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본질은 약자 보호에 있음을 떠올려야

  [사진=프리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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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뜻 대답을 못하는 그 이는 내 오랜 지인이다. 이혼 후 아들 하나를 키우며 부지런히 삶을 꾸려가는 그녀는 모든 일에 똑 부러지는 모습을 선보이던 당찬 사람이었지만 유독 그 질문에서만큼은 갈피를 못 잡고 허둥지둥거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최저임금 이야기다.

뷰티 산업 쪽에서 일하는, 정확히 말하면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일하는 그녀는 일이 있을 때만 수입이 발생하는 자신의 직업상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몇 해 전부터 서울 모처에서 커피 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다.

생계에 보탬을 주기 위해 시작한 사업이지만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가 아니다 보니 수입이 그리 좋지는 않다는 게 그녀의 고백. 그래도 고정 수입이 생길 거라며 좋아하던 그녀가 어느 순간부터 볼멘 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말만 사장이지 버는 건 우리집 알바가 나보다 더 나아. 가끔은 내가 사장인지 걔가 사장인지 모르겠다니까.”

그 주범이 바로 최저임금이다. 최저임금이 너무 높다 보니 일어난 일이란 것. 본업이 있으니 가게에 붙어있기 힘든 자신을 대신해 대부분의 시간을 책임지고 있는 알바에게 주는 임금을 좀 줄이고 싶지만 법이란 게 있으니 그럴 수도 없다는 게 그녀의 설명이었다.

덕분에 우리의 만남에서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것이 최저임금을 위시한 노동정책이 되었음은 불문가지. 이는 비단 그녀만의 문제가 아니다. 자영업을 하는 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문제니 말이다.

그랬던 그녀가 얼마 전부터 달라진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최근 대학에 들어간 아들이 엄마의 고충을 덜어주겠다며 알바 전선에 나선 때문이었다.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편의점으로 달려가 늦은 저녁까지 알바를 한다는 그녀의 아들은 일이 끝나고 오면 파김치가 되기 일쑤였다고. 일의 강도도 그렇지만 더 힘든 건 온갖 진상 손님들에게 시달리고 온 때문이라는 게 아이의 말이었다.

그 고생을 하고서 받는 수입은 얼마 되지 않는 걸 아니 엄마된 입장에서는 당장 때려치우라는 말이 나오지만 속 깊은 아들은 그럴 생각이 없다고 고집을 부리는 형편이란다.

그럴 때마다 능력 없는 엄마 때문에 고생하는 아들이 안쓰럽다는 그녀다. 그녀가 절대불가를 외치던 최저임금 만원의 벽이 자신의 아들에게 적용되는 걸 보며 요즘은 자기 가게 알바들한테 주는 임금 얘기가 쏙 들어간 상태다.

조금 극단적이지 않나 생각하겠지만 사실 이 사례가 그리 드문 일에 해당하는 건 아니다. 우리나라만큼 자영업자들이 많은 나라가 어디 흔한가. 당장 필자의 주변만 봐도 부업으로 커피숍이나 샐러드 바를 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데 그네들 역시 알바를 하고 있는 자식들 둔 경우가 비일비재한 탓이다.

 [사진=프리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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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들 역시 앞서 언급한 그녀처럼 딜레마에 빠지는 경우를 왕왕 보게 된다. 덕분에 최저임금 만원을 둘러싼 공방은 단순히 정치권과 노동계. 재계를 넘어 우리네 소시민의 술자리에서도 안주거리로 등장하고 있는 이유다. 


◆ 만원의 행복, 언제쯤이면 가능해지나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새삼 격세지감이란 말을 떠올리게 된다. 필자가 사회 초년병이던 시절만 해도 최저임금이란 개념이 거의 없었다. 물론 그 당시에도 최저임금제가 없었던 건 아니다. 다만 일반화된 개념이 아니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적용 사례가 없었던 것뿐이긴 하지만 말이다.

곰곰이 따져보면 우리나라에 최저임금제가 안착된 건 그리 오랜 일이 아니다. 단순히 법적 정의만 놓고 보면 그 시작은 1953년으로 거슬러가게 된다. 당시 제정된 근로기준법 제34조와 제35조에 최저임금제의 실시 근거를 둔 것이 그것.

