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행복하게 해주는 '일상 명품'

  미국의 한 복권판매점 매장 모습. [사진=김길]
  미국의 한 복권판매점 매장 모습. [사진=김길]

‘일상 명품의 주제가 복권이라고? 그 많은 사람에게 헛된 꿈을 주는 복권이라고?’

이런 소리를 할지 모르겠다.

복권하면 노벨문학상 수상작 마르께스의 1967년 소설 <백년의 고독>이 생각난다. 소설속 주인공 아우렐리아노와 코테스라는 여자 이야기 때문이다. 

코테스는 동네에서 복권 장사로 소소하게 돈을 벌고 있었다. 군인이었던 아우렐리아노에 빠져 정부가 된다. 그녀의 정부 덕에 복권 사업은 지인대상 구멍가게 사업에서 마을 사업으로 확장된다.

그리고 아우렐리아노와 코테스가 함께 살던 시절, 집안의 모든 가축이 이유 없이 다산을 해서 큰 부자가 된다. 부자가 되어 해보고 싶었던 거 다하며 사는데 갑자기 거대한 홍수가 나서 아우렐리아노와 코테스의 전 재산이 날아간다.

설상가상으로 새끼를 잘 낳던 가축들은 예전처럼 평범한 가축으로 돌아간다. 모든 것을 잃었다 생각했던 그 즈음 아우렐리아노는 원인 모를 병까지 얻어 시한부 인생을 시작한다.

사람들은 떠나고 가장으로서 힘든 책임을 떠 안은 주인공 아우렐리아노. 그는 마지막으로 온 힘을 모아 막내딸 우르슐라를 유럽으로 유학보내기 위해 별다른 기술이 필요치 않은 복권 사업에 다시 집중한다. 

 [일러스트=프리픽. 기사 내용과 무관]
 [일러스트=프리픽. 기사 내용과 무관]

50년도 넘은 소설이지만 ‘복권 사업’에 대한 인상이 강해 다시 기억에서 꺼냈다. ‘복권 사업’은 우리나라에서 사행성 사업으로 분류돼서 아무나 쉽게 할 수 없다. 하지만 소설속 저 나라에서는 누구나 해도 문제가 안되는 사업이라는 점이 신기했기 때문이다.

공정하기만 하면 되는 쉬운 아이템, 규모만 되면 이익이 무조건 생기고 사는 사람도 즐거운 사업. 이권이 확실해서 싸움도 많았을 것 같은데 소설 속 아우렐리아노 직업이 군인이어서 가능했었는지 모르겠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것은 주인공이 일이 잘 풀리기 시작할 때 근간이 되었던 것이 복권사업이었다는 점이다. '복권 사업의 수익으로 축산업을 했는데 다산의 신이 찾아와 큰 부를 일궜다. 그런데 그 부는 홍수로 모두 잃어버린다. 그래서 빈털털이 주인공이 아이의 장래를 위해 마음잡고 별다른 기술 없는 주인공이 다시 시작한 사업이 복권이었다’는 부분이 옛날 우리나라가 가난했을 때 복권은 확실하게 했던 기억이 나기 때문이다.

1970년대말 80년대 초 '주택복권'이란 것이 있었다. 매주 토요일 저녁 3개밖에 없는 방송에서 전국민을 관객으로 두고 "준비하시고, 쏘세요"라는 구호와 함께 화살을 쐈다.

첫 화살이 1/10, 다음 화살이 1/10, 저 멀리에서도 탄식이 들려왔고 1/100 확률의 화살이 발사되면 대부분은 ‘에이’ 그러며 일상으로 돌아갔다. 1등에 당첨되면 상금이 3000만원 이었다. 기억으로는 강남 아파트 몇채를 살 수 있는 금액이었다. 소설을 볼 때 그 때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복권 방송을 보던 일들이 오버랩 되었다.

