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길에서 배낭의 무게는 욕심의 무게다. [제공=김길 칼럼니스트]
산티아고 길에서 배낭의 무게는 욕심의 무게다. [제공=김길 칼럼니스트]

 

친했던 여자 선배는 남편이 백화점에서 물건을 고를 때 10분이 넘지 않는다는 자랑인지 핀잔인지 넋두리를 늘어 놓는다. ‘폴로랄프로렌’과 ‘빈폴’이라는 취향이 확실한 브랜드가 있고, 옷을 고르는 방식은 ‘눈에 띄는 거 짚는다’, ‘묻는다 (사이즈 등)’, ‘산다’ 딱 세 단계라고. 그리고 선배의 남편은 쇼핑하는 시간을 아주 아까워한다며 할인매장을 가면 '50% 세일'에도 살 수 있는 옷을 따지지도 않고 막산다고 푸념을 했다. 

반면 그 형님은 이런 이야기를 한다. 어느 날 냉동실을 열어보니 ‘얼린 게장’이 한가득 있고, 김치냉장고에는 평소 좋아하지도 않는 ‘갓김치’가 있어 이게 웬거냐고 물으니 여자 선배로부터 "홈쇼핑에서 싸게 팔아서 쟁여 둔 것"이라는 답을 들었다고 한다. 그 형님은 "3개월 후에 버리든지 다음 이사 때까지 거기 그대로 있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굳이 저 집이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 가까이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다. 남자라서, 혹은 여자라서 다른 것일까?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너무나 흔해진, 수많은 물건들에 쌓여 있는 우리의 여러 모습 중 한부분일 것이다. 

'정말 필요해서 물건을 살까? 이 물건들은 정말 필요한 무엇일까?'

프랑스 국경에서 피레네산맥을 넘어 이베리아반도 서쪽 끝까지 가는 순례길의 첫날은 피레네 산맥을 넘어가는 여정으로 전체 일정 중 가장 힘든 날이다. 휴게소도 한 곳 밖에 없고 쉴 만한 곳이 없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산맥을 넘어가면 스페인 북부 론세스바이예스 수도원에 이른다. 이 일정에 고생한 사람들은 들고 온 물건 중 불필요하겠다 싶은 것들을 버린다. 버린 물건을 보면 가이드북부터 헤어드라이어, 수영복까지 다양하다. (물론 고가의 노트북이나 DSLR카메라는 없었다.) 순례자들은 버려진 물건들을 보며 등에 짊어진 가방의 무게를 ‘욕심의 무게’라며 웃는다.

여기서 하나 더 가난한 순례자의 가방은 더 무겁다. 남은 식재료를 가방에 넣고 다니기도 하고 썬크림이나 로션 같이 현지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사게 되면 가성비가 좋은 큰 물건을 고르게 되니 돈만 들고 가벼운 몸으로 다니는 순례자들에 비해 가방의 무게는 더 무겁다. 

나이가 들수록 쌓여가는 물건들을 보면서 정말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을 해 본다. 저거 다 버려도 되는데 버려지지가 않는다. 다 버리고 꼭 필요한 물건만 남기고 좋은 거 하나만 남겨 놓고 써야지 하는데 그 습관을 바꾸기가 정말 쉽지 않다.

여행을 하면 캐리어 하나에 필요한 모든 것이 들어간다. 아니 들어가야 한다. 살면서 딱 저 정도의 물건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런 상상을 해 보지만 막상 그렇게 되지 않는다. 

‘생활명품’이라는 연재에 앞서 습관적으로 사 댔던 물건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필요할 것이라 생각하며 싸다고 하니 샀던 것들이 지금은 '남는 물건'이지 아닐까 싶다. 평생 들고 다녀도 좋을 가방 하나에 들어갈 꼭 필요한 물건들 중 명품이라 불리어도 좋은 물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김길 / '전화기 디자이너'가 되려다 초콜릿바와 같은 거 외엔 할 디자인 없다는 것을 알고 포기. 현재 인터넷기업, 교육기업 전략실 경험을 살려 사업컨설턴트로 활동 중.
※김길 / '전화기 디자이너'가 되려다 초콜릿바와 같은 거 외엔 할 디자인 없다는 것을 알고 포기. 현재 인터넷기업, 교육기업 전략실 경험을 살려 사업컨설턴트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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