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국수와 수제비가 들어있는 칼제비 [사진=정다운국수]
칼국수와 수제비가 들어있는 칼제비 [사진=정다운국수]

오늘도 지각은 불가피해 보인다. 내가 타야 할 버스와 지하철이 단 1초의 어긋남도 없이 기다렸다는 듯 나를 맞아주지 않는 한 지각은 피할 수 없는 일이 분명해 보이는 이 시점에서도 난 스스로를 탓하느라 금쪽같은 시간을 소모하고 있는 중이다.

옷 때문이었다. 부쩍 추워진 날씨를 생각해 어제 저녁에 꺼내놓은 몇 벌의 겨울 의상을 놓고 고민하느라 정해진 데드라인을 놓쳐버린 것. 옷 고르는 시간만 줄였어도 피할 수 있던 지각이었다.

아니 할 말로 발가벗고 거리에 나서지 않는 이상, 그 누구도 내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 분명한 중년의 여자 아니든가. 어떤 옷을 입든 달라질 건 없는 상황이었다. 나도 안다.

그럼에도 그 몇 벌의 옷을 놓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느라 지각을 자초하게 된 현 상황을 두고 새삼 나의 그 지독한 결정 장애를 탓할 밖에. 그나마 다행인 건 오늘의 만남이 나의 결정 장애를 너그러이 용인해 줄 수 있는 자리였다는 정도랄까. 그렇게 약속장소에 나갔다. 역시나 지각이었다. 

“오늘은 왜 늦었어? 이유라도 알자.”

“그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닌데 굳이 그걸 왜 물어. 그냥 그런가 보다 해. 앉아. 니 메뉴는 언니들이 알아서 시켜놓았어.”

생각보다 덜한 친구들의 채근도 고마웠지만 그보다 더 고마웠던 건 내 메뉴를 알아서 시켜놓았단 거였다. 나를 기다렸다 음식주문을 넣기라도 했다면 또 그걸로 족히 10여분은 날아갈 게 분명했으니까.

보나마나 칼국수와 수제비, 감자전을 놓고 끝없는 고민을 이어갔을 거였다. 그런 고민을 단박에 해결해준 고마운 녀석들과 잠시 수다를 떨고 있자니 금세 음식이 나왔다. 처음부터 친구들은 내 지각을 예견하고 있었고 더불어 사전 메뉴 주문 역시 필수적이란 사실을 알고 있던 탓이었다. 덕분에 출출해진 속을 효율적으로 달랠 수 있었다. 

“너 보나마나 칼국수도 먹고 싶고 수제비도 먹고 싶다고 그럴 거였으니까. 내 말 맞지?”

사실이었다. 칼국수를 먹으면 수제비가 그리웠을 테고 그렇다고 수제비를 시키면 다른 손님들이 먹고 있는 칼국수의 면발이 나를 유혹할 게 뻔했다. 그런 나를 위한 친구들의 선택은 칼제비였다. 칼제비라니. 이보다 더 신박한 메뉴가 또 있을까.

칼국수를 먹으면 수제비가 그리웠을 테고

수제비를 시키면 칼국수의 면발이 나를 유혹할 게 뻔했다.

나 같은 결정 장애자들에게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음식이었다. 물론 칼제비 못지않은 짬짜면이라는 강자가 있지만 요즘처럼 찬바람이 뼛속을 시리게 만드는 시점에서는 칼제비가 비교우위를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비어버린 위장을 메워주고 얼어버린 몸을 덥혀주는 칼제비는 먹는 내내 나를 행복함에 치를 떨게 만들기 충분했다. 도대체 이런 음식을 만든 사람은 누구일까. 칼제비가 그렇고 짬짜면이 또 그렇다. 낙곱새는 또 어떤가? 홍어삼합에 관자삼합은 들먹일 필요도 없다.

하나를 시키면 다른 하나가 그리워지는 갈증을 속 시원히 풀어주는 이런 음식들을 만든 사람들은 내 기준, 노벨 평화상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나와 비슷한 결정 장애자들은 지금 내 말이 무슨 뜻인지 너무도 잘 이해하리라 믿는다. 그게 너무 궁금해서 인터넷을 뒤져본 적도 있을 정도였다면 말 다했지 뭐. 아쉽게도 누가 이 음식들의 창시자인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혹시라도 이 글을 보신다면 제가 미치도록 감사해 한다는 것만은 알아주길 바란다.

