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지수보다 스코빌 지수에 더 민감한 사람들

 [사진=프리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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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한 하루의 끝이면 습관처럼 좋은 사람들과의 술자리가 기다리곤 한다. 이야말로 대대손손 이어갈 우리 고유의 미풍양속(?)일 터. 그날 역시 그랬다. 하루 종일 깨지고 넘어지기를 반복했으니 지친 영혼을 달래줄 소주 한잔은 필수적인 날이었다는 소리다. 그 결과, 오랜 인연으로 엮여진 친구들이 간만에 만나 희희낙락 술잔을 기울였지만 그러지 못하는 단 한명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필자의 오랜 친구 '구리'였다. 

여자 이름이 구리라고 하니 부모님의 무신경함을 안타까워할 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구리가 그 아이의 본명은 아니다. 만인이 지켜보는 공개석상인지라 본명을 밝힐 순 없지만 누구보다 예쁜 이름을 가지고 있으니 부모님을 탓하는 것은 삼가주길 바란다. 이쯤 되면 짐작이 갈 것이다. 그렇다. 구리는 그녀의 별명이다. 참고로 풀네임은 말똥구리다. 

처음 명명식 때 소똥구리와 말똥구리를 놓고 의견이 엇갈리긴 했지만 소똥구리보단 말똥구리가 입에 잘 감긴다는 이유로 결국 말똥구리로 낙점된 이후, 그녀의 별명은 말똥구리로 정해졌고 그녀는 이후 부모님이 지어주신 예쁜 이름 대신 구리라는 구린 이름으로 불리워지고 있는 중이다. 그래도 나름 양심은 있어 남들 다 보는 자리에선 말똥구리라 부르는 대신 줄여서 구리라고 부르는 것인데 거기엔 그럴만한 사정이 있다.

혹시라도 잘 안 씻어서 냄새가 난다는 그런 원초적인 이유는 아니니 이 또한 오해는 금물이다. 이런 별명이 붙게 된 이유를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말똥구리가 말똥을 동그랗게 마는 것처럼 그녀 역시 주먹밥을 잘 말았기 때문이었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우리 사회는 매운 것이 미덕인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술 한 잔에 온몸이 붉어지는 '알쓰'(알콜쓰레기, 술 못마시는 사람을 부르는 속어)인 데다가 매운 것에 지극히 취약한 '맵찔이'(맵다와 찌질이를 합쳐서 만든 신조어로, 매운맛에 약한 사람을 칭하는 속어)인 탓에 닭발집이나 매운 꼼장어를 먹기라도 할라치면 할 일 없는 우리의 구리는 묵묵히 주먹밥을 만들곤 하는데 거기서 비롯된 별명인 셈이다. 남들이 술을 먹고 매운 닭발을 먹는 동안 구리는 주먹밥을 만드는 것으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 것이랄까. 

남들은 즐겁게 먹고 마시는 동안 혼자서 주먹밥을 마는 그 모습이 왜 그리 흐뭇한지. 그건 굳이 필자만의 생각만이 아니었다. 다른 친구들 모두 구리의 그런 모습에 미소를 날리기 일쑤였으니까. 친구가 혼자서 고생하는데 그걸 보고 흐뭇해한다는 게 의아할 수도 있겠지만 거기엔 또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평소의 구리는 소위 말하는 엄친딸이다. 어린 시절부터 얼굴도 예쁜 것이 성격도 좋으면서 공부까지 잘 한다는 이유로 칭찬만 받으면서 살아온 그녀는 사회에 나와서도 좋은 직장에 들어갔고 십여년 전부터는 자기 사업을 시작해 꽤나 성공을 거둔 복 받은 삶을 영위해가고 있는 친구다.

어디 하나 부족한 것이 없는 그 녀석이 좀처럼 기를 펴지 못하는 단 하나의 순간이 술이 있고 매운 안주가 있는 그런 자리다. 바로 이 때가 우리들이 그녀를 맘껏 구박하고 부려먹을 절호의 기회이니 그걸 사양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날 역시 그랬다.

“이게 뭐야? 여기 각 진 거 안 보여. 너 제대로 안 말 거야? 동그랗게. 더 동그랗게.”

“얘가 초심을 잃었어. 갈수록 나태해지잖아. 이러면 우리가 너를 구리라고 부르기가 민망해지는데.”

 [일러스트=픽사베이]
 [일러스트=픽사베이]

이때다 싶은 친구들의 구박에 가끔은 발끈하곤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해결책이 있을 리가 없다. 그게 싫으면 술 먹으라는데 전들 어쩔까. 하기 싫으면 안주 먹으면 되지 않냐는데 그게 애당초 불가능한 아이인 것을. 알쓰에 맵찔이를 두루 겸비한 자신의 체질을 탓할 밖에. 가끔 핀치에 몰린 그녀가 나한테 도움의 눈길을 보내지만 그럴 때면 보고도 못 본 체 한다. 

