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인력 '경단녀' 활용에 대한 진지한 고민 뒤따라야

 결혼과 출산, 육아로 인해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할 수밖에 없던 존재들. 언제부터인가 경단녀 문제가 조금씩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일러스트=공유마당_유앤피플]
결혼과 출산, 육아로 인해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할 수밖에 없던 존재들. 언제부터인가 경단녀 문제가 조금씩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일러스트=공유마당_유앤피플]

평범한 어느 식당, 벽면에 ‘추가반찬은 셀프’라는 문구가 대문짝만하게 걸려있었지만 미처 그를 보지 못한 한 남성이 반찬 추가를 위해 종업원을 부른다.

“아줌마, 여기 반찬 좀 더 줘(요).”

결과는 어떻게 될까? 십중팔구는 퇴짜를 맞았을 확률이 크다. 반찬 추가는 스스로 해야 한다는 규정 때문일 수도 있지만 보다 더 큰 이유는 그의 무신경한 화법이 종업원이던 여성의 심기를 해쳤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단어가 바로 ‘아줌마’다. 나이든 중년 여성을 호칭하는 단어인 아줌마는 국립국어연구원의 친절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가급적이면 사용하지 않아야 하는 암묵적인 금기어이기 때문이다. 

익히 알다시피 아줌마는 극성맞음, 억척스러움, 교양 없음 따위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어디선가 날아든 종이가방에 하나 남은 출근길 지하철 좌석을 선점당한 경험이 있거나 30% 할인 가격표가 붙은 영업 종료 즈음의 대형마트 초밥 세트를 간발의 차이로 스틸당한 전적을 보유한 이라면 그 의미를 너무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좌석과 초밥세트를 앗아간 그 모든 장본인은 높은 확률로 아줌마였을 테니 말이다. 

너무 극단적인 사례라고 말하겠지만 실제로 아줌마들의 놀라운 투쟁본능은 주변 사람들을 주눅 들게 하는 압도적인 힘을 보여준다. 왜 그런 걸까? 젊은 시절 누구보다 교양 넘치고 정갈하던 그녀들은 왜 아줌마라는 타이틀을 달면서부터 이전의 모습과는 180도 달라진 억척스런 존재가 되는 것일까. 


출산, 육아로 어쩔 수 없는 '경력단절'... 아줌마의 절실함, 이유있어


답은 지극히 간단하다. 그래야 살아남기 때문이다. 자신의 억척스러움이 자식들을 입히고 먹이는 원동력이 된다는 걸 깨달은 그녀들은 타인의 시선 따위에 휘둘리지 않는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바로 이 사회가, 이 나라가 그녀들을 진짜 아줌마로 숙성시키고 강화시켰음을 왜 모른 척 하는 건지.

딱히 페미니스트라거나 남녀평등 사상의 신봉자는 아니지만 경험칙상 여성 인력들의 우수함은 부인할 수 없다. 직장 생활을 할 때 함께 일해 본 후배기자들의 능력지수를 평균치로 나눠보면 남자기자들보다 여자기자들이 훨씬 높은 스코어를 기록했다는 개인적인 경험은 차치하자.

대학 시절, 4년 내내 과수석의 자리를 여자애들이 가져갔다는 것도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분명한 건 필자가 경험한 그 모든 집단에서 항상 가장 단단하게 일했던 존재는 여자였다는 점이다. 심각한 일반화의 오류 운운은 삼가주시길. 필자가 겪어본 바는 그랬다는 밀이니까.

그 여자 중에는 당연히 아줌마도 포함되어 있었다. 다만 그 수치는 지극히 미미했다. 처음부터 근무했다면 몰라도 중간에 아줌마를 받아주는 회사는 그리 흔하지 않았으니까. 더군다나 정규직인 경우는 더 적었던 관계로 유의미한 의미를 산출해내는 것은 쉽지 않지만 아줌마들이라고 해서 일을 못했던 건 절대 아니었다.

그 아줌마들도 젊은 시절엔 남자 동료를 멀찌감치 앞서가던 우수한 재원이었으니 말이다. 다만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고 육아를 하기 위해 일을 그만 두었던 것뿐이었다. 그 공백기 동안 실전 감각이 떨어지긴 하지만 본연의 원래 능력치가 훼손당하지는 않았으니 복귀 후, 빠른 속도로 감각을 회복한 것만은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아줌마들이 바로 소위 말하는 경단녀들이다. 결혼과 출산, 육아로 인해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할 수밖에 없던 존재들. 언제부터인가 경단녀 문제가 조금씩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그 배경에 깔린 것이 바로 인재 수급의 불균형 문제다.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자들을 쉬이 공급받지 못하는 사회와 기업들이 경단녀라는 고급인력들에 대해 비로소 시선을 돌린 탓이다.