그러나 다들 알다시피 당시 우리 경제가 최저임금제를 운운할 사정이 아니었던 탓에 이 규정은 사문화된 상태였다. 그러다 조금씩 경제가 활성화되면서 최저임금제에 대한 분위기가 조성됐고 결국 지나친 저임금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의 생존권 보장 여론에 힘입어 1986년 12월 31일에 ‘최저임금법’을 제정·공포하고 1988년 1월 1일부터 실시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조차도 엄밀한 의미에서 최저임금제의 시작은 아니라는 것이 중론이다. 최저임금법이 시행된 첫 해인 1988년의 적용대상은 10인 이상 제조업에 한정되는 반쪽짜리였기 때문.

본격적인 최저임금제의 출발점은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까지 최저임금의 적용대상이 확대된 2000년 11월 24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최저임금제는 고작 이십여년 남짓 된 신생제도인 셈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현재는 모든 근로자들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로 인식되고 있음이 여간 다행스럽지 않다. 

물론 이 다행스러움 저편엔 그로 인한 고충을 토로하는 이들 역시 존재한다. 바로 최저임금을 힘겹게 지불해야하는 사업주, 영세 자영업자들이 그들이다. 익히 아는 것처럼 최저임금은 매해 급격한 인상률을 기록하고 있는 추세다. 

지난 7월 19일, 최저임금 심의·의결 기구인 최저임금위원회는 정부세종청사에서 제15차 전원회의를 열고 노사의 최종안인 1만원과 9860원을 투표에 부쳐 2024년도 최저임금을 의결했다고 밝힌 바 있다. 결과는 두 번째 안인 9860원이었다. 인상률로 보면 2.5% 증가한 것인데 이는 역대 두 번째로 낮은 인상률로 기록될 만큼 최근 최저임금 인상률은 가팔랐던 게 사실이다. 

인상률 자체는 낮았다 해도 최근 몇 년 동안 최저임금의 급격한 상승으로 속앓이를 하던 영세 자영업자들에겐 만족스럽지 않은 수치였다. 버는 것 못지않게 돈 나갈 구석이 많은 영세 자영업자들에게 가장 큰 지출은 두말 할 필요 없이 인건비고 그의 증가를 이끄는 주범이 바로 최저임금이기 때문이다. 매해 최저임금 논의가 시작되면 영세 자영업자들이 한 목소리로 최저 임금 동결을 외치는 배경이 바로 여기에 있다.

앞서 언급한 필자의 지인처럼 사업주인 자신들보다 일개 직원이 가져가는 돈이 더 많은 일이 비일비재한 상황을 고려해보면 그들의 불만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최저임금의 상승을 막을 수는 없다. 이유는 자명하다. 최저임금의 대상이 되는 이들이 우리 사회의 최약자로 분류되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제도는 근로자에 대하여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하여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향상을 꾀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

최저임금법 제 1조가 적시하듯 최저임금제란 국가가 노사 간의 임금결정과정에 개입하여 임금의 최저수준을 정하고, 사용자에게 이 수준 이상의 임금을 지급하도록 법으로 강제함으로써 저임금 근로자를 보호하는 제도이다.

[사진=한국노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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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놓고 말해서 최저임금제와 관련이 있는 근로자는 고용사슬의 최하단에 위치한 이들이다. 소위 괜찮다는 직장에 다니는 이들에게 최저임금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겠는가. 

더 적나라하게 말해보자. 만약 최저임금이 법으로 적시되지 않는다면 과연 그 많은 사업주들이 제대로 된 임금을 지불할까. 모두를 싸잡아 매도할 수는 없지만 상당수 사업주들이 저임금으로 노동력을 활용할 것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근로자에게 돌아갈 임금을 줄이는 만큼 자신의 이익이 증가하는 구조니 그의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 않을까.

우리가 고민해야 할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다. 최저임금을 둘러싼 쟁점, 즉 액수의 크기나 인상률의 폭이 예민한 부분이긴 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건 그런 것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최저임금의 취지는 고용효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생활안정, 그러니까 저소득 노동자의 기본권 보장에 있는 것임을 다시 한 번 되새길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 그게 바로 최저임금이다. 매번 최저임금 결정 시기에 벌어지는 각 단체들의 무수한 공방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숫자로 표시되는 그 이면에 인간이 존재하고 있음을 망각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어서다. 세상 그 어떤 제도도 인간 위에 설 수 없다.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하물며 그것이 누군가의 한 끼를 보장해 줄 문제라면 더더욱 그렇다. 

손영남 칼럼니스트
손영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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