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을 대표하는 리앤펑은 연 매출액 20조원이 넘는 기업이지만 자체적으로 보유한 공장이 하나도 없다 .[사진=리앤펑 홈페이지]   
 홍콩을 대표하는 리앤펑은 연 매출액 20조원이 넘는 기업이지만 자체적으로 보유한 공장이 하나도 없다 .[사진=리앤펑 홈페이지]   

최고의 기업에는 돈이든 인재든 언제나 ‘최고’나 ‘최대’의 수식어가 뒤따른다. 기업규모가 클수록 사업을 확장하거나 사업인프라를 갖추는 데에 투자를 아끼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업인프라를 어떻게 구성할 것이며 신규사업을 적재적소에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 등은 경영자의 선택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사업성공 여부에 따라 기업의 체질이 달라질 수도 있으며 이는 곧, 향후 기업성패의 열쇠가 되기도 한다.   

홍콩을 대표하는 기업 중에 리앤펑(Li & Fung)이란 회사가 있다. 의류와 장난감, 액세서리 등의 소비재를 생산하고 수출하는 이 회사는 연 매출액만 우리 돈으로 20조원이 넘는다.   

유수의 경영 및 경제 미디어에서는 하나같이 리앤펑을 글로벌 ‘파워기업’으로 평가한다. 그도 그럴 게 <비즈니스위크>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회사 29개 중 하나로 선정했고, <포브스> 역시 아시아에서 가장 놀랄 만한 기업 50위 중 하나로 리앤펑을 꼽았다.


◆ 리앤펑, 공장 하나 없어도 연 매출 20조...'글로벌 영향력 기업' 평가


전세계는 왜 리앤펑을 영향력있는 글로벌기업으로 보고 있는 걸까. 많은 경영전문가들은 리앤펑이 세계 유수의 기업들과는 다른 ‘독특한’ 비즈니스모델을 채택한 것에 관심을 기울인다.    

리앤펑은 의류전문 소비재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에 단 하나의 공장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 여기에 단 한 명의 재봉사도 고용하지 않는다. ‘큰 덩치’의 기업으로선 다소 의외의 선택이다. 

그러면서도 매년 20억벌 이상의 의류를 생산할 만큼 생산성은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구체적인 업무 프로세스를 살펴보면 이렇다.   

미국의 한 의류회사가 리앤펑에 남성용 바지 20만벌을 주문했다고 치자. 이 경우 리앤펑은단추는 중국, 지퍼는 일본, 실은 파키스탄에 주문을 넣는다. 파키스탄에서 받은 실은 중국에 보내 직물로 짜서 염색하게 하고, 이 모든 것을 꿰매는 일은 방글라데시의 공장에 맡긴다. 고객이 빠른 배달을 원하기 때문에 세 개의 공장에서 나눠서 작업하는 것이다.

 리앤펑은 세계 40개국에 퍼져 있는 3만개의 공급업자(공장)와 200만명 이상의 공급업체 직원들을 움직인다. [사진=리앤펑 홈페이지]   
 리앤펑은 세계 40개국에 퍼져 있는 3만개의 공급업자(공장)와 200만명 이상의 공급업체 직원들을 움직인다. [사진=리앤펑 홈페이지]   

리앤펑은 이런 방식으로 전 세계 40개국에 퍼져 있는 3만개의 공급업자(공장)와 200만명 이상의 공급업체 직원들을 움직인다. 그럼에도 이 회사가 직접 월급을 주는 종업원은 단 1%도 안 된다. 

바로 이 부분에서 경영자의 철학적 지혜가 큰 역할을 한다. 경영자의 선택으로 인해 20조원에 가까운 매출을 자랑하는 글로벌기업이지만 공장을 하나도 가지지 않고서도 수많은 물량의 주문을 충분히 소화해낼 수 있는 성장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리앤펑은 원부자재부터 최종 제품 생산에 필요한 자사의 설비나 자산을 갖고 있지 않지만 이러한 과정을 원활히 할 수 있는 전 세계 제조, 유통 전문업체만 약 7500곳과 접촉할 수 있는 풀(Pool)을 갖고 있다. 이 회사가 관리하는 브랜드도 전 세계적으로 900개가 넘는다. 

리앤펑 그룹을 이끌고 있는 빅터 펑 회장은 자신을 네트워크를 통제하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라고 표현한다.   