그러나 아직 제대로 된 성과는 올리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다양한 루트를 통해 경단녀 문제가 언급되거나 논의되는 것은 확인되지만 이렇다 할 대책 또한 나오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대책이 떡하니 나오고 있지 않다는 의미는 어쩌면 우리 사회가 아직 경단녀 문제를 시급한 화두라고 인식하지 않는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 때문에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정말 그래도 될 일일까.

필자가 한참 직장에 매여 있던 시절엔 여자의 결혼은 곧 조만간에 일어날 퇴직을 의미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당시만 해도 사회적인 보육 시스템이나 육아에 대한 인식이 구석기 시대를 갓 벗어난 때였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와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경단녀의 수는 줄지 않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지난 6월, 여성가족부가 3년마다 발표하는 '경력단절 여성 등의 경제활동 실태조사' 결과를 보자. 이에 따르면, 만 25세~54세 여성 중 42.6%가 결혼과 임신·출산, 양육을 이유로 경력단절을 경험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코로나 19라는 돌발변수가 작용하긴 했지만 전체적인 흐름은 지속적인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경력단절 여성의 비중이 2019년 35%에서 2022년 42.6%로 7.6%p 늘어난 것으로 집계된 것이 그 증거다.


경력단절 후 8.9년 지냐야 재취업...임금도 전보다 20% 적어


이유는 예전과 동일했다. 이 시기에 일을 그만둔 여성의 65.6%가 30대로 조사됐으며, 절반 이상(53.9%)이 일을 그만둔 직접적인 요인으로 '긴급한 자녀 돌봄 상황'을 꼽았다는 것이 그를 잘 보여준다.

또한 자녀가 있는 기혼여성인 경우 58.4%가 경력단절을 경험하는 것으로 조사돼, 무자녀 기혼여성 25.6%에 비해 두 배 넘는 수치를 나타낼 정도로 출산과 육아가 여성들의 경력 단절에 절대적 변수로 작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시작된 경력단절은 평균 8.9년이 지나서야 재취업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더 심각한 것은 재취업을 하더라도 예전에 받던 임금의 80% 수준에 머무르며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이나 임시직과 같은 일들을 주로 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경력 단절 이전에 전문직으로 활동하던 여성들이 식당이나 카페 등에서 일하는 그런 수준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의미다.

사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경단녀 조사의 대부분이 이와 유사한 결론을 도출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능력 있는 재원들의 능력을 사장시키는 이런 행위가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될 리가 없다. 

 만 25세~54세 여성 중 42.6%가 결혼과 임신·출산, 양육을 이유로 경력단절을 경험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사진=프리픽]

여기서 경단녀 문제의 심각성이나 대응 방안을 미주알고주알 풀 생각은 없다. 그러기엔 지면이 너무 부족한 탓이다. 다만 경단녀 문제를 단지 여성의 재취업 정도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꼬리에 꼬리를 물다보면 이는 국가의 종말과도 맞닿을 정도로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너무 오버한다 싶겠지만 결코 과장이 아니다.

세계의 유수한 미래학자들이 최근의 한국에 대해 가장 우려를 나타내는 부분이 바로 저출산 문제다. 2023년 현재 한국의 여성 한 명당 출산율은 0.8명으로 OECD 회원국 평균인 1.6명과는 압도적인 차이를 보이고 있다.

두 번째로 출산율이 낮은 스페인의 1.2명과도 현격한 차이를 보일 만큼 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는 심각한 부분이다. 학자에 따라 다르지만 이대로 간다면 국가 소멸이 멀지 않다는 의견마저 있을 정도다.

여성의 출산이 이루어지지 않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그 이후의 대응방안이 마땅치 않다는 의미다. 말도 안 되는 사교육비 부담이나 어린 영유아 보육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출산을 반길 여성이 없다는 뜻. 경단녀 문제 역시 이와 맥락이 맞닿아 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대한민국의 100년 후를 의심하게 만드는 저출산, 초고령화, 생산 인구 감소와 궤를 같이 하는 것이 경단녀 문제라는 것 역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현재처럼 강 건너 불구경 식의 대응이 이어진다면 우리 후손들이 직면하게 될 미래는 암울 그 자체일 수밖에 없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관련 문제들을 범국가적 과제로 선정하고 이에 대한 대응책 마련에 조속히 나서야 할 것이다. 잠깐의 경력 단절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사회가 아니라면 아줌마들이 이렇듯 억척스러울 이유는 없을 테니 말이다. 

손영남 칼럼니스트
손영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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