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서커스 CEO 랄리베르테의 '블루오션' 전략
연극같은 '스토리'에 뮤지컬, 체조, 발레, 패션쇼 접목

 태양의 서커스 공연 모습 [사진=픽사베이]
 태양의 서커스 공연 모습 [사진=픽사베이]

흔히 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CEO라고 하면 해외 MBA를 나왔거나 유수의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겠거니 하는 선입견을 가지기 일쑤다. 그도 그럴 게 충분한 경영지식과 이론이 바탕에 깔린 경영자들일수록 실제 기업환경에서도 제대로 된 ‘실력’을 뽐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도 옛말이 되는 듯하다. 경영환경이 과거에 비해 복잡하고 다양해지면서 이제는 더 이상 CEO들의 전문지식과 배경에만 의지하는 시대는 지났다. 오히려 CEO의 머리 속에 잠재되어 있는 ‘창의력(아이디어)’이 MBA에서 배운 지식보다 경쟁우위에 서게 되는 경우가 많다. 

다음에 설명하는 기 랄리베르테는 작은 생각의 차이로 세계 최고의 서커스단 CEO가 된 케이스다.   

‘서커스’ 하면 으레 대형 천막이 드리워진 공연장에서 우스꽝스런 광대가 나와 관객들을 웃기고 곡예사들의 화려한 곡예나 코끼리의 공 굴리기 쇼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랄리베르테의 서커스단에는 코끼리가 없다. 비단 코끼리 뿐 아니라 원숭이나 여타 동물 한 마리도 찾아보려야 찾아 볼 수가 없다. 


◆ 서커스는 이래야 한다?...동물 '빼고' 스토리 '넣고'


그런데도 관객들은 그의 서커스를 보기 위해 비싼 돈을 마다하지 않고 공연장을 가득 메운다. 연간 매출 1조원대가 넘고 전 세계 5000만명의 관객을 보유한 세계 최대의 서커스단 <태양의 서커스(서큐 드 솔레이: Cirque du Soleil)> 이야기다.

이 서커스의 가장 큰 특징은 동물이 없어졌고 연극과 뮤지컬을 보듯 탄탄한 줄거리 속에서 배우들의 감칠맛 나는 연기가 있고 화려한 무대와 라이브 음악이 더해졌다는 점이다.  

캐나다의 길거리 서커스단으로 출발한 <태양의 서커스>는 미국 현지 상설공연 외에 세계 130여 개 도시를 돌며 빽빽한 순회공연을 소화했는데 이 같은 넓은 활동반경으로 에미상, 드라마데스크상, 에이스상, 펠릭스상 등을 받았고 2004년에는 창시자이자 CEO인 랄리베르테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500대 갑부에도 뽑혔다. 

도대체 랄리베르테의 <태양의 서커스>는 무엇이 달랐기 때문일까. 

경영적 관점에서 볼 때 <태양의 서커스>는 ‘블루오션’의 대명사로 일컬어진다. 침체일로에 있던 기존 서커스 시장의 영역을 벗어나 새로운 방식의 서커스를 추구한 때문이다. 

무엇보다 “서커스는 이래야 한다”는 기존 관행을 철저히 무너뜨렸다. 서커스의 재미와 스릴은 살리면서도 연극처럼 스토리를 가져 지적 세련미와 풍부한 예술성을 서커스에 담아낸 것이다. 특히 클래식 콘서트나 뮤지컬, 연극, 체조경기, 발레, 패션쇼 등이 무대 위에서 한 줄거리를 통해 이어지도록 구성한 것에 관객들은 매료당한다.  

이를 위해 랄리베르테는 광대나 동물 묘기쇼 등 돈이 들어가는 요소를 과감하게 줄이고 대신 연극적인 요소를 도입해 테마와 이야기가 있는 공연을 꾸몄다. 여기에 브로드웨이 뮤지컬처럼 예술적인 주제가와 음악도 준비했다. 