또 하나, 오래전 필자가 다니던 회사에서 수익이 별로 없던 싸이월드를 인수했을 때의 일이다. 싸이월드의 가상화폐 ‘도토리’라는 것으로 가장 많이 판매되던 것은 초기화면 왼쪽 메뉴에 있던 복권이었다.

도토리로 복권을 사면 바로 확인 할 수 있었다. 즉석 복권을 긁듯 확인하면, 몇개의 도토리를 받을 수 있었다. 물론 대부분 꽝이거나 소량의 도토리를 제공할 뿐이었다. 잘 나오지 않았지만 1등은 1만개 정도로 기억한다.

당시 미니홈피 스킨이나 뮤직이 활성화되지 않던 시기라 도토리로 쓸게 별로 없었다. 쌓여가는 도토리를 그렇게 소진하도록 유도했다. 직원용으로 나온 도토리 대부분을 그렇게 썼기에 기억이 난다. 

 [일러스트=프리픽. 기사 내용과 무관]
 [일러스트=프리픽. 기사 내용과 무관]

그런데 얼마 후 대박이 났다. 도토리가 매일 3억이상 판매되었다. 도토리 인기는 치솟았고, 도토리 복권은 ‘사행성 게임’으로 금지시켰다. 그리고 도토리는 전자 화폐로 분류되어 별도로 관리했다. 몇년 후 싸이월드가 힘들어졌을 때 복권 사업을 다시 시작할 수는 없었다. 이 이야기를 하려 위 소설이야기를 꺼낸 건 아닌데… 이야기가 샜다.

일이 안 풀릴 때 안되는 줄 알면서도 남은 돈을 털어 복권을 산다. 누가 복권을 주며 되면 나누자 하는데, 안될 것이 뻔한데도 기분이 좋다. 직장에서 상사와 한판 붙기라도 하면 여지없이 복권을 산다. 살고 있는 집값이 올라 샀던 가격이 두 배가 된 것을 보며 기분이 흐뭇할 때도 복권을 산다. 

당첨된 적은 없지만 주변에서도 당첨됐다는 사람을 거의 못 봤지만 헛된 것 인줄 알면서도 사게 된다. ‘희망’했던 게 평소의 바람처럼 쉽게 적이 없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희망을 놓지 않으려는 내 마음 같아 그런 건지 또 사게 된다. 

‘잠시’ 뿐이라 할지라도 싼값에 이렇게 기쁨을 주고 설렘을 주었던 물건이 또 있는지 생각해 본다. 소설 속에 나오는 지구 반대편 콜롬비아의 산속에서도, 50년 후 첨단 과학의 신세계라 불리는 동북아 서울에서도 복권은 ‘희망’이라 불리는 감정에 ‘복권’이라는 이름을 붙인 증서로 판매되고 있다. 

악용하는 사람들이 문제지 ‘복권’은 죄가 없다. 수많은 사람을 기쁘게 해 주는 명품 맞다.

(사족) 생각해 보니 장래의 ‘불행’을 전제로 ‘보험’이라는 증서는 모두 사야 한다고 권장하고 안사면 안된다고 법으로 정해 놓고 있다. ‘희망’은 아무나 팔면 안 되지만 ‘불행 대비’는 능력만 되면 누구나 팔 수 있다. ‘희망’은 사행(射倖)이 될 수 있지만 ‘불행’은 평범하기 때문에 그럴까? 복권을 예찬하다 살짝 비뚤어진 것 같다. 

※김길 / '전화기 디자이너'가 되려다 초콜릿바와 같은 거 외엔 할 디자인이 없다는 것을 알고 포기. 현재 인터넷기업, 교육기업 전략실 경험을 살려 사업컨설턴트로 활동 중.
※김길 / '전화기 디자이너'가 되려다 초콜릿바와 같은 거 외엔 할 디자인이 없다는 것을 알고 포기. 현재 인터넷기업, 교육기업 전략실 경험을 살려 사업컨설턴트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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