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프리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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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대한민국의 위상이 높아지는 요즘,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이 부쩍 늘고 있다. K팝과 K드라마로 대표되는 K컬쳐의 매력에 푹 빠진 이들이 진정한 한국의 매력을 느끼기 위해 발걸음을 늘린 탓이다.

그 과정에서 유튜브나 여타 인터넷 커뮤니티에 한국을 소개하는 컨텐츠들이 늘고 있다. 이를 통해 한국의 장점들이 소개되고 그를 본 외국인들이 또 다시 우리나라를 찾는 선순환이 이어지고 있는 현 상황은 우리로서는 어깨가 으쓱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요즘 흔히 이야기되어지는 ‘국뽕’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근데 곰곰이 들여다보면 의아한 구석도 적지 않다. 한국의 장점으로 묘사되는 컨텐츠의 내용들 대다수가 우리 입장에서는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외국인들의 눈엔 여간 신기한 게 아닌 모양이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물을 공짜로 주는 일이다. 

해외여행이 일상화된 지금은 누구나가 알겠지만 외국의 경우 식당에서 물을 마실 때라도 별도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그런 환경에서 자라온 사람들이니 우리가 물을 공짜로, 그것도 무제한으로 제공한다는 사실에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어디 식당뿐이랴. 어디서든 물 한 잔 청하는 일에 야박한 경우는 거의 없는 게 대한민국 아닌가. 


◆ 인터넷 갑론을박된 '청소 노동자의 한숨'..."정수기 쓰면 싫어해요"


그런데 그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들이 있다. 며칠 전 인터넷 서핑을 하다 우연히 접한 기사 하나를 보자.

"저.. 여기서 물 한 잔 마셔도 될까요?"로 시작되는 그 기사는 어느 직장 여성이 겪은 일을 자신의 SNS에 올린 게 화제가 되면서 기사로 만들어지기에 이른 것이었다. 그걸 보는데 속이 부글부글 끓지 뭔가. 비단 필자만 그런 건 아니었다. 그 기사를 본 대다수의 사람들이 필자와 크게 다르지 않은 기분을 느꼈을 테니 말이다. 대략적인 내용은 이랬다.

한 건물에서 일하는 미화원이 한껏 주눅 든 얼굴로 회사 탕비실에 와서 물을 청했고 글을 올린 여직원은 대수롭지 않게 물을 건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고. 그 과정에서 들은 이야기가 너무 황당해서 결국 그 내용을 공유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었다.

내용인즉 적지 않은 사람들이 미화원이 회사 정수기를 이용하는 것을 꺼린다는 것이었다. 미화원의 표현대로라면 "이렇게 화장실 청소하는 사람이 같이 정수기 쓰면 싫어하는 사람 많아요 아가씨. 컵 못 쓰게 하기도 하고..."였다.

도대체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싶어 다시금 기사를 정독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나 주목을 받기 위해 만든 가짜 뉴스가 아닌가 해서였다. 그만큼 믿기 힘든 일이었다는 뜻이다. 안타깝게도 그 일은 진짜였다. 그래서 더 화가 난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 분들이 있어서 우리가 편하게 사무실을 이용하고 번거로움을 덜 수 있으니 백번 감사를 표해도 부족할 지경인데 적지 않은 이들이 그 분들에게 모욕을 안기고 있다는 게 너무 화가 났달까. 이런 걸 '갑질'이라고 해야 하는 것이다. 

 [사진=프리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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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그 미화원 분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갑질이라고 말하면 불같이 성을 낼 게 분명하다. 그게 어떻게 갑질이냐면서 오히려 화를 낼 확률이 99.9999%일 거다.

그 정도 상식을 지닌 이들이니 그랬을 게 분명하니 말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그건 갑질이다. 그것도 가장 저속한 형태의 갑질이다. 혹시라도 그런 일을 한 당사자가 이 글을 읽는다면 부끄러운 줄 알았으면 하는 맘 간절하다.

