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광염은 필수, 우울증은 선택인 콜센터 종사자들

 지난 2018년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제정됐지만 여전히 콜센터 종사자들의 고충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일러스트=프리픽]
 지난 2018년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제정됐지만 여전히 콜센터 종사자들의 고충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일러스트=프리픽]

1988년은 대한민국 역사에 아로새겨질 기념비적인 해로 기억된다. 올림픽 개최가 이루어진 해인 동시에 최초의 직선제 대통령 선출이 이어진 때문이다. 한국이라는 나라를 전 세계에 알린 올림픽 개최도 뜻깊었지만 서민들의 입장에선 ‘보통 사람들의 위대한 시대’라는 정치적 수사가 더 의미 깊게 다가온 시절이었다.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 위대하다는 데 혹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냉정하게 보면 보통 사람들이 위대하다는 말은 역설에 가깝다. ‘보통’과 ‘위대’는 한 바구니에 담기기 어려운 성질을 띤 가치인 탓이다. 그러나 단지 그 이유 하나로 이를 역설이라고 단순 해석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특히 보통 사람을 규정하는 가장 일반적인 잣대인 경제력 기준으로 본다면 더더욱 그렇다. 

여기서 드는 궁금증 하나, 과연 어느 정도를 벌어야 보통 사람으로 인정될 수 있을까. 정확한 기준을 제시할 수는 없지만 그와 관련한 흥미로운 보고서 하나를 인용해볼 수는 있겠다.

신한은행이 2017년부터 매해 발간하고 있는 ‘보통사람 금융생활 보고서’가 그것. 이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보통 사람’의 월 평균 가구 소득은 493만원이었다. 아직 올해 기준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물가나 임금 상승 등 여러 요인들을 감안해보면 2023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보통 사람으로 인정받으려면 최소 500만원 이상을 벌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게 쉬운 일일까.

고연봉을 보장하는 대기업 소속이거나 전문직이 아닌 한에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에 속하지 않는 홑벌이 가구라면 웬만해서는 이 기준을 충족시키기가 어려울 게 분명하다. 누구처럼 떵떵거리고 살지는 못해도 최소한 보통 사람처럼은 살고 싶은 사람들, 특히 여성들의 욕망이 불타오른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그 결과, 충실하게 가정을 지키던 여자들이 생활 전선에 뛰어드는 일이 광범위하게 번져나갔다. 문제는 그 과정이 쉽지 않았단 점이다.

이 칼럼을 통해 다룬 바 있는 경단녀 문제에서 언급한 바 있지만 집에서만 있던 여성들이 취업하는 것은 극히 지난한 게 사실이다. 특별한 전문성도 없고 경력도 없는 여자를 어느 기업이 환영할까. 이 와중에 전문성도 없고 경력도 없는 여자를 환영하는 조직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컨택센터, 우리들이 흔히 말하는 콜센터였다. 자연스레 일자리를 찾는 여성들의 분주한 발걸음이 이어졌다. 


◆ 콜센터 인력 40만명 추정...열악한 처우, 개선되지 않아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사업지원서비스업 산업현황'에 따르면 콜센터 및 텔레마케팅서비스업은 사업체 수 1750개, 종사자 수는 8만 27명이다. 그러나 이는 정확한 수치가 아니다. 통계청 스스로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 조사 기준과 분류 목적에 따른 콜센터 종사자 누락은 필연적인 수순이었다는 것.

그렇다면 진짜 콜센터 종사자 수를 확인할 수는 없을까. 그나마 정확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 곳이 콜센터 업계를 대표하는 한국컨택센터산업협회다. 협회는 8만여명이라는 통계청 수치를 훨씬 웃도는 40만명 정도로 콜센터 인력 현황을 추정했다. 물론 이 역시도 추정치에 불과하다.

정확하게 몇 명의 상담사가 종사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현재로서는 없는 상황에서 컨택센터 종사자 수도 매년 성장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추정한 수치일 뿐이라는 게 황규만 한국컨택센터산업협회 회장의 말이다.

 [사진=프리픽]
 [사진=프리픽]

그게 무엇이든 중요한 것은 수많은 여성들이 콜센터에서 일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덕에 그녀들의 가정은 보통 사람, 보통 가정의 형태를 간신히 유지하게 되었지만 그를 얻기 위한 대가가 너무 가혹하다는 것이 문제였다.

콜센터 종사자들의 열악한 처우에 관한 보고는 차고 넘칠 만큼 충분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각종 제도의 등장이 연이어 뒤따른다는 것만 봐도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2018년 제정된 감정노동자 보호법이다. 이밖에도 다양한 사회적 노력들이 등장한 끝에 이전보다 많이 개선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현실은 녹록치 않다는 게 현장의 반응이다.

