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표가 동사, 혹은 명사처럼 사용...회사의 기막힌 '네임법'

 [사진=김길 칼럼니스트]
 [사진=김길 칼럼니스트]

2000년 이전까지 세계 속에서 우리나라가 먼저 개발을 한 제품은 거의 없었다. 냉장고, 에어컨, 텔레비젼 하다못해 전기포트까지 모두 외국에서 발명된 제품을 좀 더 잘 만들려고 했을 뿐이다.

물론 ‘김치 냉장고’, ‘녹즙기’ 같은 제품이 20세기 한국에서 개발되긴 했지만 우리만의 특성에서 개발된 제품이었기에 세계인의 주목을 받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그 제품에 한국식 이름을 붙여주지 못했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우리는 늘 새로운 ‘발명품’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라 일본인이 부르던 방식이나 아니면 상표명을 제품명으로 불렀다. 생각해 보면 오히려 상표명이 더 자연스러웠을지 모른다. 이번 글에서는 그 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

한마디 더 덧붙이면 상표가 보통명사, 동사처럼 쓰이는 것들은 대부분 과거에 개념이 없던 제품들이었다. 그 혁신을 무엇이라 부를지 몰라 상표를 부르는게 편했던 ‘혁신’ 제품들이었다는 점이다.

'포스트잇'

그 예로 붙였다 땠다 할 수 있는 메모지를 뭐라 불러야 했을까? 쓰리엠(3M)에서 종이를 붙이는 강한 접착제를 만들다가 실패한 제품이 혁신이 되어 버렸다.

필자의 서랍 속에는 포스트 잇이 늘 한가득 있다. ‘붙임 쪽지’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고 하는데 오히려 그렇게 부르면 어색하다. 3M에서 나오지 않은 ‘붙임 쪽지’들도 포스트잇이라 부르는 것이 의사소통하기 쉽다.

영어권에서는 ‘스티키 노오트 sticky note (sticky : 끈적거리는)’라 부른다고 하는데, 그렇게 쓰는 외국인을 본 적은 한번도 없다.

'크레파스'

연식이 있는 사람들은 배따라기의 ‘아빠와 크레파스’라는 노래를 떠올릴 것이다. 그 자녀들은 미술시간에 쓰는 크레파스를 떠 올릴텐데 정식 명칭은 ‘오일 파스텔’이다. (물론 따지고 들어가면 오일파스텔이라 이름을 붙인 미대생들이 쓰는 파스텔도 있다.)

'크레파스'는 1926년 일본의 사쿠라 상회에서 이 신박한 미술도구를 처음으로 만들 때 붙였던 상표명이다. 크레용과 파스텔의 일본식 합성어. 비슷하게 만든 것이 ‘에어컨’, ‘팩시밀리’등이 있다. 

 흔히 부르는 '스카치 테이프'는 3M의 브랜드명이었다. [사진=픽사베이]
 흔히 부르는 '스카치 테이프'는 3M의 브랜드명이었다. [사진=픽사베이]

'스카치 테이프'

정확한 명칭은 ‘셀로판 테이프(Cellophane tape)’다. 역시 3M의 브랜드 명인데 이 회사에 브랜딩 천재가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3M에서 셀로판을 이용해 테이프를 개발하여, 스카치 테이프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우리는 그냥 ‘셀로판 테이프’라는 말 대신에 ‘스카치 테이프’라는 일반명사로 사용하고 있다. 

'샤프'

연필 대신 사용하는 ‘샤프 펜슬’, 필자가 어릴 때는 초등학생(당시에는 국민학생이라 불렀다)들은 수업시간에 볼펜을 사용할 수 없었다. 볼펜을 쓰면 선생님께 혼났고 연필을 사용해야 했다. 연필은 부러지니 대안으로 사용하는 것이 ‘샤프’였다. (매년 100만 명이상이 태어나던 시절, 그 때 태어나 초등학생이 된 학생들은 모두 샤프를 가지고 있었다.)

샤프는 1913년 미국의 키란에 의하여 "에버 샤프(Ever sharp pencil)"라는 이름으로 상품으로 내놓은 것이 시작이다. 그런데 잘 부서져서 관심을 끌지 못했다고 한다. 그 많은 학생들이 쓰던 샤프는 1915년 샤프(Sharp) 전자 창업자 하야카와 도쿠지가 눌러서 심을 빼는 연필을 개발하고 상표로 샤프 펜슬(Ever readey sharp pencil)을 출시한다.

이게 대박나면서 샤프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 사람은 회사명도 샤프(Sharp)라고 바꾸고, 전자 제품도 만들고 후일 반도체도 만든다. 그러다 반도체 사업에서 적자가 심해져 대만기업에 매각되었다. 원래 이름은 메케니컬 펜슬(mechanical pencil)인데 그렇게 이야기 하면 거의 못알아 들을 것이다. 참고로 영미권 친구들에게 샤프 펜슬이라 말하면 뾰족하게 깎은 연필을 떠올리지 않을까?

