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한국관광공사]
 [사진=한국관광공사]

삶이란 길을 걷다보면 어김없이 만나게 되는 첫 경험의 순간들이 여럿 있다. 처음으로 말을 하고 기고 걷던 그 기적의 순간들이 그렇듯이 이런 첫 경험들은 대체로 긍정적인 의미로 다가서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내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질 치며 사라진 날카로운 첫 키스’가 아닐까 싶다. 생각하니 또 설레네. 그처럼 첫 경험의 기억들은 대부분은 설레거나 즐거웠던 것으로 점철되기 십상이지만 모두가 다 그런 건 아니다. 개중 몇몇은 아주 불편하기도 했으니까. 뭐가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 첫 경험 중 불편했던 기억들은 대부분 먹는 것들과 연관이 있다. 충분히 그럴 법한 이야기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난 먹는다는 행위 자체가 달갑지 않다. 푸드 칼럼니스트라는 인간이 할 말은 아니지만 사실은 사실이니까.

그래서 오히려 먹는 것에 더 예민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안 먹고 살 수 있다면 그래도 좋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먹는다는 행위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살아온 때문에 특별히 의도한 것도 아니면서 요즘 유행하는 간헐적 단식이나 일일일식(一日一食)을 오래전부터 수행해올 수 있기도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예전, 그러니까 어린 시절엔 안 먹는 것 투성이었다. 먹을 수 있는 것보다 먹을 수 없는 것들이 훨씬 많았을 정도였으니까. 그래도 많이 좋아지긴 했다. 사회생활이란 걸 하다보면 원하지 않아도 무언가를 먹어야만 하는 순간들이 존재하는 탓이다. 덕분에 요즘은 못 먹는 게 없는 것 같긴 하다. 이렇게 말하면 안 되려나.

아직 코끝을 탁 쏘는 홍어삼합의 짜릿함도 제대로 모르고, 너무나 구수해 고향을 떠올리게 한다는 청국장의 깊은 맛도 잘은 모르니까. 그래도 웬만한 음식은 다 먹을 수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근데 아직까지 친해지지 못한 것들이 몇몇 남아있다. 내 몸이 원한다는 파란색 이온음료와 왠지 있어 보이는 민트 초콜렛, 그리고 마지막이 바로 겨울의 별미 과메기다.  

과메기와의 첫 만남은 그 정도로 괴로웠다.

벌써 30년이 다 되어가지만 지금도 기억한다.

저 맛있는 것들을 왜 싫어하냐고? 여러 이유가 있지만 기본적으론 첫 인상이 너무 나빴던 까닭이다. 처음으로 접한 그 순간의 불쾌했던 기억이 뇌리에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에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달까. 이온 음료나 민트 초콜렛은 일단 젖혀두자. 안 먹는다 해도 사는 데 크게 불편하지 않으니까. 

그러나 과메기는 달랐다. 코끝이 알싸해지는 겨울이 오면 내 주변 지인들 중 하나 정도는 반드시 술안주로 추천하는 음식인 탓이다. 아주 친한 사이라면 거절할 수도 있지만 항상 친한 사람만 만나는 법은 아니잖은가.

그럴 때면 먹기도 전부터 속이 들끓기 시작한다. 과메기와의 첫 만남은 그 정도로 괴로웠다. 벌써 30년이 다 되어가지만 지금도 기억한다. 과메기를 처음 만나던 그 순간을...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들어간 직장에서 맞이한 첫 회식 자리였다. 안 그래도 긴장한 신입 사원이 대표님과 국장님, 그리고 사수의 술잔을 연이어 받느라 거하게 취해가고 있던 그때, 짜잔 하고 등장한 과메기를 처음 만났다.

솔직히 그게 뭔지도 몰랐다. 쭈글쭈글한 외모에 거무틱틱한 피부, 거기에 향기롭지 못한 체취까지 어디 하나 맘에 드는 구석이 없는 친구였다. 먹고 싶지 않았지만 안 먹을 수 없는 자리였다는 게 비극의 발단이었다.

비록 몸은 취했으나 정신만은 꼿꼿함을 유지하던 그 순간, 귀여운 신입사원에게 사수라는 양반이 직접 과메기를 입에 넣어주더라고. 배추에 물미역, 쪽파, 풋마늘을 올려주고 초고추장 듬뿍 찍은 과메기가 입안에 들어온 순간... 어떻게 됐을 거 같아? 

긴 말은 하지 않겠다. 그저 평생 보기 힘든 폭풍 분수쇼를 펼쳤다는 것. 덕분에 1차 때 먹은 안주와 2차 때 먹은 안주가 뭐였는지 그 장소에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세심하게 알려줬다는 것만 말할 수 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너무 비렸으니까. 과메기란 게 그런 거였다. 최소한 내가 그 자리에서 먹은 과메기는 그랬다. 

