이 매우 중요한 것처럼 음식 간의 조화로운 궁합도 중요하다는데서 유래된 이 단어는 주로 와인과 관련돼 많이 언급되어져왔다. 와인의 본고장이 프랑스인만큼 매리지란 영 단어 대신 마리아주란 프랑스어를 차용하는 것일 테고. 

최근에는 와인을 넘어 다양한 음식 궁합을 의미하는 것으로 쓰여지는데 개인적으론 그리 즐겨하지 않는 단어다. 이전에 언급한 적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좋은 우리말 놔두고 영어나 그 밖의 외국어를 실생활에서 쓰는 걸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음식 궁합이라고 하면 되지 않나. 음식 궁합 따지는 걸로는 우리만큼 까다로운 민족이 없는데 왜 쉽고 편한 우리말을 놔두고 혀도 잘 굴러가지 않는 마리아주란 말을 써야하나 싶어서다. 잡설이 길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우리민족의 음식 궁합 찾기는 전 세계를 통틀어 단연 으뜸이란 점을 밝히고 싶다는 거다.

당장 치킨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수염 난 할아버지로 대변되는 느끼한 프라이드치킨이 치킨 조리법의 전부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외국과는 달리 코리안 프라이드치킨은 거의 모든 방법을 동원해 치킨의 맛을 극대화시키고 있지 않은가. 클래스가 다른 프라이드치킨부터 시작해 양념치킨, 간장치킨, 마늘치킨, 양파치킨...

휴우 언뜻 떠오른 것만 해도 이 정도다. 여기에 다양한 사이드메뉴를 곁들여먹는 것까지 고려하면 우리나라에서 치킨을 즐기는 방법은 무궁무진 그 자체다. 심지어는 밥까지 곁들여먹을 정도니 이 정도면 말 다 한 거 아닐까. 게다가 치킨의 맛을 끌어올리기 위한 다양한 시도는 아직도 이어지고 있으니 1~2년 후에는 또 어떤 치킨이 등장해 우리의 입맛을 매료시킬지가 궁금해질 정도다. 

이게 치킨뿐이라면 말도 안 한다. 외국에서라면 단순해질 음식도 우리나라에서는 복잡한 조리과정을 거치는 것은 물론이고 맛의 극대화를 위한 다양한 시도 역시 이어진다는 것은 상식이잖은가. 이러니 우리 민족을 음식에 진심이라고 하는 것이다.

당장 그제 회사 사람들과 먹은 낙곱새만 봐도 알 수 있다. 낙지와 곱창, 새우는 따로 먹어도 충분히 맛있는 식재료지만 그 셋을 한꺼번에 조리하면 또 새로운 맛이 난다는 건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안다. 때로는 새우 대신 차돌박이가 들어가기도 하고 또 어느 순간에는 곱창과 닭이 만나기도 한다. 묵은지가 닭갈비를 감싸는 발상은 또 어떤가.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재료들을 과감하게 매치시키고 그를 통해 새로운 맛을 찾아내는 이런 점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가장 뛰어난 부분이 아닐까 싶다. 특정한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이런 마인드가 있어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여기선 칼럼의 특성상 음식으로 풀고는 있지만 다른 사회 현상을 봐도 이런 부분은 확실히 드러난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음식 칼럼이니 음식 이야기로 돌아가겠다.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단어 중 하나가 ‘원래’라는 말이다. 한자어 표기인 원래(元來)의 사전적 정의는 사물이 전해져 내려오는 내력의 맨 처음을 의미한다. 사물의 처음 시작을 밝히는 이 말이 어느 순간부터 우격다짐의 동의어처럼 쓰여지는 걸 왕왕 목격하면서 불호하는 단어가 되어버린 것.

 대표적인 K-푸드인 비빔밥. [일러스트=프리픽]
 대표적인 K-푸드인 비빔밥. [일러스트=프리픽]

가령 이런 거다. 이건 원래 저랬어. 원래 이게 맞는 거야 따위의 멘트가 그렇다. 논리도 없고 근거도 빈약한 주장을 펼치면서 그를 보완하기 위해 ‘원래’라는 단어를 붙여넣는 식이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하는 세상조차도 존재하지 않는 지금이다. 그런 세상에서 원래 따위의 말로 자기 주장을 펼치는 것은 너무 심하지 않은가. 

고교시절 배웠던 데카르트의 철학론 역시 이와 맥락이 닿아있다. 그의 대표적 논지인 방법적 회의는 기본적으로 진리를 찾기 위해 모든 것을 의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을 한다. 모든 사람들이 확고부동한 진리라고 믿고 있는 사실조차도 사실은 거짓일 수 있다는 내용이다.

길게 설명하면 복잡한 철학시간이 될 테니 이는 생략토록 하겠다. 정 궁금한 이라면 네이버한테 물어보든지. 결론은 우리가 진리라고 믿는 사실조차도 확언할 수 없는 세상에서 원래가 어떻고 저떻고 하는 것이 타당키나 하냔 말이다. 그럼에도 주변에는 그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하나둘씩 새로운 K-푸드가 외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때가 되면 마리아주란 프랑스 말 대신 '음식 궁합'이란 우리말이 세계를 호령할 수도 있지 않을까. 

며칠 전 들렀던 순대국밥집에서 점심을 먹을 때의 일이다. 족히 여든은 되어 보이는 어르신 셋이 앉아서 순대를 막장에 먹느냐 소금에 먹느냐로 아옹다옹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전라도분이 안 계셨든지 초장으로 다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 논쟁은 상당 시간 지속되었다. 거기까지였으면 으레 봄직한 친구들의 훈훈한 실랑이 정도로 끝났겠지만 사달은 그 이후였다. 술자리에서 절대 금물이라는 정치 이야기가 시작되어버렸던 탓이다. 

그 이후는 대충 짐작이 가실 것이다. 원래는 이랬고 예전에는 저랬다 하며 얼굴을 붉히는 것까지 보고 나왔지만 아마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꽤나 감정들이 상하시지 않았을까 생각해보았다. 심심찮게 목격하는 장면들이다.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취향은 있다. 중요한 것은 상대의 취향을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일 아닐까. 순대를 소금에 찍든 막장에 찍든 맛있게 먹을 수만 있으면 그뿐인 일이다. 그런데 굳이 내 방식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건지. 그런 고리타분하고 편향된 발상들이 소음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왜 모르는 걸까.

우리가 그런 고리타분한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는 민족이라면 족발에 냉채를 곁들이는 발상은 영원히 하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콩국수에 설탕을 넣을 수도 있고 소금을 칠 수도 있다. 회는 간장에만 찍어먹는 것이 아니고 초장에도 막장에도 찍어먹을 수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면 보다 다양한 맛을 음미하게 되는 것처럼 인생 역시 정해진 길만 따라가야 하는 것이 아님을 상기시켜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최근 K-팝이나 K-드라마가 세계적인 흥행을 이루면서 덩달아 K-푸드의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다는 소식이 왕왕 들려온다. 그래봐야 아직은 치킨이나 비빔밥, 김치 등 기존의 유명 음식들 위주긴 하지만 이 추세대로라면 하나둘씩 새로운 K-푸드가 외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때가 되면 마리아주란 프랑스 말 대신 '음식 궁합'이란 우리말이 세계를 호령할 수도 있지 않을까. 

김나현 칼럼니스트
김나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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