 짜장면과 짬뽕이 같이 들어가 있는 짬짜면 [사진=면을 사랑하는 사람들]
 짜장면과 짬뽕이 같이 들어가 있는 짬짜면 [사진=면을 사랑하는 사람들]

짬짜면과 칼제비가 태어난 이유를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생각한다. 아마 나 같은 결정 장애자들의 곤란을 보던 맘씨 좋은 사장님들이 그런 이들을 측은하게 느꼈을 것이고 그래서 그런 마음이 발현된 것이 이런 퓨전 음식들이 아닐까라고. 그건 바로 측은지심이었을 것이다.

누군가를 안타깝게 생각하는 마음 말이다. 그게 아니라면 베풂의 실천 정도라고 해도 좋을 테고. 그게 뭐였건 덕분에 나 같은 결정 장애자들의 수고로움을 덜어낸 건 사실 아닌가. 이러니 내가 고마워할 수밖에.

친구들의 배려 깃들인 칼제비를 먹고 나서 이어진 카페에서의 주문 역시 친구들의 도움으로 손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맘 같아서는 커피가 아닌 술이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후속 일정이 존재했던 까닭에 낮술의 유혹을 간신히 뿌리칠 수 있었다.

일말의 아쉬움이 남긴 했지만 칼제비가 안겨준 포만감이 그를 덮고도 남았다. 그렇게 친구들과 헤어진 후, 나머지 일정을 처리하고 오는 길, 다시금 위장에서 신호가 울리기 시작했다.

칼제비를 만든 사장님의 측은지심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장애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그들을 약자로 분류한다는 건

편견에 가깝지만...

이놈의 위장은 도통 만족을 모르는 놈이 분명했다. 칼제비를 공급한 게 불과 너댓 시간 전이었는데 그새를 못 참고 또 뭔가를 넣어달라고 앙탈을 부리는 걸 보면 말이다. 그래도 어쩌랴. 저녁은 무얼 먹을까 고민하던 찰라, 조용하던 지하철 내부를 뒤덮는 기관사의 멘트가 들려왔다.

내용인즉 내일 오전 8시부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 출근 시위가 예정되어 있어 운행에 차질을 빚을 수 있으니 지하철 이용에 주의를 기울여달라는 것이었다. 한 몇 달 잠잠한가 싶더니 또 시위가 이어지는 모양이었다. 그로 인한 불편을 몸소 겪어본 터라 걱정이 앞서는 건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을 거란 생각을 하던 그때였다.

경로석에 앉아있던 할아버지와 할머니 한 분이 혀를 차며 그들의 시위를 욕하고 있었던 것. 그들의 시위로 적잖은 불편을 겪어보신 때문인 걸까. 그러나 그걸 감안한다 하더라도 성토하는 목소리의 톤이 너무 심했었다.

 [일러스트=프리픽]
 [일러스트=프리픽]

정말이지 글로 옮기기 힘든 수준이었다. 처음 운을 띄운 ‘병신 xx들이 뭐 하는 짓이냐’는 이야기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솔직히 입이 간질거리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뭐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랬다가는 진짜 큰 싸움이 나지 싶어서다. 

잘은 모르지만 그들의 시위 목적이 장애인들의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기 위한 것이란 것 정도는 안다. 그와 관련된 조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벌어지는 시위라는 것도 알고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야기되는 일반 시민들의 불편이 부정적인 여론 형성에 일조하고 있다는 것도 안다.

경로석에 앉은 노인들의 입에서 육두문자를 토하게 만든 이유 역시 그것일 테고. 그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아쉬움만은 어쩔 수 없었다. 조금 더 너그러이 바라봐줄 순 없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누구나 알다시피 생각은 자유다. 그를 반영하는 행동 역시 매한가지. 자신의 불편을 용납할 수 없다는 노인들의 표현 방식 역시 그 관점에서 본다면 나를 위시한 타인들이 비난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아쉽다는 건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하다 느껴서가 아닐까 싶다.

그분들에게 칼제비를 만든 사장님의 측은지심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장애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그들을 약자로 분류한다는 건 편견에 가깝지만 최소한 이동권이라는 측면을 놓고만 본다면 그들이 약자인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반면 우리 같은 일반인들은 강자일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러니 강자의 입장에서 좀 더 약자를 배려하는 모양새를 보여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봄, 여름, 가을을 쉼 없이 내달린 계절이 어느덧 겨울에 다다른 지금, 어느 때보다 베풂의 가치가 소중해지는 시즌이다. 딸랑거리는 종소리가 곁들여진 구세군 냄비를 찾아보기가 갈수록 힘들어지는 요즘, 다시 한 번 베풂의 미덕을 실천해보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해본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저녁은 짬짜면으로 통일, 콜? 

김나현 칼럼니스트
김나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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