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아름답게 만들어 준 '새로운 거실' 스타벅스

 스페인 발렌시아의 스타벅스 매장 [사진=김길]
 스페인 발렌시아의 스타벅스 매장 [사진=김길]

10여년 전, 편하게 흡연을 했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때는 스타벅스에서 만나자고 하면 슬쩍 짜증이 났다. 이유는 담배 피우는 공간이 없어서였다.

경쟁사인 A사나 B사에는 별도의 공간이 있었다. 스타벅스 자료를 찾다 보니 일본 스타벅스에서는 담배를 피울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필자에겐 2013년이나 되어서야 생애 처음으로 일본 방문의 기회가 생겼다. 첫 방문지는 나고야였다. 볼 것이 많지 않은 도시라 시간이 남았을 때 나고야의 유명 커피집을 찾았다.

별세계였다. 커피와 케이크를 앞에 두고 담배를 피울 수 있던 세계, 행복했다. 그런데 나고야 공항에서는 스타벅스에 갔다. 아무 데서나 흡연할 수 없는 공항인지라 담배를 못 필 바에는 스타벅스가 편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스타벅스 매장 [사진=김길]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스타벅스 매장 [사진=김길]

그런데 일본 스타벅스에서는 담배를 피울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스타벅스가 있는 건물 테라스에 흡연 공간을 마련한 곳이 많이 남아 있다고 한다. 스타벅스가 북미 밖으로 처음 진출한 매장이 1996년 8월에 설립한 도쿄 긴자점이었다.

당시 일본의 흡연율은 성인 남자 58%, 여성도 14%였다. 카페에서 금연을 시도한다는 것은 무모함에 가까운 선택이었다. 그런데 스타벅스 창업자 슐츠는 금연에 대한 고집이 있었다. 경험을 중시했기에 커피 향기에 담배 냄새가 섞이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마찰이 있었다. 결국 선택한 것이 1층은 금연, 2층은 흡연이었다.

반면 1999년, 일본보다 3년 늦게 진출한 한국은 애초부터 금연이었다. 필자를 비롯한 남자들은 이런 무모한 곳이 있냐고, 값도 비싸고 담배도 못 피우는 스타벅스에 자력(?)으로 갈 일은 없을 것이라고 주위에 이야기 하곤 했다. (실제로 다른 커피전문점들은 흡연 공간을 마련해 주고 쿠폰도 주었기에 다른 곳들을 많이 이용했다)

일본 도쿄의 긴자 스타벅스 매장 [사진=김길]
일본 도쿄의 긴자 스타벅스 매장 [사진=김길]

결과는 2015년 중앙일보 ‘스타벅스 ‘한국 대박… 일(본에)선 고전 ’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보듯, 그리고 지금 스타벅스와 동급(?) 또는 프리미엄이라 여겼던 곳들은 슬금슬금 사라지고 있다.

흡연만으로 설명한다는 것은 억지스러울 것이다. 이외에 성공한 원인이 많겠지만 필자에게는 스타벅스만이 가지는 ‘편안함’을 중요한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편안함’ 애매한 표현이다. 극단적으로 중국에서는 ‘편안한 화장실’을 만들라는 지시를 했더니 화장실에 소파와 TV와 커피머신을 가져다 두었다는 일화가 있다.

창업 당시 스타벅스는 품질 좋은 커피를 지향했지만, 슐츠가 인수한 후에는 집과 일하는 공간과는 다른 ‘제3의 공간’에 주력했고 고객의 경험을 중요시 여겼다.

 일본 도쿄의 츠타야 스타벅스 매장 [사진=김길]
 일본 도쿄의 츠타야 스타벅스 매장 [사진=김길]

필자는 스타벅스를 '새로운 거실'이라고 생각한다. 카페 주인의 공간이 아닌 쓰는 사람들의 공간, ‘편한 공간’이라 해서 눕는 자리를 제공하는 극단적인 점도 없고, 대충 마시고 일어 서주기를 바라는 눈총 같은 것도 없는 공간인 것이다.

일례로 스타벅스 매장 계산대 앞에는 테이블이 거의 없다. 운영하는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는 정도의 거리는 불편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오래 앉아 있어도 뭐라 하지 않는다. 하지만 책상 위에 온갖 것을 펼쳐 놓을 만큼 넓은 공간도 제공하지 않는다.

푹신한 의자에는 낮은 테이블을 제공해서 오랜 시간 앉아 있기 힘들다. 또 그 공간은 낮은 곳이기에 여러 사람의 눈길을 받는다. 연인이 앉아 애정행각을 장시간 벌이기도 민망하다.

중국 스촨성 청두의 스타벅스 매장 [사진=김길]
중국 스촨성 청두의 스타벅스 매장 [사진=김길]

‘공간을 판다’라는 말에 공감했다. 스타벅스 이외의 장소들은 스타벅스와 비슷하지만, 디테일이 조금 달랐다. 정말 커피에 집중하는 곳이 있었고, 지점마다 다른 분위기와 다른 커피 맛이었던 곳도 있었고, 너무 편한 공간이 되어서 지저분함 마저 느껴지는 곳도 있었다. 

낯선 도시에 가면 스타벅스가 반갑다. 그 지역 문화에 따라 조금 다르지만 필자가 좋아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맛이 같고 서비스도 유사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낯설었던 인도에서도, 많이 안 맞을 것 같은 중국 시골에서도, 수많은 인파로 번잡했던 유럽 도시들 한가운데도 비슷했다. 

커피 한 잔 시키고 눈치 안 봐도 되고, 그 지역 문화에 실례가 되는 행동인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화장실에 대한 개방감이나 청소 수준도 비슷하고… 일상의 공간이 세계 곳곳에 생긴 것이다.  오히려 외국 스타벅스의 특색을 즐기는 재미도 쏠쏠하다.

우리나라의 스타벅스는 신세계와 50:50 공동투자를 시작으로 해서 대박이 났다. 지금은 2021년 7월에 계약이 만료되어 신세계가 해외 투자자와 함께 스타벅스의 지분을 인수하여 단독으로 운영 중이다. 그래서 불안하다.

중국 운남성 리장 스타벅스
중국 운남성 리장 스타벅스

코로나19가 잦아 들어가던 지난 2022년 1월, 신세계 스타벅스는 가격 인상을 하였다. 아메리카노는 거의 10% 인상, 이유는 ‘원두 가격 상승’. ‘공간을 파는 곳’에서 원두 값이 인상됐다고 가격을 인상한 것이다.

차라리 글로벌 부동산 가치 상승으로 건물의 가치가 올라 인상했다면 말이라도 됐을 텐데, 판매가의 10%도 안 되는 원두 값 상승을 빌미로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우리식이라 하면서 과거 일본의 스타벅스에서 담배를 피우듯, 새로운 한국식 스타벅스, 신세계 벅스가 될 것은 불안감이 들던 순간이었다. 브랜드 최초의 가치는 잘 지켜 주길 바라며 지금까지 스타벅스가 만든 일상의 공간을 ‘일상 명품’으로 남겨 본다. (커피 맛이 명품이 아니다!)

※김길 / '전화기 디자이너'가 되려다 초콜릿바와 같은 거 외엔 할 디자인이 없다는 것을 알고 포기. 현재 인터넷기업, 교육기업 전략실 경험을 살려 사업컨설턴트로 활동 중.
※김길 / '전화기 디자이너'가 되려다 초콜릿바와 같은 거 외엔 할 디자인이 없다는 것을 알고 포기. 현재 인터넷기업, 교육기업 전략실 경험을 살려 사업컨설턴트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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