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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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는 자랑질 같아 좀 그렇긴 하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책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그런 아이였다. 눈앞에 보이는 책이라면 종류 여하를 막론하고 그 자리에서 읽어버려야 하는 성향의 소유자였던 것. 아이들이 읽는 동화는 물론이고 문학전집, 철학서에 이르기까지 나이에 걸맞지 않은 폭풍 독서열을 지닌 그런 아이였던 나다. 친구 집에 놀러가서도 가장 먼저 한 게 그 집의 책꽂이 앞에 서서 책들을 기웃거리는 일이였다면 이해가 가지 않을까. 

덕택에 칭찬 꽤나 받는 아이였던 걸로 기억된다. 물론 반작용이 없지는 않았다. 누구누구는 저렇게 열심히 책을 보는데 넌 뭐하는 거냐는 말과 함께 아닌 밤중에 홍두깨식의 지청구를 받아야만 했던 불쌍한 내 친구들이 그에 속한다. 이 자리를 빌려 심심한 사과의 뜻을 전하고자 한다. 

생각해보면 참 많이도 읽었다. 물론 이젠 뇌세포의 급격한 소멸로 인해 기억에서도 희미해지고 있지만 그 시절 읽었던 책들 중 여전히 기억에 남는 것을 꼽으라면 대충 두 권을 들 수 있겠다. 하나는 당시로선 19금 서적의 최고봉을 달리던 선데이서울이었고(딱히 그 내용을 이해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저 멋진 삼촌들의 얼굴을 보는 것이 좋았던 것뿐이었다. 믿거나 말거나.) 또 다른 하나는 동화 ‘엄마 말 안 듣는 청개구리’였다. 

이젠 더 이상 사람들이 전어를 찬미할 때

왕새우나 꽃게가 최고란 말을 하지 않는다.

익히 알다시피 엄마 말이라면 무조건 반대로 하는 청개구리가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비로소 후회를 느끼고 개과천선(?)한다는 내용이었는데, 이상하게 그 내용이 마음에 와닿았다. 다른 아이들에겐 그저 말 안 듣는 나쁜 청개구리 이야기에 불과했겠지만 내겐 그 캐릭터가 자신만의 뚜렷한 가치관이 형성되어 있는 어른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까닭이었다. 그 날 이후였던 것 같다. 나도 저렇게 살아야지 하는 마음을 갖게 된 건.

 [일러스트=프리픽]
 [일러스트=프리픽]

나름 모범생으로 살아오긴 했지만 중간 중간 나만의 소소한 일탈을 즐길 수 있었던 건 아마 그 영향 때문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아직도 그런 성향은 여전히 내 유전자 한 켠에 아로새겨져 있다. 지드래곤의 노래 ‘삐딱하게’를 들으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거나 ‘모두가 yes라고 할 때 no라고 말할 수 있는 모모’로 유명한 광고를 접하곤 절로 탄성을 토해냈던 일들이 그 증거다. 한마디로 내 맘속에 청개구리 한 마리를 품고 살았던 셈이랄까. 그리고 그 청개구리는 삶을 걷다 선택의 기로에 놓일 때마다 불쑥 등장해 요란하게 노래를 불러줌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곤 했다. 그래서 이 모양 이 꼴로 사는 걸까, 에구. 

그랬는데……. 

어느 날 그 청개구리가 사라졌다.

발단은 몇 년 전 여름이 깊어가던 무렵, 부모님을 모시고 떠난 여행에서 비롯되었다. 평소라면 내가 가고 싶은 곳을 홀로 떠돌기 십상이던 여름휴가였지만 그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효녀 코스프레를 한답시고 부모님을 모시고 여기저기 둘러보자 마음먹은 터였다. 부모님을 모셨으니 평소의 나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을 관광지 위주의 코스를 골라 총 닷새에 걸친 대장정에 돌입한 어느 하루였다. 

