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조직 전락한 건설노조, 그럼 두목은 건설사 회장?

 영화  [사진=쇼박스]
 영화 [사진=쇼박스]

“느그 서장 남천동 살제? 어! 내가 임마, 느그 서장이랑 임마! 어저께도 어! 같이 밥 묵고 어! 사우나도 같이 가고 어~”

이 대사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2012년 개봉해 큰 인기를 모았던 영화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에서 주인공이던 최민식이 내뱉은 이 대사는 영화를 본 모든 이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꼽을 만큼 전 국민적인 인기를 누렸다. 오죽하면 영화는 몰라도 이 대사만큼은 안다고 그럴까. 그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겨준 장면이었다. 

불과 1분 남짓의 짧은 대사가 선풍적인 인기를 끈 이유는 역시 최민식이란 대배우의 생동감 넘치는 대사 소화력에 있다. 익숙하지 않은 경상도 사투리임에도 불구하고 귀에 착착 감기는 딕션과 중간 중간 반복되는 라임을 절묘하게 구사한 그의 대사 처리는 마치 요즘 젊은 친구들이 즐겨듣는 랩송을 연상시킬 정도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다. 그 대사는 단순히 웃음만을 위한 장치가 아닌 탓이다. 심하게 말하면 그 대사 안에 이 영화 전체의 주제를 대변하는 중요한 의미가 담겨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의미심장한 대사이기 때문이다. 

아는 이들은 알겠지만 이 영화의 배경이 된 시대가 바로 1990년대 초반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1990년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조직폭력배를 중심으로 한 사회악 뿌리 뽑기가 한창이었는데 바로 그 과정에서 일어난 일을 다루고 있는 것. 국민들이 열광한 것은 당연했다.

사회의 암적 존재라 할 조직폭력배를 검거한다고 하니 환영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지만 한편으론 오랜 시간 뿌리 깊게 유착되어 있던 검경과 조직폭력배의 공생을 익히 알고 있던 터라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최민식의 대사가 바로 그를 암시하는 것이었다. 

조직폭력배의 두목급 인사들과 검찰과 경찰의 주요인사가 같이 밥도 먹고 사우나도 같이 가고 집에도 찾아가는 그런 사이가 적지 않다는 걸 알 만한 사람이면 다 알고 있는 때였다.

실제로 유명 조폭 인사의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국회의원이나 정계 주요 인사의 화환이 답지하는 경우가 한둘이 아니지 않은가. 그걸 알고 있으니 당시 대통령이 부르짖은 범죄와의 전쟁이 눈 가리고 아옹 식의 보여주기식 이벤트 정도가 아닐까 의심하는 것은 당연했다. 영화는 언제나 현실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최민식의 그 대사가 1990년 당시에 실제로 일어났을 가능성은 충분히 존재한다. 

그 때문이었을까. 1990년에 있었던 범죄와의 전쟁은 그렇게 절반의 성공으로 끝났다. 바꿔 말하면 절반의 실패이기도 했다는 뜻이다. 그때 배운 학습효과 덕인지 2023년, 새롭게 리메이크된 범죄와의 전쟁은 단 한 치의 유착도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다.

◆ 조폭보다 무서운 건폭 때려잡기

지난 8월 22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지난해 12월부터 시행한 ‘건설현장 갈취·폭력 등 조직적 불법행위 특별단속’ 결과 4829명을 붙잡아 검찰에 송치하고 이 가운데 148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불과 250일 만에 거둔 혁혁한(?) 성과였다. 건설현장 조직폭력배, 속칭 건폭 검거 작전의 성과를 자랑스레 공표한 것이다.

건폭이라는 무시무시한 명칭은 익히 알다시피 지난 2월 윤석열 대통령이 언급한 뒤로 공식 용어가 되다시피 한 단어다. 사실 의아한 구석이 적지 않다. 대한민국 경제사의 가장 큰 축을 담당해온 건설업계 종사자들이 조직폭력배에 비견될 만한 악행을 저지르고 있다는 게 가당키나 한 걸까.

그런 의혹을 의식하기라도 한 듯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건폭 단속자들의 불법 행위를 분류별로 나누어 적시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전임비·복지비 등 각종 명목의 금품갈취가 3416명으로 전체의 70.7%로 가장 많았고, 출근 방해·공사 장비 출입방해 등 업무방해가 701명(14.5%), 소속 단체원 채용 및 장비사용 강요 573명(11.9%) 등의 순이었다.