“오늘날 경쟁이란 기업 대 기업이 아니라 팀 대 팀, 즉 하나의 공급사슬과 다른 공급사슬 간의 경쟁을 의미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지휘자의 역할이지요.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재능 있는 음악가들을 이끌어가는 것처럼, 강한 공급업자의 네트워크를 설계하고 이끌어가는 키잡이가 필요합니다.”

리앤펑의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과거의 기업처럼 자체 생산기지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보유 인력은 몇 명이나 되며 부동산은 어느 정도인지 등 ‘소유’에 대한 집중보다는 어떻게 회사를 운영하고 이끌어 나갈 것인가인 ‘경영’에 초점을 맞추는 기업이 성공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 환자가 '스스로' 재활하고 동창회까지 캐나다 쇼울다이스 병원


경영자들은 늘 ‘경쟁’과 싸워야 한다. 남들과 똑같은 사업구상을 하고 똑같은 방식으로 마케팅을 펼쳐서는 그들과의 경쟁에서 쉽게 우위를 점할 수 없다.

다음에 소개하는 캐나다의 쇼울다이스 병원은 그야말로 기업이 경쟁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 경영자들은 어떠한 생각과 지혜를 갖고 기업경영에 임해야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1945년에 세워진 쇼울다이스 병원은 탈장전문병원으로 유명하다. 토론토 대학에서 외과수술을 가르치던 에드워드 얼 쇼울다이스 박사가 설립했는데, 2차대전에 군의관으로 참전한 그는 많은 군인들이 탈장(hernia)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제대 후 ‘탈장전문 병원’을 짓겠다는 의지를 다져 이 병원을 설립했다.  

이후 쇼울다이스 병원은 60년이 넘게 세계 제일의 탈장전문 병원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특히 특별한 광고를 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입소문을 타면서 캐나다 전 지역은 물론, 미국이나 유럽에서까지 비행기를 타고 쇼울다이스를 찾는 환자들이 몰려들 정도다.

 탈장전문병원으로 유명한 캐나다의 쇼울다이스 병원. [사진=쇼율다이스 병원 홈페이지]
 탈장전문병원으로 유명한 캐나다의 쇼울다이스 병원. [사진=쇼율다이스 병원 홈페이지]

‘잘 나가는’ 병원이 되다보니 하버드비즈니스스쿨의 성공사례에까지 채택된 바도 있다.  

그런데 쇼울다이스 병원의 성공 전략을 짚어보면 다소 의아스러운 부분이 많다. 

일반적으로 환자는 철저히 돌보아야할 ‘보호대상자’로 생각하기 마련인데, 이 병원은  ‘스스로 병을 이겨내야 하는 주체자’로 환자를 대하고 있다. ‘환자가 알아서 병원을 찾아와야하고 수술 후에는 스스로 재활까지 다해야 한다’는 게 이 병원의 운영 기본 콘셉트다. 

우선 입원 과정부터가 여간 까다롭지 않다. 탈장질환 전문병원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탈장질환 환자만을 받는데 동맥경화, 치질, 정맥류 환자들은 받지 않으며 탈장환자라도 심장에 병이 있다든가 과거 1년 내에 수술을 받은 적이 있는 환자는 병원에서 입원 자체를 허락하지 않는다. 

예약 과정도 만만치 않다. 반경 75km(50마일)이내의 환자들은 병원에 직접 와서 필요한 개인적 검사를 받아야만 예약이 가능하다. 시간도 정해져있어 평일은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3시30분 사이, 토요일에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에만 접수를 받는다. 

혹여나 멀리 떨어져 있는 환자라면 의료정보질문서(Medical Information Questionnaire)와 보험정보서(Insurance Information)를 홈페이지에서 다운받아 작성한 후 팩스나 우편으로 보내야만 접수가 가능한데, 이 마저도 접수 후 처리되는 기간만 2~3일이 족히 걸린다.  

환자들의 본격적인 ‘고생(?)’은 수술하고 난 이후부터다. 수술을 받은 환자들은 스스로 걷는 연습을 해야 한다. 걸어다니는 것이 회복이 빠르다고 판단한 때문인데, 가급적이면 휠체어나 목발을 사용하지 않도록 환자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부축하거나 아니면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다른 층을 오가는 것도 잘 용납(?)하지 않는 게 이 병원만의 ‘특별함’이다.