어느 사회, 어느 나라에도 갑질은 존재한다. 결국 갑질이란 건 을과 병과 정보다 계급이 높다고 생각하는(사실은 그게 아니지만) 갑들의 비상식적인 행태이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라고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리는 없다. 그럼에도 유독 우리나라에서 이에 관한 문제가 더 불거지는 이유는 뭘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아마도 사농공상으로 대표되는 계급문화가 존재했던 시절이 500년 가까이 이어져온 탓이 아닐까 싶다. 오랜 시간 계급이라는 것이 존재했으니 그 벽을 넘어서는 것을 용인할 수 없다는 생각이 아직까지도 유전자 어딘가에 남아 해서는 안 될 짓을 당연한 듯이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또 한편으로는 그만큼 개개인의 의식이 발전한 때문일 수도 있다. 이전에는 당연하다고 받아들였던 일들을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의식이 생기면서 이에 관한 문제 제기가 이어지는 것이란 해석도 가능하다.


개인 갑질보다 백배는 더 심각한 조직의 갑질,,,'삼성도 당했다'


그게 무엇이든 중요한 건 더 이상의 갑질은 지양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하루가 다르게 언론매체를 장식하는 갑질은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암덩어리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 역시 이를 잘 인식하고 있다. 그를 보여주는 게 바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다.

지난 2019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일명 '갑질 근절법'이 도입되었다. 이를 통해 뿌리깊이 박혀있던 갑질 문화를 개선한다는 기대감이 컸지만 안타깝게도 법 제정 이후에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지금도 수많은 갑질이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도드라지고 있음이 그를 잘 보여준다. 최근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학부모 갑질이나 그 밖의 갑질 관련 뉴스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있는 중이다.

법이 생겨도 달라질 것 없는 현실을 보면 결국 법 이전에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어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갑질은 언제까지고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던 미화원의 사례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그러나 이게 전부는 아니다. 개인 간에서 발현되는 갑질보다 더 심각한 것이 존재하는 탓이다. 바로 조직이 주체가 되는 갑질이다. 개인이 행하는 갑질보다 훨씬 더 심각한 영향을 끼치는 조직 주체 갑질은 피해가 더 심할 수밖에 없는 때문이다.

지난 9월 21일, 사람들의 눈길을 잡아끈 흥미로운 기사 하나가 떴다. 갑질의 주체라고 할 대기업, 그것도 우리나라 최고의 기업인 삼성전자가 갑질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 반도체 기업인 브로드컴이 삼성전자에 불리한 장기계약 체결을 강요한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191억 원의 과징금 제재를 받았다는 것이었다. 세상 무서울 것 없어 보이는 삼성전자조차도 자유로울 수 없는 갑질, 그나마 삼성전자는 거기에 대응할 힘을 갖추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라면 문제는 한층 더 심각해진다.

비근한 예로 들 수 있는 것이 바로 최근 우리나라 노조들의 상황이다. 절대 강자라 할 정부가 전방위적으로 노조를 압박하고 있는 현 상황을 두고 ‘갑질 오브 더 갑질’이라고 표현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제 아무리 노동자들이 파업과 시위로 저항한다 해도 결국은 절대적인 권력을 지닌 정부에 끝까지 대항할 수는 없다. 네이버 시사상식사전에 따르면 갑질은 사회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는 자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상대방이 자신의 방침에 강제로 따르게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나와있다. 지금 정부의 모습이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고려한다면 결국 정부의 현 상황을 갑질로 묘사하는 것이 그리 억지스러운 것은 아닐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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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대에도 노조와 정권의 갈등은 발생해왔다. 입장이 다르니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적인 대립만 행해오지 않았음은 이미 역사가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지난 시절 양자 간의 갈등과 대립을 해소하기 위해 양측은 대화를 하고 조율을 통해 해결책을 찾아왔다. 그 과정을 통해 노조가 대변하는 노동자의 권익이 크게 상승한 것은 누구도 부인 못할 사실이다. 정말로 정부가 행하는 것이 갑질이 아니려면 이렇듯 대화와 조정을 통한 과정을 거쳐야 옳다. 그런 이후에 비로소 문제 해결을 위한 모색을 탐구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고.

많은 사람들의 우려가 단순한 기우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또 현 정부가 누구보다 간절하게 갑질을 종식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정부는 지금이라도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미화원에게 갑질을 하고서도 자신은 정당하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뻔뻔한 사람들처럼 행동하는 정부는 아닐 거라고 믿는다. 

손영남 칼럼니스트
손영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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