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 일흥빌딩에서 건져올린 '153마리' 물고기

모나미스토어 수지점에 있는 모나미 볼펜 조형물 [사진=김길 칼럼니스트]

호치키스, 포크레인, 제록스 등과 같이 상품명이 보통명사가 되는 경우도 많지만 특정 보통명사 즉, 볼펜은 모나미, 색종이는 종이나라, 라면은 신라면 등과 같이 브랜드를 떠올리기도 한다.

볼펜이야기다. 볼펜이 보급화 되기 이전의 시기엔 만년필과 연필을 많이 사용했다. 볼펜의 등장은 노트북에서 스마트폰으로 바뀐 것과 같은 사건이었다. 잉크를 넣지 않아도 찍어 쓰는 잉크가 없어도 되는 펜. 

볼펜의 대명사 '모나미153' 기록에 따르면 이 볼펜은 1963년 5월 1일, 시장에 처음 선보였다.

많이 나갈 때는 연간 12억 개, 누적 판매량 44억 개였다고 한다. 잘나갈 때 전국민이 연간 3자루씩 샀다는 뜻이다.

흰색 셔츠에 검은색 바지, 흰색 저고리에 검정치마를 입은 듯 한 이 펜은 우리 민족을 닮았다고 하고 싶으나 일본 오토 볼펜에서 모티브와 기술을 가져왔다. 이 볼펜의 히트로 짝퉁 ‘몬나니’, ‘모라니’ 등도 나왔다.

지금도 잘 보면 구분이 되지 않는 153볼펜과 비슷한 펜들이 있을 정도로 보편화된 펜이다. 

서울대에 입학한 후배에 따르면 모나미153 펜 한자루로 연습장 2권을 빡빡하게 쓸 수 있다고 한다. 가볍고 부담없는 굵기에 오래써도 손목이 덜 아파 모나미를 사용했다고 한다.

필자도 이 볼펜으로 학창 시절을 보내서 그런지 이 볼펜의 필감이 표준처럼 느껴진다. 이 필감을 기준으로 ‘좋다’, ‘아니다’를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이 볼펜의 불편함은 '똥'이라 불리는 찌꺼기가 나온다는 것이다.

찌꺼기를 노트 접는 부분에 닦거나 휴지나 별도의 종이를 두고 닦아 내며 필기한다. 안 닦으면 손으로 만졌을 때 번져 버리니 이 과정을 병행한다.

'그게 귀찮아 찌꺼기가 좀 덜하고 조금은 고급진 파카 볼펜으로 갔다가 굵기가 굵어서 다시 153으로…'

'필기감이 더 부드러운 Bic의 1mm로 갔다가 날려지는 글씨에 뚜껑의 불편함에 다시 153으로…'

'0.3mm, 0.25mm의 가는 파일로트로 갔다가 팔목이 아파 다시 153으로…'

'지워지는 펜으로 갔다가 색감에 다시 153으로…'

'153의 똥 때문에 만년필로 갔다가 불편해서 다시 153으로…'

무한반복 중인 필자의 이야기다. 

모나미153은 출시 당시 판매가가 15원이었다. 지금은 약 700원. 볼펜계의 명품 몽블랑 1자루 가격으로 500개 정도를 살 수 있다.

매일 한자루씩 써도 1년 반 정도를 사용할 수 있는 저렴한 가격이다. 이 펜의 히트로 ‘광신화학공업’은 ‘모나미’로 사명도 변경했다. 누구나 한번은 써봤고, 다쓰기 전 잃어버리는 속도가 더 빠른 이 볼펜에 쓰여있는 153에 대한 이야기는 많다. 

스승 예수가 죽고 고향으로 돌아와 본업으로 돌아간 수제자 베드로는 그날 조업에서 물고기를 잡지 못했다. 그런데 예수가 나타나 물고기가 잡힐 것 같지 않았던 바다에 그물을 던지라고 조언한다. 그래서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물고기를 잡았는데 153마리였다고 한다.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요 21:6)"

예수가 온 줄도 몰랐던 베드로가 물고기를 잡은 후에 왜 물고기를 셌는지, 아니 요한이 왜 셌는지는 모르겠다. 

이 이야기부터 15원에 3번째 개발 품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2000년 11월 5일에 방송된 ‘성공시대’라는 프로그램에서는 개발품번이 152였는데 '갑오'로 하기 위해서 153으로 바꾸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방송에서는 152를 보고 8끗이니 ‘갑오’로 하자며 153으로 결정한다. 그 볼펜이 출시된 후에 목사님이 송회장에게 전화해서 은혜의 숫자라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15년전 필자와 동료들이 퇴직금을 모아 대기업에서 운영 중이던 영어회화 서비스를 인수했다. 사무실을 충무로역 8번출구 앞 일흥빌딩으로 옮겼을 때, 일흥빌딩을 관리하는 분들이 그 빌딩에서 모나미가 나왔다며 잘 될거라고 덕담을 해주셨다. 

몽블랑 같은 명품 딱지가 붙은 사치품이 아니라 사람들이 늘 가까이 두는 모나미153 볼펜처럼 단순하지만 모두가 쓰는 필수품 같은 서비스를 만들고 싶었는데 필자의 그 꿈은 아직 진행 중이다. 

누구나 막 쓸 수 있고 우리 생활의 작은 그 부분을 바꿔 놓는 그 ‘무엇’이 명품이다.


◆ 사족

153마리의 물고기로 제자들과 아침을 차려준 예수는 제자들이 앞으로 가야할 길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다.

생각해 볼 수록 볼펜의 이름이 기가 막히게 와 닿는 부분이다. 과거 많은 꿈을 꾸던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153 볼펜을 이용했을 거다.

필자의 후배처럼 명문대를 목표로 했던 학생부터 고시를 준비했던 사람, 직장의 한 켠에서, 관공서에서 70년대 80년대의 성장의 역사를 그린 사람들이 153볼펜을 썼을 것이다.

예수는 건져 올린 153마리의 물고기와 떡으로 제자들에게 아침을 주고, 그들의 미래 이야기 해주었다. 153 볼펜을 건져 올린 그 사람들은 이 미래를 예상했을까? 

※김길 / '전화기 디자이너'가 되려다 초콜릿바와 같은 거 외엔 할 디자인이 없다는 것을 알고 포기. 현재 인터넷기업, 교육기업 전략실 경험을 살려 사업컨설턴트로 활동 중.
※김길 / '전화기 디자이너'가 되려다 초콜릿바와 같은 거 외엔 할 디자인이 없다는 것을 알고 포기. 현재 인터넷기업, 교육기업 전략실 경험을 살려 사업컨설턴트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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