'딱풀'

이찬원 씨의 노래 제목으로도 알려진 제품이다. 고체 풀(Glue stick)이라 불러야 할 것인데 이걸 만든 회사 아모스(Amos)가 립밤 같이 이 풀 기둥에 이름을 딱풀이라 붙였다. 딱, 딱 잘 붙으라고 지은 듯 싶은데, 한번 들으면 안 잊혀진다. 이걸 입에 바르는 경우도 있는데 생각처럼 입술에는 잘 붙지 않아 수다를 줄이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봉고'

봉고는 기아자동차가 만든 소형 승합차 이름이다. 아프리카 가봉 대통령 ‘봉고’가 내한 했을 때 자신의 이름을 딴 자동차로 소개를 받았다는 일화도 있다.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 그렇게 믿기로 모두들 합의한 듯 싶기도 하다.) 이유야 어떻든 우리는 막대기 형태의 이 소형 승합차를 그냥 ‘봉고’라고 부르고 바꾸려고도 하지 않는다. 

봉고는 기아자동차가 만든 소형 승합차 이름이지만 비슷한 크기의 승합차는 보통명사처럼 불리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봉고는 기아자동차가 만든 소형 승합차 이름이지만 비슷한 크기의 승합차는 보통명사처럼 불리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에스컬레이터(Escalator)'

원 명칭은 자동 계단(움직이는 계단)이다. 미국 오티스 엘리베이터 컴퍼니가 만든 자동계단의 상표가 에스컬레이터다. 엘리베이터를 오티스라 부르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 분야 마케팅은 성공하지 못한듯 싶다.

그래도 자동계단의 일반 명사로 에스컬레이터라 부르니 대단한 회사인 건 분명하다. 참, 필자가 사는 아파트 엘리베이터는 오티스사 제품이다. 집근처 지하철의 에스컬레이터 브랜드는 잘 모르겠다.

'부르스타'

휴대용 가스 버너, 집에서도, 식당에서도 생삼겹살을 구워먹게 해준 이 신박한 이동식 가스버너 우린 휴대용 가스버너를 부루스타라 부른다. 부루스타라는 명칭은 1980년 일본 후지카에서 출시한 휴대용 가스버너의 상표다. 

'노트북'

지금 필자가 쓰고 있는 컴퓨터의 정확한 명칭은 ‘랩탑’이다. 무릎위에 올려 놓고 쓸 수 있는 컴퓨터가 정식 명칭이다. 'Lap(무릎)+top(위)'. 일본이 잘 나가던 시절, 도시바가 만든 상표가 노트북이었는데 그게 더 잘 어울려서 모두들 노트북이라 부른다.

'바세린'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의 피부관련 만병 통치약 ‘바세린’. 화상 같은 상처에도 바르고, 입술에도 립밤대신 바르고 유튜브를 찾아보면 바세린만 발라 피부 미용을 하고 있는 의사 이야기도 나온다. 유전을 개발하기 전부터 유명했던 바세린은 유니 레버가 만든 상표명이다. 원 명칭은 석유젤리(petroleum jelly)다.

'초코파이'

일본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한 듯 싶어서 우리나라 이야기도 몇개 골라봤다. 초코파이는 오리온이 출시한 마시멜로를 초코렛으로 두른 파이형태의 과자다. 1989년 독일장벽의 붕괴, 1990년대 개혁 개방의 물결이 흘러 넘칠 때, 2000년대 개성 공단에서도 주목을 받았던 제품이 초코파이다. 원래는 오리온에서 상품이 초코파이인데 지금은 그냥 그렇게 생긴 상품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오리온이 처음에 상표 등록을 할 때 ‘오리온 초코파이’로 등록을 했다. 그냥 ‘초코파이’로 등록을 했으면 롯데나 해태에서 초코파이라는 이름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과자회사에서 검게 생긴 초코렛 작은 파이를 모두 초코파이라 붙이면서 오히려 보통명사처럼 쓰이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오리온의 초코파이는 초코로 만든 파이과자의 대명사로 불린다. [사진=오리온]
 오리온의 초코파이는 초코로 만든 파이과자의 대명사로 불린다. [사진=오리온]

'햇반'

지금 쿠팡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햇반’. 정식 명칭은 즉석 밥이다. CJ에서 나온 즉석 밥의 브랜드 명이 햇반(1996)이다. 마트에는 오뚜기, 하림, 동원, 농심 등 여러 회사에서 나온 즉석 밥이 있지만 “햇반 있어요?”라고 묻고, 찾아준 곳에 즉석밥의 포장지가 빨갛던 노랗던 “햇반”을 찾았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즉석 밥에서는 잘 안따지는데, 따지는 제품들이 있다. 잘못 사가면 엄마에게 등짝 맞던 것들이 있었다.

“미원 주세요!” (미풍 가져가면 혼남)

“다시다 주세요!” (맛다시 들고가면 죽음)

“퐁퐁 주세요!” (트리오를 가져가도 되긴 했다)

“맥심커피(스틱) 주세요!” (맥스웰로 가져가면 반드시 다시 가야했다) 

“진로 주세요!” (소주를 진로라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혁신의 브랜드는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통 명사, 일반 명사 또는 동사로 활용하는 선물을 준다.

※김길 / '전화기 디자이너'가 되려다 초콜릿바와 같은 거 외엔 할 디자인이 없다는 것을 알고 포기. 현재 인터넷기업, 교육기업 전략실 경험을 살려 사업컨설턴트로 활동 중.
※김길 / '전화기 디자이너'가 되려다 초콜릿바와 같은 거 외엔 할 디자인이 없다는 것을 알고 포기. 현재 인터넷기업, 교육기업 전략실 경험을 살려 사업컨설턴트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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