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공유마당_채지형]
 [사진=공유마당_채지형]

나는 시월을 좋아한다. 왜인지 모르지만 그냥 시월이 좋다. 아니다. 사실은 차고 넘치는 이유들로 인해 시월을 좋아한다. 일단 한자 표기 그대로인 ‘십월’이라는 투박한 발음 대신 유려하게 이어지는 시월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부터가 나를 매료시킨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그 배려 넘치는 공기도 좋고 어느 시인의 표현처럼 콕 찌르면 온통 쪽빛 물이 들 것 같은 하늘 역시 내가 시월을 좋아하는 이유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큰 이유는 한 곡의 노래 탓이라고 해야 옳다.

대충은 짐작하시리라 믿는다.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라는 노래 때문이다. 아직은 서툴기만 하던 이십대의 어느 지점에서 그 노래를 처음 듣고 울컥 했던 기억 이후 시월은 내가 최애하는 달이 되어버렸다.

그 날 이후 기분이 울적하거나 괜스레 처지는 날이면 마치 정해진 루틴이기라도 한 양 난 그 노래를 듣는다. 그러고 나면 비어버린 영혼에 무한동력이 공급되는 기분이 들어 다시 삶을 이어나갈 힘을 얻곤 했다. 그래서다. 시월만 되면 어느 멋진 하루를 꿈꾸는 인간이 되어버린 건.

시월이면 항상 꿈꾸는 어느 멋진 날이지만 사실 그게 그리 만만한 건 아니었다. 삶이란 게 바란다고 모든 걸 다 내어주는 건 아닌 탓이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그 날이 왔다. 내가 언제나 꿈꾸던 시월의 어느 멋진 날이 되기 위한 완벽한 조건을 갖춘 어느 하루가 나를 찾아들었다는 뜻이었다. 

마침 시월이었고 게다가 토요일이었다. 계절감각도 상실한 채 종족 번식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피를 찾아 내 귓가를 어지럽히던 모기의 공습도 없었고, 깊은 새벽 노곤한 몸을 억지로 일으키게 만드는 불시의 요의(尿意)조차 없어 간만에 숙면을 취한 그 아침. 어느 때보다 개운한 몸으로 맞이한 그 아침의 하늘은 푸르디푸르렀고 코끝을 파고드는 가을 향취는 내 침실을 메운 아로마 향보다 더 진하고 상쾌했다. 그때 직감했다. 오늘이 바로 그 날인 것을. 

언젠가 자기가 한번 끓여주겠노라고도 했다.

물론 먹어보지는 못했다. 그러기엔 우리네 삶이 너무도 바빴으니까.

그 날은 친한 언니의 딸이 결혼을 하는 날이었다. 깔끔하게 옷을 차려입고 강남의 모 호텔로 갔다. 오랜만에 보는 지인들과의 수다도 완벽했고, 새로운 출발점에 선 두 청춘의 행복한 미소도 더할 나위 없는 것이었다. 간혹 눈물을 찍어내던 언니의 그 모습까지도 행복함에 겨운 것이라는 것은 새삼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호텔에서 제공한 스테이크의 굽기가 너무 웰던이었다는 정도였지만 그 아쉬움은 돌아서는 우리에게 제공된 답례품인 오색국수를 보며 떨쳐버릴 수 있었다.

지금까지 봐온 국수 중 가장 예뻤던 국수였다. 잔치 국수라는 타이틀을 달아주기에 한 점의 부족함도 없는 국수를 가방에 넣고 돌아오는 길, 저녁으로 끓여 먹을 국수를 생각하며 무슨 고명이 좋을지를 고민하던 그때였다.

‘김XX 본인상. 안타까운 나이에 먼 길을 떠난 김XX 동문의 명복을 빕니다.’

대학 선배의 부고 문자가 요란스레 전해졌다. 암으로 투병하던 선배의 마지막을 알리는 그 문자를 보는 순간, 오늘이 시월의 어느 멋진 날일 수 없다는 직감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사회에 나오면서부터는 그리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없던 선배였지만 대학 시절엔 그 누구보다 친하던 선배였다.

채 육십도 되지 않은 그가 이리도 허망하게 떠났다는 게 믿기지 않았지만 익히 알다시피 암이란 게 그런 존재 아니든가. 선배가 머지않은 어느 순간, 우리 곁을 떠날 것이라는 것은 여기저기를 통해 들여온 이야기로 미루어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리 빠를 줄은 몰랐다.

결혼식을 위해 준비한 그 옷으로 선배를 찾을 수는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는 한껏 침통한 마음으로 장례식장을 찾았다. 간만에 보는 대학 선후배들, 그리고 활짝 웃고 있는 선배의 사진이 나를 반겨주었다.

너무도 때 이른 죽음이었기에 상가 분위기는 침통할 수밖에 없었다. 워낙 밝고 쾌활한 사람이었으니 더더욱 그럴 수밖에. 아무 말도 없이 소주잔을 기울여야만 했던 그때, 선배의 절친이자 내 대학선배인 또 다른 한 선배가 우리 자리에 와 입을 열었다.

