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에서 배우 브루스 윌리스가 극중 소품으로 사용한 지포 라이터. [다이하드 영화 화면 캡처]
영화 에서 배우 브루스 윌리스가 극중 소품으로 사용한 지포 라이터. [다이하드 영화 화면 캡처]

제품 디자인을 전공 중이던 대학생 시절의 이야기다. 그 시절 친구들의 상당수는 담배를 피웠다. 지하철역에서도 담배를 피울 수 있었고, 카페나 식당에서도 교수님 앞에서도 담배를 피울 수 있던 때였다.

다들 담배와 라이터를 가지고 있었는데 담배는 정부에서 허가된 것만 파니 모두 비슷비슷했고, 담배와 관련된 소품으로 차별점을 가질 수 있던 품목은 라이터였다.

비교가 버릇인 애들이 그렇듯 당시 '어떤 라이터가 최고인가?'라는 논쟁이 붙었다. 그 시절 토치처럼 강력한 화력의 터보라이터가 나온 지 얼마 안 되어서 관심을 끄는 품목이었다.

약간 일회용 라이터가 아닌 다른 라이터를 사용하고 싶어하는 친구들의 대부분은 지포를 선호했다. 학생이란 맞지 않고 '어르신 필'이 있기는 하지만 아버지가 쓰던 '던힐', '듀퐁' 등을 들고 다니는 친구들이 있었고 이와 비슷하게 만든 '피에르가르뎅'이나 짝퉁 라이터를 들고 다니는 친구도 있었다.

그래도 명품이라 이름 붙일 만한 것은 '던힐', '듀퐁'이었다. 왜 그 가격에 그걸 사는지 납득이 안 됐기에...

'던힐'은 라이터보다 패션이 중심이니 고급 패션 아이템의 하나로 라이터를 선택했다. 그래서 라이터 하면 '던힐'보다 '듀퐁'라이터 쪽에 무게 중심이 더 간다.

영화 007의 로저무어는 '듀퐁'라이터를 사용한다. 지금은 일상이 된 PPL 마케팅 (Product PLacement Marketing, 영화나 드라마에서 특정 기업의 상품이나 브랜드 이미지를 소도구로 끼워 넣는 광고기법)을 오래전 '듀퐁'이 한 것이다.

듀퐁은 상류층을 대상으로 가죽제품을 만들어 팔던 회사였다. 여행용 가방이 이들의 주력 제품이었는데 2차 대전이 발생하면서 여행용 가방을 팔 수없어서 1941년 오일 라이터를 만들고 1952년 당시의 신물질 '가스'를 이용한 라이터라는 라이터로 인기를 끌었다.

'듀퐁' 라이터는 화려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뚜껑을 열고 파르테논 기둥과 같은 모서리의 기둥을 돌리면 불이 들어온다. 뚜껑을 닫을 때 들리는 경쾌한 소리 '챙~'

시대배경이 1960~80년대인 영화 속 등장인물 중 돈이 많은 캐릭터는 '듀퐁'을 사용한다. 영화 '타짜'의 김혜수 씨가 쓰던 라이터, 영화 '도둑들'에서 이정재 씨가 쓰던 라이터도 '듀퐁'이다. 

영화 속에서 고급의 이미지는 '듀퐁'인데, 거친 마초 이미지를 사용할 때는 휘발유 라이터 '지포'를 쓴다. 영화배우 '브루스 윌리스'가 '다이 하드'에서 비행기를 타고 도망 가는 악당들에게 던지는 라이터가 '지포'다. 바람에 꺼지지 않는 라이터.

베트남 전에서 지포라이터 덕에 생명을 건졌다는 전설이 있어 군대 가는 남자친구에게 선물해야 하는 필수품이기도 했다. '지포'는 초기에는 안 팔렸다고 하는데 질척거리는 유럽 겨울 날씨에서 고장 없이 사용할 수 있어서 2차 대전 때 빅히트를 친다. 한국에서는 625 때 참전 용사들을 통해서 들어왔다. 

2023년 지금 우리에게 남은 라이터는?

수십억 개가 판매되었고 지금도 매년 수억 개씩 팔리는 일명 '불티나'라고 불리는 1회용 라이터다. 강해서 생존하는 게 아닌 생존해서 강한 명품이다.

돈 주고 사지 않아도 집에 쌓이는 마법을 가지고 있고 전날 어디에서 술을 마셨는지 기억도 나게 해주는 요물이다. 흡연하는 이들이 공유하면서 소유권도 잘 주장하지 않는, 전에 누가 썼던 것인들 상관없는 위생적인 제품이기도 하다.

듀퐁은 잃어버리면 속 쓰리지만 이 제품은 그렇지도 않다. 아쉬울 것도 없다. 153이란 멋진 상징 하나 있었다면 필자가 글 쓰기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 밖에 없다. 이 제품은 PPL도 필요 없을 정도로 많은 영화에 노출됐다. 이 라이터를 소재로 한 '라이터를 켜라'라는 영화도 있다. 

다시 처음 애들의 말싸움으로 돌아가서 라이터계의 명품은 2023년 지금도 모두 사용하는 '불티나', '스파크'라 불리는 일회용 라이터가 아닐까?

디자인 공부하던 시절 디자이너의 이름을 빛내 줄 멋진 디자인을 만드는 꿈을 꾸었다. 그 시절 당연히 '듀퐁'의 디자인이 최고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모두가 사용하는 불티나 제품을 디자인한 디자이너가 이 시대에 더 가치있는 일을 한 인물이 아니었을까란 생각을 해본다. 

※김길 / '전화기 디자이너'가 되려다 초콜릿바와 같은 거 외엔 할 디자인이 없다는 것을 알고 포기. 현재 인터넷기업, 교육기업 전략실 경험을 살려 사업컨설턴트로 활동 중.
※김길 / '전화기 디자이너'가 되려다 초콜릿바와 같은 거 외엔 할 디자인이 없다는 것을 알고 포기. 현재 인터넷기업, 교육기업 전략실 경험을 살려 사업컨설턴트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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