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 개정 논의에 부쳐

지난 8월 PC 계열사인 샤니 공장에서 또 한명의 노동자가 안타까운 사고를 당해 생명을 잃었다. [사진= 민주노총]
지난 8월 PC 계열사인 샤니 공장에서 또 한명의 노동자가 안타까운 사고를 당해 생명을 잃었다. [사진= 민주노총]

어제, 누군가의 부모이던 한 이가 자식들의 곁을 떠났다. 오늘, 누군가의 형제이던 한 사람이 형제들의 옆자리를 비우려 한다. 그리고 내일, 누군가의 자식이던 한 젊음이 부모들의 절규를 뒤로 한 채 이 세상을 떠날 것이다.

그렇게 매일매일 누군가가 원치 않는 이별을 고하고 있다. 산업 현장에서 묵묵히 일을 하던 대한민국 노동자의 허망한 죽음은 그렇게 언론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진다. 

그 죽음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건 인지상정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그로 인한 슬픔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 다른 사람이 아닌 내 자신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산재사고 사망률을 기록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사는 한, 그 누구도 그 공포감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과 제도가 줄을 잇는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지난 2022년 1월 27일부터 시행 중인 중대재해처벌법이다.

상시 근로자 50인 이상(건설업은 공사금액 50억 원 이상) 사업장에서 근로자 사망 등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사고를 막기 위한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경영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불의의 사고를 방지하겠다는 의도 하에 탄생한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 1년 반 만에 흔들리고 있다. 흔드는 자와 흔들리지 않으려는 자들의 싸움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누군가의 부모와 형제와 자식들이 신음하고 있단 것을 알기는 할까.


◆ 경영계 파상공세에 규제 완화 기류 솔솔 피어나


중대재해처벌법 등장 이전 산업재해 예방의 중책을 맡고 있던 것은 산업안전보건법이었다. 안전·보건조치 위반으로 사망사고가 발생하는 경우 주로 사고가 발생한 현장의 안전보건관리책임자 등에게 책임을 물었던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실 유명무실한 법에 가까웠다.

자식이 죽고 형제가 죽고 부모가 죽어도 그에 관한 책임을 제대로 물으려 하지 않던 산업안전보건법은 결국 24살 꽃다운 청년 김용균씨가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유명을 달리하자 부랴부랴 개정안을 내놓기에 이르렀지만 그 조차도 제2, 제3의 김용균을 만들어내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중대재해처벌법이다. 이 법이 제정되기까지 경영계의 극렬한 저항이 있었지만 꽃다운 청년의 죽음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던 국민 여론의 힘에 기대 제정, 시행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렇게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실 기대치에 부응치 못하고 있다. 

지난 1월 19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2년 산업재해현황 부가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중대재해 사고사망자 수는 644명으로, 전년(683명)대비 39명(5.7%)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고발생 건수로는 2021년 665건에서 2022년 611건으로, 54건(8.1%)이 줄었다. 관점에 따라 유의미한 변화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그러기엔 너무 많은 생명이 시들어가고 있다는 게 문제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년을 맞은 지난달 26일 오전 민주노총 광주본부가 광주 북구 광주지방고용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의 중대재해처벌법 이행 의지를 비판하고 있다. [사진=민주노총 광주본부 제공]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년을 맞은 지난달 26일 오전 민주노총 광주본부가 광주 북구 광주지방고용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의 중대재해처벌법 이행 의지를 비판하고 있다. [사진=민주노총 광주본부 제공]

이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기대한 것엔 턱없이 모자라는 숫자다. 몰랐던 것도 아니다. 우여곡절 끝에 빛을 보긴 했지만 처음부터 우려를 자아내는 대목이 적지 않았던 탓이다. 물론 모든 것을 법의 탓으로 돌릴 순 없다. 법은 그저 방향을 제시하는 수준에서 그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기업의 안전 의식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한 당분간은 안타까운 사고 소식을 접하지 않을 도리는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현재 중대재해처벌법이 가진 흠결을 그대로 놓아둘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불의의 사고가 발생해도 실제로 처벌받지 않는다는 인식이 그것이다. 법 시행 이후 300건이 넘는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 사건 중 검찰 기소는 단 21건에 불과했다는 점이 그를 증명한다.

기소된 사건 중에서 그나마 실형이 선고된 것도 단 3건에 불과하다. 물론 모든 사고에 대해 강력한 처벌을 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처벌받지 않는다는 인식이 강화되는 것은 당 법이 가진 권위를 상실시키는 데 크게 일조할 것만은 분명하다.

법의 권위를 약화시키는 건 그뿐만이 아니다. 처음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을 때 노동계에서 터져 나온 불만은 이대로라면 실질적 책임자인 재벌 총수를 처벌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오죽하면 보이지 않는 재벌총수 면책 조항이 있다고 그랬을까. 이는 법 시행 이후의 행적에서도 잘 드러난다. 대표적인 산업재해 업종으로 분류되는 건설업을 보면 중대재해처벌법이 가진 맹점을 재확인할 수 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2년 중대재해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0대 건설사에서 발생한 사고 사망자는 총 25명이다. 전년(20명) 대비 5명 증가한 수치다. 10대 건설사 중 포스코이앤씨를 제외한 9개 건설사에서 모두 사망자가 발생했다. 그러나 이로 인한 재벌 총수의 중대재해처벌법 사례는 짐작하다시피 0건이다. 

이는 총 11건이 검찰 기소된 중소·중견 건설기업의 사례와는 극도로 대비되는 지점이다. 법이 정말 제대로 기능하고 있다면 이 숫자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당장 법을 뜯어고칠 수 없다면 현행 법의 온전하고 엄격한 적용이라도 뒤따라야 하지만 그조차도 하지 않고 있다는 반증인 셈이다.

사정이 이런대도 최근의 기류는 법의 규제 완화를 암시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지난 7월 4일, 윤석열 대통령이 기업 투자 촉진을 이끈다는 이유로 킬러 규제 철폐를 이야기하면서부터 감지된 변화다. 사실 윤 대통령이 직접적으로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을 적시한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 나온 직후, 이와 관련된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는 것. 대통령 발언 직후 발족된 '킬러규제 개선 태스크포스(TF)' 킥오프 회의에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업무 총괄자인 고용노동부 김태연 중대산업재해감독과 과장이 참석해 관련 논의를 시도한 것만으로도 합리적인 의심을 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물론 분명한 건 아무 것도 없다. 경영계가 주장하는 규제 완화가 된다는 법도, 노동계가 부르짖는 처벌 수위 강화도 결정된 바는 없으니 그에 대해 벌써부터 가타부타 논할 생각도 없다. 중요한 건 이 와중에도 추락하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이다. 

누군가가 그랬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고. 우리가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 바란 건 바로 그거였다. 애초에 추락할 일 자체가 없어야겠지만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그 때 그 사람들의 등 뒤에 날개가 솟기를, 그래서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기를 원하고 바란다. 더는 가족사진 속에서만 웃고 있는 누군가를 바라보며 눈물 흘리는 이들이 없기를 갈망하고 염원한다. 

손영남 칼럼니스트
손영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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