부산으로 대구로, 다시 경주로, 울산으로 이어지는 강행군. 칠십 노모의 내 생전 처음이라는 감탄사를 몇 번이나 듣고 나니 그동안 내가 뭐했나 하는 자책이 깊어지던 일정의 마지막 날이었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것이 삼천포에서 벌어지고 있던 ‘전어 축제’였다. 생뚱맞게 그 여름에 전어 축제가 뭔가 싶기도 했지만, 전어라면 가을만을 떠올리는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깬다는 의미에서 본다면 내겐 최상의 선택이기도 했다. 내 안의 청개구리가 열렬히 환호할 만한 시추에이션이었으니까. 

청개구리들의 장엄한 오라토리오를 들으며 돌아본 삼천포 전어축제는 오롯이 ‘전어를 위한, 전어에 의한, 전어만의’ 축제였다. 아무 것도 없었다. 몇 번인가 눈 씻고 봐도 축제를 빛낼 행사도,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전시회도 찾아볼 수 없었으니까. 있는 거라곤 오직 하나, 12,000원 균일가로 통일된 전어회와 전어구이, 전어 회무침 3종 세트가 전부였던, 그러니까 축제라는 단어를 써서는 안 되는 그런 장사판에 불과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먹는 음식보다 더 맛있는 건 없다는

지극히 단순한 이치를 이제야 깨닫게 된 게 창피하다

상황이 그랬으니 애당초 선택의 자유 따위란 없는 국면이었다. 떠오르는 온갖 욕설을 머릿속으로만 그려본 후, 한 가게로 들어가 전어 3종 세트를 영접했다. 예상대로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맛이었다. 동네 어귀, 조그마한 횟집에서 파는 전어와 한 치도 다르지 않은 맛을 보여주었으니까. 

이 정도면 내 안의 청개구리가 요동을 쳐야 마땅했다. 실제로 그럴 징조가 보이기도 했고. 그 순간 앞자리에서 맛난 표정으로 전어를 드시고 계시던 부모님의 얼굴을 발견했다. 모르긴 몰라도 당신들 역시 내가 느낀 그 맛을 그대로 느끼고 계셨을 것임이 분명했다. 어디서나 맛볼 수 있는 전어 아니던가. 그런데 왜 그리 즐거운 표정이셨을까? 

  [사진=프리픽]
  [사진=프리픽]

이유는 간단했다. 남들 눈엔 부족하기만 한, 그러나 당신들의 눈엔 세상 자랑스러운 그 딸과 함께 먹는 전어였기 때문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내 안의 청개구리가 동작 그만을 외쳤고 그 날 이후 두 번 다시는 청개구리의 울음을 들을 수 없었다. 그렇게 여행은 끝났고 비로소 여름도 저물었다. 그리곤 가을이 왔다. 

가을이 막 펼쳐지려는 지금, TV에선 하루에도 족히 너댓 번은 전어를 보여주고 있다. 예전 같았으면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는 식상한 멘트에서 채널을 바꿔야 온당하겠지만, 지금의 나는 그 방송을 보고 또 보고 있다. 이젠 더 이상 사람들이 전어를 찬미할 때 왕새우나 꽃게가 최고란 말을 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들 역시 내가 겪은 그 일을 겪고 난 후 전어를 사랑하게 되었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모두가 Yes라고 외칠 때 더 이상 No라고 해야 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어쩌면 이건 내가 나이를 먹었음을 의미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그게 서글프진 않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먹는 음식보다 더 맛있는 건 없다는 지극히 단순한 이치를 이제야 깨닫게 된 게 창피하긴 하지만, 그래도 지금이라도 알게 된 게 어딘가. 그 사실을 알려준 전어에게 경의를. 그 보답으로 다음번엔 꼭 전어를 대가리부터 먹으려 한다. 대신 눈알은 좀 가려줬으면 하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올 가을엔 전어를 먹을 수 있긴 한 걸까. 바다 건너 누군가가 말도 안 되는 쓰레기를 태연자약하게 전어들의 터전에 뿌리고 있는 탓이다. 그래도 먹기는 먹어야 할 터. 그 쓰레기가 돌고 돌아 우리 앞바다에 오기 전에 잡힌 전어라면 괜찮을 테지. 늦기 전에 부모님께 전어 먹으러 가잔 전화를 해야겠다.  

김나현 칼럼니스트
김나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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