이를 보여주는 사례도 있다. 지난 2020년 개봉한 영화 '젊은이의 양지'가 그것. 콜센터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콜센터 종사자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닭장처럼 꽉 막힌 공간에서 근무하는 수십 명의 사람들, 그리고 방광염으로 인해 기저귀를 차고 근무를 하는 19살짜리 실습생이 충격으로 다가오는 이 영화를 보고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그는 콜센터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이 분명하다. 이게 단순히 영화적 장치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며 여전한 의문을 표시하는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뉴스가 얼마 전 나왔다. 국내 굴지의 안마의자 제조사인 A사의 콜센터 직원으로 추정되는 이가 직장인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 올린 글이 그것이다.

지난 4월에 올라온 글이 최근 인터넷을 통해 퍼지면서 대중들이 알게 된 내용이었는데 그에 따르면 12명의 직원이 하루 4천통의 콜을 받고 있다고. 그나마 실제 투입자는 8명에 불과해 극심한 업무난에 시달리고 있다는 게 그의 말이었다.

또한 기나긴 대기시간에 지친 고객들이 갖은 항의와 폭설을 시전하는 통에 그야말로 생지옥을 경험한다는 것과 함께 40%의 응답률을 80%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1인당 25만원에 불과한 포상금을 준다는 불가능한 미션에 시달리고 있음을 토로하기도 했다. 결국 그는 퇴사할 것이라며 회사의 개선을 촉구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내용이었다.


◆ 콜 수 맞추기 위해 화장실 못가...잠깐 자리 비울 때도 보고해야


당연히 논란이 불거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자 결국 업체 측에서 해명에 나서며 사실 관계의 오해를 바로 잡았다. 해명에 따르면 실제론 30명 이상의 인원이 동 업무에 투입되고 있으며 더불어 상담원 증원을 결정해 추진하고 있다는 내용까지 더해졌지만 그게 충분한 건 아니었다.

설사 그 해명이 맞다고 해도 절대적으로 과중한 업무량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게 사실이니까. 또한 암묵적인 실적 채근이나 고객 응대 횟수 증량 강요 등도 콜센터 업계 전반에 널리 알려진 사실임을 감안한다면 A사라고 예외일 수 없다는 것도 명확하다.

앞서 제시한 영화 속 내용이 현실에서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는 의미다. 영화를 본 이들이 가장 충격적으로 받아들인 기저귀 착용 상태에서의 근무 역시 허구가 아니다. 자신에게 할당된 콜수를 맞추기 위해서는 화장실 방문마저도 미루는 것이 상식 아닌 상식이 되어버린 곳이 바로 콜센터이기 때문. 콜센터 상담사들의 직업병 중 하나가 방광염이라는 건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이다. 왜일까. 

콜센터 상담사들은 업무 특성상 자리를 비울 때는 반드시 보고절차를 거쳐야 한다. 화장실 가는 것 역시 자리를 비우는 일인 탓에 당연히 그에 해당된다. 이런 번거로움 탓에 상당수 상담사들이 자유롭게 화장실 가기를 꺼려하고 이는 결국 방광염을 자초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콜센터 종사자 중 상당수가 기저귀 착용을 경험했음을 증언하는 사례도 여러 건 보고된 바 있음이 그 증거다. 

 [사진=프리픽]
 [사진=프리픽]

그러나 정작 콜센터 종사자를 괴롭히는 것은 이런 육체적 고통이 전부는 아니다.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등장할 정도로 불만에 찬 고객들의 갖은 폭언과 협박, 이와 함께 고용불안과 인센티브 제시를 빌미로 한 회사의 압박 등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이 그들을 괴롭히는 가장 큰 고통이기 때문이다. 

콜센터 직원들은 우스갯소리로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이야기를 한다.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생겼어도 여전히 그들을 둘러싼 직접적인 주먹(?) 세례는 여전하다는 의미다. 이렇듯 콜센터 상담사들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열악한 현실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콜센터 상담사들의 열악한 처우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개선이 어떻고 대책이 저쩌고 하지만 아직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잊을만 하면 터져 나오는 콜센터 파업 뉴스들이 그 증거다.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답답한 현실을 견디다 못해 자신들의 의사 관철을 위해 거리로 나설 정도인 것. 이 상황을 계속 이어나갈 수는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그들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비난의 화살을 날릴 때에도 묵묵히 맡은 바 소임을 다해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힘들고 슬픈 일이 있어도 고객의 목소리에 미소로 화답하는 일을 해주는 그네들이 없다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불편해질 지는 너무도 자명하지 않을까. 

기저귀는 아기들의 것이다. 이건 누구나가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 상식이다. 적어도 우리가 사는 이 사회는 상식이 통용되는 사회여야 하지 않을까. 일 때문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기저귀를 차는 어른들이 생기는 사회라니. 무슨 핑계를 갖다 붙여도 그건 비상식적이다. 비상식이 넘쳐나는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건 너무 암울하지 않을까. 

손영남 칼럼니스트
손영남 칼럼니스트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뉴스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