건폭 수사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의 시위 모습. [사진=민주노총]
건폭 수사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의 시위 모습. [사진=민주노총]

적시된 사안 하나하나가 마치 조폭의 그것과 닮아있다. 무고한 시민의 돈을 불법적으로 갈취하고 자기 물건 넣어달라며 영업방해를 하는 것 하며 조폭 똘마니들을 업장에 출근시키는 것까지 건설노조가 보여준 모습은 영락없이 조폭의 행태를 연상시킨다. 정말 그게 사실이라면 당연히 처벌을 받아야 옳다. 그러나 정말 그런 걸까. 

10건 중 7건에 해당되는 금품 갈취에 해당되는 월례비나 전임비, 복지비 등은 지금까지 관례적으로 행해지던 일이었다. 물론 그게 올바르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거의 모든 건설 현장에서 큰 죄의식 없이 행해지던 일이었음을 고려해본다면 다소간의 계도 기간 정도는 주어져야 옳지 않을까.

채용 요구나 장비 시용 등에 관한 문제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이 모두는 건설업계의 구조적인 문제로 이에 관한 책임은 노동자들보다는 건설사의 책임이 더 크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그에 관한 책임을 오롯이 노동자들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경찰청은 올해 국가수사본부에 배당된 전체 특진자 510명의 10분의 1에 달하는 50명을 건폭 수사에 할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수많은 서민들의 고통을 부른 전세사기 특별단속 특진자에 배당된 인원이 30명이라는 걸 고려하면 경찰이 어디에 비중을 두고 있는지 분명하게 인지할 수 있다. 비중이 큰 만큼 실적 쌓기에 너무 매몰되고 있는 건 아닌지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 특정 집단 때리기를 위한 수사가 이어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는 건 그래서일 것이다. 

정부는 정해진 법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지만 그게 사실이라기엔 여러 루트를 통해 제기되는 반응들이 심상치 않다. 당장 지난 5월, 한국을 방문한 앰벳 유손 국제건설목공노련사무총장은 "한국 정부가 600명이 넘는 건설노조 조합원을 수사하고 간부 16명을 구속한 것은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위반"이라며 정부의 대처가 정상적이지 않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여러 국내 단체들 역시 동일한 맥락에서 정부를 비난하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도 성명을 내고 정부의 건설노조 탄압을 규탄하고 나선 것과 함께 참여연대도 건설노조에 대한 공격 중단을 요구하고 나선 것. 이는 모두 정당한 노조활동이 위축되는 현 상황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사건의 직접 당사자인 건설노조의 행보도 촌각을 다투고 있다. 건설노조는 이번 사안과 관련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의견표명을 요청한 상태다. 정당한 노조활동을 공갈과 협박으로 매도하고 건폭이라는 악의적인 프레임을 덧씌우는 현 상황이 옳지 않음을 대외적으로 알리려는 의도다. 

굳이 잘잘못을 따지자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가 극단적인 갈등으로 인해 사분오열되는 상황을 막는 일일 테니까. 지금처럼 정부가 건설노조를 사회악으로 규정하고 건폭이라는 용어로 적대시하는 이상, 양측의 갈등은 극한을 달릴 수밖에 없다. 

건설업은 한국 경제를 견인해온 가장 든든한 직군이었다는 사실을 나 몰라라 한 채 현재처럼 건폭이라는 프레임에 가둬놓는 상황이 이어진다면 건설노조뿐만이 아닌 전체 노동자들의 반발이 이어질 것은 자명하다. 현 정부가 원하는 노동개혁의 해답은 강압과 채찍이 아니라 대화를 통한 과정 속에서 발견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사진=프리픽]
 [사진=프리픽]

다시 영화 얘기로 돌아가자. 앞서 언급한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 등장하는 노래 ‘풍문으로 들었소’를 기억하는지. 원래는 ‘함중아와 양키스’라는 그룹이 부른 것을 새롭게 리메이크해 ‘장기하와 얼굴들’이 불렀다. 특유의 경쾌한 리듬이 주연배우들의 등장신에 맞물려 울려 퍼지는 순간, 저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되는 그런 노래였다. 영화의 인기에 크게 한 몫한 그 노래가 지금 이 순간, 떠오르는 건 왜일까.

이번 단속이 혹시 풍문으로 들은 이야기에 혹해 진행된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도대체 누가 그 풍문을 흘린 걸까. 왜 흘린 걸까. 근거도 없는 풍문 따위에 우리 경제를 지금의 자리로 끌어올린 건설 노동자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있는 건 아닌지 다시 한 번 심각하게 고민해볼 때다. 

손영남 칼럼니스트
손영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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