대신 병원에서는 환자들의 재활을 돕기 위해 복도에는 융단을 깔고 계단의 경사는 완만하게 설계한데다 바깥 잔디밭으로 연결되는 산책로도 별도로 만들었다. 쇼울다이스 병원이 환자들을 ‘괴롭히는’ 것 중 또 하나는 일반 병실에서 TV를 볼 수 없다는 점. TV를 보기 위해선 각 층의 중앙에 마련된 ‘공용 TV’로만 봐야하며, 심지어 화장실 조차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은 병실도 대부분이다. 

이상만 보더라도 우리의 시각으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가는 병원이 바로 쇼울다이스다. 아픈 환자에게 TV도 마음놓게 보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화장실도 불편한 몸을 이끌고 직접 용변을 보라고 하는 점이 그렇다. 

 쇼율다이스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의 소감을 담은 영상들. [사진=쇼율다이스 병원 홈페이지]
 쇼율다이스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의 소감을 담은 영상들. [사진=쇼율다이스 병원 홈페이지]

하지만 쇼울다이스는 환자에게서 많은 것을 ‘가져가는’ 만큼 그들에게 고품격 의료서비스(수술 및 진료 의사인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를 똑같이 ‘되돌려’ 준다.

설립자인 쇼울다이스는 경쟁병원과의 또 다른 차별화 시도로 ‘환자간의 커뮤니케이션 형성’에도 주력하고 있다. 사회복귀 훈련을 받고 있는 사람이나 다른 사람들과 잘 사귀지 못하는 사람들은 아예 환자로 받지 않는다.  

특히 다른 병원에 비해 ‘환자공동체’가 결성되어 있어 환자에게 많은 업무를 부담시키는 방식으로 환자 스스로에게 병원에서 많은 경험을 하도록 한다. 취미가 같은 환자들 끼리 대화할 수 있도록 같은 병실에 입실하기도 한다. 카드가 취미라면 카드 병실에, 뜨게질이라면 뜨개질 병실, 이런 식이다. 

이러다 보니 매년 1월 캐나다의 토론터의 로얄 요크 호텔에는 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1500여명 이상의 환자들은 ‘환자동창회’를 연다고 한다. 그들은 입원기간동안에 서로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하며 충분히 알고 지낼 수 있는 시간을 통해 환자 동아리 의식을 만들어 나가고, 이것이 병원에 환자가 몰려드는 보이지 않는 가장 큰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쇼울다이스 병원이 ‘환자가 동창회를 여는 병원’으로 유명해진 것도 이 때문이다. 

리앤펑, 쇼울다이스에서 배우는 경영전략

▲리앤펑-네트워크 경영

-기업규모가 크다고 해서 반드시 모든 사업 인프라를 ‘크게’ 가져갈 필요는 없다. 알짜배기 경영이 더 중요하다

-공장이 없다? 제조업을 경영하면서 가장 큰 단점이 될 수 있지만, 이것이 또한 가장 큰 장점이 될 수도 있다. 공장이 없는 만큼 생산비를 줄여 아웃소싱 효과를 톡톡히 보라

-사업이든 개인사든 네트워크가 생명이다. ‘나 혼자만 잘 되면 된다’는 독불경영을 버리고 내 옆에 있는 회사와 그리고 우리 기업의 발전을 끄집어낼 수 있는 회사라면 어디든 손잡아라

-오늘날의 기업경영에서 더 이상 ‘소유’는 중요하지 않다. 무언가를 자꾸 가지려고 하지말고 지금 있는 단 하나의 사업부분이라도 확실하게 ‘경영’하는 것이 필요할 때다

▲쇼울다이스-차별화 경영

-환자는 더 이상 보호받아야할 대상이 아니다. 스스로 병을 이겨내고 주위의 가족들에게도 시름을 덜어내는 주체적인 존재여야 한다

-남들에게 의지하지 않을 때 나만의 힘과 자신감이 생긴다. 남들과 똑같은 병원 운영을 고수했었더라면 오늘날의 쇼울다이스 병원은 그저그런 평범한 병원에 불과했을 것이다

-환자라는 특수한 신분은 외로운 존재다. 주변의 같은 환자들과의 ‘공동체 의식’을 심어준 것은 이들 환자들에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큰 힘이 된다. 그리고 병원입장에서도 로열티 높은 환자들을 많이 배출하는 셈이 된다. 일거양득인 셈이다

김진욱 뉴스캔 발행인
김진욱 뉴스캔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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