지금은 아니지만 나도 한때 그녀처럼 알쓰에 맵찔이던 시절이 있었던 탓이다. 동병상련의 맘으로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그녀의 눈빛이 장화 신은 고양이의 그것처럼 아련해서 잠깐 흔들리기도 하지만 자칫 그랬다간 나 역시 구리란 호칭을 얻게 될 지도 모르니(이미 말똥구리는 존재하니 필연적으로 소똥구리가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런 일은 절대 사절이다.

내가 어떻게 지금의 이 자리에 올라섰는데. 죽도록 노력해 주량을 늘렸고 피똥 싸는 각고의 훈련 끝에 닭발과 꼼장어를 섭취할 수 있게 된 지금을 맘껏 향유할 밖에. 미안하다 친구야. 난 더 이상 올챙이적 생각 따위는 하지 않는 오만방자한 개구리란다.


◆ 지금은 매운 것 권하는 사회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현재 우리 사회는 매운 것이 미덕인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한때 매움의 표준 코드였던 신라면으로는 부족해 신라면 레드가 등장했고, 불닭볶음면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핵불닭볶음면과 불닭볶음면 할라피뇨치즈까지 선을 보이고 있는 게 그 증거다.

먹으면 죽을 수도 있다는 엄포에도 불구하고 디진다 돈까스와 신길동 매운 짬뽕집 앞은 사시사철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는 것 또한 그렇다. 뻘겋다 못해 시뻘건 실비 김치는 매운 것을 선호하는 이들 사이에서 센스 있는 선물 목록에 등극해있을 정도로 우리 사회의 매움 찬양은 나날이 드세지는 추세다. 

무엇보다 이게 한때의 유행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이유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매운 맛을 추구한다는데 있다. 우리처럼 나이 많은 세대들이 매운 닭발이나 불꼼장어, 명동 낙지볶음 같은 걸로 매운 맛을 누리는 반면 요즘 아이들은 마라탕이나 엽기 떡볶이 같은 걸로 자신들의 취향을 드러내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한 술 더 떠 요즘 아이들이 음식을 먹을 때 스코빌 지수(매움의 정도를 나타내는 지수)부터 확인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있을 정도로 우리 사회는 매운 맛에 열광하고 있다. 

요즘 아이들은 음식먹을 때 스코빌 지수부터 확인한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매운 맛에 열광하고 있다

그걸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우리나라에 고추가 전파되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 삶은 참 많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 말이다. 어떻게든 대안을 찾아내는 민족이니 또 다른 무언가로 삶의 고통을 어루만지는 방법을 찾아냈겠지만 그래도 청양고추의 화끈함만큼 우리 속을 뻥 뚫어주는 카타르시스는 쉬이 대체될 수 있는 게 아니지 싶다.

화끈하고 뒤끝 없는 우리네 민족성과도 참 잘 어울리는 식재료인 고추의 전파는 우리 민족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변곡점을 만들어낸 사건이었음이 분명하다. 다른 걸 다 떠나서 고춧가루 없는 김치라니,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사진=프리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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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래도 요즘 중국애들이 우리 김치가 자신들의 파오차이에서 유래된 것이라는 억지주장을 하고 있는 판이다. 워낙 얼토당토않은 얘기라 반론하기조차 싫지만 만약 우리 김치에 고춧가루가 들어가 있지 않았다면 그런 멍멍이 소리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했을 지도 모르잖은가.

김치 못지않게 고춧가루의 축복을 받은 음식인 떡볶이도 매한가지다. 짜장 떡볶이나 간장 떡볶이도 나름 맛있긴 하지만 그래도 떡볶이는 빨개야 하는 것이 국룰이다. 이외에도 고추의 축복으로 다른 차원의 맛을 구가하는 우리 음식들을 보면 지금의 매운 맛 전성시대는 응당 예견된 것이긴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요즘 트렌드는 너무 과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없지는 않다. 

왜 이렇게도 사람들은 매운 음식을 찬미하는 걸까? 여러 주장들이 존재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만큼 삶이 힘들어서가 아닐까 싶다. 힘든 삶을 잊게 만드는 충격 요법으로 그만큼 좋은 건 없을 테니까. 당장 필자가 그 증거다. 필자가 술이 는 게 인생이 고달파지면서부터였고 매운 것을 애써 찾아 나선 것 역시 스트레스 때문에 마비된 미각을 되살려야 한다 생각했을 때부터였으니까 남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미루어 짐작 중이다.

당장 우리 구리의 케이스만 봐도 그 주장은 설득력을 얻는다. 평생 힘든 것 없이 살다보니 식도를 타고 흐르는 소주의 화끈함도, 위장을 들쑤시는 캡사이신의 맹렬함도 필요가 없었을 게 분명하다.

생각해보면 필자 역시 알쓰에 맵찔이던 시절엔 그리 큰 고민 따위는 하지 않던 인간이었고. 이런 생각을 하니 괜스레 울적해진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얼른 원고 마무리하고 배달 앱을 켜서 매콤한 낙지덮밥이나 하나 주문해야겠다. 시원하게 땀 한 번 빼고 나면 이런 쓰잘데기 없는 생각들은 더 이상 안 할 테니 말이다. 

김나현 칼럼니스트
김나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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