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동보일러의 1999년 TV CF 장면 [사진=경동나비엔]
 경동보일러의 1999년 TV CF 장면 [사진=경동나비엔]

구한말 우리나라에는 빈대가 많았다. 당시 외국 선교사들의 글을 보면 빈대 때문에 고생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해충 전문가에 따르면 그렇게 많은 빈대가 없어진 것은 1960년대라고 한다.

빈대가 없어진 이유는 역시 ‘새마을 운동’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예를 들면 ‘위생이 개선 됐기 때문’, ‘넉넉해진 삶’ 등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다.

그렇게 퇴치하기 힘들다는 빈대가 없어진 결정적인 이유는 연탄 때문이었다. 구들의 틈 사이로 올라오는 사람도 죽어가는 연탄가스에 빈대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과거 따뜻한 바닥을 만들기 위해 ‘온돌’ 아래로 나무나 숯을 땠다. 일본이 벌인 2차 세계대전, 그리고 한국전쟁은 산에 있는 나무들이 사라지고, 더 이상 땔 수 있는 것들이 없어졌을 때 연탄이 연료가 되었다.

그런데 그 연탄이 살살 피어오르는 알딸딸한 가스 때문에 간혹 사람들이 죽긴 했지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빈대가 확실하게 사라진 것이다.

최근 유튜브에 외국인들이 온돌에 푹 빠져 있다는 영상이 많이 올라온다. 필자의 관심사 때문에 그런 영상만 보이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외국인 들이 온돌이나 찜질방의 뜨거움을 경험하면 푹 빠진다고 한다. 그런데 그 서양인들은 온돌을 데우는 보일러를 미국에서 개발한 것은 전혀 모르는 것 같다. 

물론 미국의 유명 건축가가 온돌을 경험하고 개발한 것인지만 그래도 원조는 미국 위스콘신에 있다. 지금 우리가 사용 중인 따뜻한 물을 이용해 바닥 난방을 보일러는 구겐하임 미술관, 지지하는 기둥이 없는 낙수장으로 유명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1867~1959)의 작품이다.

난방에 많은 돈을 들이고 싶지 않았던 제이콥스라는 사람이 프랭크에게 의뢰를 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제이콥스 하우스의 바닥난방이고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보일러의 최초 사례다.

“한국 난방법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소? 주택에 이런 난방법을 시도한 최초의 미국인이 되고 싶지 않소?” 

 보일러 이미지 [일러스트=프리픽]
 보일러 이미지 [일러스트=프리픽]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건축주 제이콥스를 설득했던 이야기다. 한국이 아닌 해외 최초의 바닥난방은 건축은 제이콥스 하우스의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였고 기념비적인 사건이 될 줄도 몰랐을 것이다.

그로부터 50여년 후 1991년 한국 텔레비젼에는 이런 광고가 나온다.

"여보, 아버님 댁에 보일러 놔 드려야겠어요."

이 광고 카피는 많은 개그맨들이 패로디할 정도로 유명했다. 하지만 그 이면을 보면 1990년까지도 보일러 보급이 다 안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도시가 아닌 곳에 구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는 의미다.

당시 시골에서는 1960년대 수목사업의 결과로 나무가 많아져 구들을 데울 때, 연탄대신 나무를 사용할 수 있었다. 다행히 연탄 때문에 사람이 죽어가는 일은 줄었지만 여전히 추웠고 불편했다는 의미다. 그 상징이 ‘고향의 아버님 댁’인데 그 광고가 히트를 했으니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프랭크는 1916년 일본 제국호텔 건축 때문에 일본에서 잠시 생활했다. 당시 건축을 의뢰한 건축주는 취미삼아 경복궁 자선당을 뜯어 자기집에 가져다 놓고 ‘조선관’이라 이름을 붙였다. 겨울철 추위에 떨던 프랭크가 ‘조선관’에 감동을 했다는 일화가 그의 자서전에 나온다. 

1937년 그 경험을 살린 제이콥스 하우스 바닥 난방이 시작되고, 1980년 유럽에서 바닥난방 시공표준안이 개발된다. 그리고 1991년 한국의 텔레비젼에 ‘아버님 댁에 보일러 놔 드려야겠어요’라는 광고가 나오고 1996년 ‘조선관’의 주춧돌이 한국으로 돌아와 원래의 자리에 복원된다. 2023년 지금, 바닥난방에 몸을 굽고 있는 서양인들의 영상은 유튜브에서 수십만 조회수를 올리고 있다.

빈대 죽은 자리에서 사람과 귀뚜라미를 더이상 죽지 않게 하는, 구들을 데우는 보일러. 유명한 외국인이 세계에 알려서 아쉬운 감이 없진 않지만 명품 맞다.

※김길 / '전화기 디자이너'가 되려다 초콜릿바와 같은 거 외엔 할 디자인이 없다는 것을 알고 포기. 현재 인터넷기업, 교육기업 전략실 경험을 살려 사업컨설턴트로 활동 중.
※김길 / '전화기 디자이너'가 되려다 초콜릿바와 같은 거 외엔 할 디자인이 없다는 것을 알고 포기. 현재 인터넷기업, 교육기업 전략실 경험을 살려 사업컨설턴트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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