태양의 서커스 공연 모습 [사진=픽사베이]
태양의 서커스 공연 모습 [사진=픽사베이]

음악의 경우, 기존 서커스단이 반주 테이프(또는 CD)를 통해 녹음된 음악을 틀어준 것과 달리, 밴드가 무대에 자리잡고 2시간 공연 내내 보컬을 겸하며 끊임없이 라이브 음악을 관객들에게 들려주기도 한다.  

<태양의 서커스>가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세계 최대의 ‘인재풀’을 보유했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서커스 인재들은 다 모인 ‘드림팀’을 운영했던 것. 1984년 설립 당시만 해도 73명이던 단원 수는 2008년 배우 700명, 스태프 2600명 등 총 3300명을 넘어섰고 체조 선수 출신 연기자도 수백 명에 달했다. 의상과 소품 담당 디자이너만도 300여명, 여기에 염색 기술자, 목수, 제화 기술자 등의 기술 인력도 상당수였다.

특히 ‘서커스의 꽃’이라 불리는 아크로배츠(곡예사)에는 유명 기계체조 선수들이 다 등록됐다. 미국, 중국, 브라질 등을 비롯해 체조기술이 뛰어나기로 유명한 러시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에서 올림픽 대표급 선수들을 영입해 동종업계 최고의 대우를 해줬기 때문이다. 올림픽 메달리스트만 17명이며 각국의 국립발레단급 발레리나도 수십 명을 보유했을 정도다. 


◆ 올림픽 시즌, 스카우트 투입... '예술 서커스' 주연들 대거 영입


랄리베르테의 인재양성 의지는 별도의 인재 발굴팀을 만들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페스티벌이나 스포츠 현장을 직접 돌아다니며 인재를 스카우트한 사례에서 잘 드러난다. 특히 올림픽 시즌이 <태양의 서커스> 스카우트가 가장 바빠지는 시기였다고 하니, 다른 서커스 업계로부터는 ‘인재 독점’이라는 비난까지 받아야 했다.    

랄리베르테는 그러나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직접 인재를 양성하는 ‘서커스 스쿨(National Circus school of Montreal)’까지 운영하며 자신만의 인재정책을 고수했다. 

여기에 <태양의 서커스>는 상품화전략 면에 있어서도 철저히 차별화를 추구했다. 좋은 상품을 만들어야 소비자가 찾듯 다양한 서커스 상품(공연내용)을 내놓으며 ‘관객을 찾아가는 서커스단’이 아닌 ‘관객을 기다리는 서커스단’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상설’과 ‘순회(투어)’의 두 가지 방식으로 공연을 운영했는데 뮤지컬과 달리 절대로 라이선스를 주는 법이 없었다. 즉 <태양의 서커스> 공연을 보고 싶으면 관객은 상설공연장을 찾거나 투어공연을 기다려야 한다는 식이다.

랄리베르테는 남들이 생각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 작은 변화를 준 것만으로도 세계 최고의 ‘갑부’ 반열에 올랐다. 

‘서커스를 뮤지컬처럼 만들어 보자!’. 이 작은 소망이 그를 세계에서 주목하는 CEO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경영자들이 오늘날 처한 변화무쌍한 경영현실 속에서 다른 기업과의 차별성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코로나 위기도 넘긴 태양의 서커스 

연 매출 10억 달러, 수익률 20%를 자랑하며 매년 1500만명의 관객을 자랑하던 <태양의 서커스>도 코로나 위기를 이겨내지 못했다.  

2020년 3월 전세계 44곳서 예정된 <태양의 서커스> 공연이 모두 중단됐다. 연 매출 10억 달러에서 제로로 떨어졌으며 한때 5000명에 달하던 직원들은 95%가 해고를 당했다. 

결국 2020년 7월 <태양의 서커스>는 파산보호신청을 했고 이 소식이 전 세계에 전해지자 공연계는 충격에 빠졌다. 하지만 그해 11월 <태양의 서커스>는 9억 달러의 대출을 인수하고 3억 7500만달러라는 거액의 신규 투자를 결정한 기존 채권단에게 인수됐다. 

김진욱 뉴스캔 발행인
김진욱 뉴스캔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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