그날 이후 내 인생에 더 이상 과메기란 존재는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그렇게 기억은 옅어져갔다. 이제 더 이상 과메기 때문에 슬퍼할 일은 없지 싶었다. 잘 가라 과메기야. 너와의 인연은 여기서 마무리 짓도록 하자. 그랬으면 끝이었겠지만 인생이란 게 어디 맘 같을까.

작년 겨울, 업무 차 경주를 방문하기 전까지 나와 과메기는 그렇게 서로 모른 체 하며 잘 살고 있었다. 정해진 모든 일들을 마치고 밤이 오자 함께한 관계자가 어디론가 우리 일행을 끌고 갔다. 잘 아는 횟집이 있다며 안내한 그곳. 아마 모둠회를 시켰던 것 같다.

작년 일인데 왜 기억을 못하냐고? 모둠회가 미처 나오기도 전에 과메기를 만났거든. 에피타이저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등장한 바로 그 녀석. 일그러진 나와는 달리 주변의 분위기는 화기애애 그 자체였다. 과메기를 먹어본 사람들의 반응이 장난 아니었거든. 정말로 정말로 황홀하다는 표정이었어.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적어도 내가 아는 과메기는 사람들이 그런 표정을 짓게 만드는 아이가 아니었으니까.

 [사진=포항구룡포과메기사업협동조합]
 [사진=포항구룡포과메기사업협동조합]

그때였다. 일행 중 한명이 과메기가 맛있다며 권했던 건. 어쩌다 보니 내가 과메기를 싫어하는 이유까지 설명하며 거절하게 되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꼭 한번만 먹어보라고 강권하지 뭔가. 그러면서 덧붙이길 이 과메기가 맛이 없다면 두 번 다시 과메기 따위는 먹지 않아도 좋다고까지 하는데 더 이상 거절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따지고 보면 내가 약간은 을의 입장이어서 더 그랬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눈 딱 감고 한약 먹는 심정으로 먹었다. 세상 살기 참 힘들다는 생각과 함께 말이지. 그 역하고 비리며 냄새나는 과메기를 받아들인 내 위장이 그때처럼 또 요동칠 것 같다는 공포감에 몸을 떨기를 잠시....

살아가며 만나는 숱한 오해들을 지우는 일 만큼

우리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건 없다

뭐지? 왜 이런 거지? 이건 과메기가 아니잖아. 적어도 내 기억에 따르면 그건 정말로 과메기가 아니었다. 근데 사람들은 그걸 과메기라 부르더라고. 나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과메기라고 주장하니 과메기가 맞는 거였을 게다. 그 순간 극도의 혼란스러움에 빠져야만 했다. 내가 서울에서 먹었던 과메기라고 불린 그것은 도무지 뭐였을까? 그건 과메기가 아니었던 건지도 몰라. 그냥 다른 안주를 과메기라고 오해했던 게 분명해. 안 그러고서는 이럴 수가 없어.

솔직히 고백하면 정말 맛있었다. 담백하고 고소하고 꼬들꼬들한 그 맛이라니. 이게 원래 과메기의 맛이란 걸 이제야 알게 된 게 분하고 억울할 정도였다. 하긴 그 모든 게 다 내 잘못이니 누굴 탓할 수도 없는 일이지. 단지 첫 인상이 나쁘다는 이유만으로 그 친구에 대해 더 알아보고자 노력하지도 않은 내 경솔함이 이런 화를 불러온 거니까. 

그래도 조금 원망스럽기는 해. 그날 말도 안 되는 과메기를 억지로 내 입에 넣어준 내 사수 말이야. 하긴 자기라고 알았을까. 그날 그게 과메기의 탈을 쓴, 무늬만 과메기였다는 사실을. 어디 과메기만 그럴까. 세상엔 껍데기만 멀쩡한 존재들이 차고 넘치는 것을. 그 껍데기 아래 숨은 진실을 제대로 이해하기엔 너무 어렸던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사수라는 그 사람도 나보다 겨우 너댓살 더 많은 어린애였을 뿐이었는데 뭐.

겨울이 오면 그를 찾아 나설 예정이다. 그에게 진짜 과메기를 맛보여줘야지. 그리고 말할 거다. 내가 당신을 오해한 것처럼 당신 역시 과메기에 대해 오해한 건지도 모른다고. 살아가며 만나는 숱한 오해들을 지우는 일만큼 우리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건 없다는 걸 알려준 그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진짜 과메기를 대접하는 일뿐이다. 빨리 겨울이 왔으면 좋겠다. 

ps: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그날 내가 일부러 당신을 향해 오바이트를 한 게 아니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김나현 칼럼니스트
김나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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