“내 이럴 줄 알았다. 뭐 초상 났냐? 아 초상 난 거 맞구나. 그렇다고 이렇게 침통할 필요까지 있냐. 안 그래도 XX이가 그러더라. 자기 상에 와서 애들이 울상 짓고 있을 테니 그런 거 보면 혼내라고. 웃어. 그 놈 마지막 부탁이었어. 알잖냐? 그 놈이 어떤 놈인지.”

보지는 못했지만 우리 중 가장 많이 울었을 게 분명한 선배가 그런 말을 하면서까지 우리를 웃게 만들려는 이유는 자명했다. 마지막 가는 길에 올려진 사진에서조차 활짝 웃고 있던 선배는 그런 사람이었다. 언제나 유쾌하고 누구보다 사람들을 챙기는 명랑한 사람.

그런 사람이니 자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슬퍼하는 것을 원하진 않았을 것이란 걸 모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웃을 수 없는 건 그를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었다. 여전히 울상을 짓고 있는 우리들을 본 선배는 더 이상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아서인지 자리를 옮겼다. 그러면서도 한 마디 더 하는 것을 잊지는 않았다.

“속 버린다. 술만 먹지 말고 밥 챙겨먹어. 오늘 육개장 좋더라.”

 [일러스트=프리픽]
 [일러스트=프리픽]

그의 말대로 상 위에 옮겨진 육개장은 꽤나 먹음직스러워보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숟가락을 가져갈 수 없었던 건 선배와의 추억이 떠올랐던 때문이었다. 대학 시절, 밤새 달린 술을 깨운다는 명목으로 선배와 육개장을 먹으러 간 적이 있었다. 그때 선배가 그랬었다. 자긴 서울식 육개장보다는 경상도식 소고기국이 더 좋다고. 

선배는 마산 사람이었다. 멀겋게 나오는 서울식 소고기 뭇국과는 달리 경상도식 소고기국은 빨간 국물이 특징이라고 했다. 짧은 생각으론 그게 육개장과 뭐가 다를까 싶었지만 선배 말로는 하늘과 땅 차이라고 했다. 언젠가 자기가 한번 끓여주겠노라고도 했다. 물론 먹어보지는 못했다. 그러기엔 우리네 삶이 너무도 바빴으니까.

이제 선배가 끓여주는 경상도식 소고기국을 먹어볼 순 없을 것이다. 그래도 그가 남긴 그 마음들은 기억할 것이다. 그건 나만 그런 게 아니었을 것이다. 선배는 누구에게나 다정한 사람이었으니까. 그런 기억들을 안고 있는 우리들은 그렇게 소주잔만 하염없이 기울이다 언제 만날지도 모르는 기약 없는 약속을 하고 식장을 나섰다.

그렇게 돌아온 집, 급하게 던져버린 옷가지 하며 답례품으로 받아온 오색국수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 다시금 선배의 기억이 떠올라 눈물을 지어야만 했다. 그렇게 시월의 어느 멋진 날은 슬프디 슬픈 날로 바뀌어가는 듯 했다.

선배랑 나란히 앉아 빨간 소고기 뭇국을 먹을 수 있다면

정말로 멋진 시월의 어느 날이 될 거였는데.

그래서는 안 될 일이었다. 내가 아는 선배라면 내가 자기 때문에 슬퍼하는 걸 못 견딜 거란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가는 길에서조차 자기 때문에 울지 말라고 말하던 사람. 그런 사람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다음날, 나는 마트에 들러 고기를 사고 콩나물을 사고 무를 샀다. 다행히 인터넷에는 경상도식 소고기 뭇국을 끓이는 레시피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선배가 먹었던 그 맛일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그래도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걸 먹으며 선배를 기리고 싶었던 거였다. 소프라노 강혜정이 부른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들으며 먹는 소고기 뭇국은 확실히 육개장과는 달랐다. 선배가 했던 말이 괜한 것이 아니었구나 싶을 정도로. 그때 눈물을 흘렸던가. 그랬을 것이다. 절대로 슬퍼서가 아니었다. 그냥 매워서였다. 

‘눈을 뜨기 힘든 가을보다 높은 저 하늘이 기분 좋아

휴일 아침이면 나를 깨운 전화 오늘은 어디서 무얼 할까

창밖에 앉은 바람 한 점에도 사랑은 가득한 걸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 바람은 죄가 될 테니까.‘

흘러나오는 노래에서는 바라는 것조차 죄라고 했지만 그래도 하나쯤은 바라도 되지 않을까. 선배에게 내가 끓인 소고기 뭇국을 먹여주고 싶다는 바람 말이다. 내가 아는 선배라면 그 맛없는 소고기 뭇국을 먹으면서도 연신 칭찬하느라 정신이 없었을 테지. 선배랑 나란히 앉아 빨간 소고기 뭇국을 먹을 수 있다면 정말로 멋진 시월의 어느 날이 될 거였는데. 잘 가요 선배.

김나현 칼럼니스트
김나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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