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무드가 심어준 '공동체 의식'... 떠돌이 유태인을 강한 민족으로

  미국 뉴욕의 록펠러 센터 [사진=프리픽]
  미국 뉴욕의 록펠러 센터 [사진=프리픽]

세계에서 부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민족으로 유태인이 꼽힌다. 

그도 그럴 게 석유재벌 록펠러를 비롯해 세계 반도체 산업을 좌지우지하는 인텔의 앤드루그로브,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와 애플의 스티브 발머, 델 컴퓨터의 마이클 델, 오라클의 래리 애릭슨, 금융계의 황제 조지 소로스, 워렌 버핏 등 내로라하는 ‘세계 부자’들의 혈맥을 짚어보면 거의 유태인들이다.

비단 부자뿐이 아니다. 그들은 세계 인구의 0.25%에 불과하지만 전체 노벨상 수상자의 30%를, 경제학 관련 수상자들로는 41%, 미국 명문대학 교수의 60%도 차지하고 있다. 여기에 미국 월스트리트(Wall Street) 임직원의 30% 정도도 유태인인 것으로 전해진다. 

사실 월스트리트가 미국 금융의 중심지가 된 것은 유태인들과 인연이 깊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유태인들은 미국 정부가 만들어준 허드슨 강가의 정착촌에서 살았다. 그런데 강물이 범람하자 이를 막기 위해 일종의 ‘방수벽’인 옹벽을 설치했고, 이를 ‘월(Wall)’이라 불렀다. 이후 이곳에 자리 잡은 유태인들이 금융업을 일으켰고 오늘날의 월가가 됐다. 


◆ '부자 DNA' 많은 유태인... 철학이 없었다면


이런 유태인들이 지금은 전세계의 경제권을 비롯해 학계, 금융계 등 부와 명예를 두루 갖춘 몇 안 되는 민족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의 추를 수천 년 전으로 되돌려보면 그들은 나라 없이 떠도는 ‘전세계의 미아’에 불과했다. 기원전부터 치면 20세기에 이르기까지 거의 4000년 역사의 대부분을 나라없이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아온 떠돌이 민족이었다.

 마이크로소프츠 창업자 빌 게이츠 [사진=빌게이츠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츠 창업자 빌 게이츠 [사진=빌게이츠 페이스북]

‘기원전 2000년경 메소포타미아에서 팔레스티나로 이주한 헤브라이어를 말하는 사람들과 그 자손’을 일컫는 유태인들은 기원전 1000년경부터 예루살렘에 정착해 산 것도 잠시, 이후 바빌로니아를 비롯하여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등 수많은 민족에 의해 국토가 점령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특히 로마 제국 치하에서 벗어나고자 예루살렘을 떠난 이후부터는 민족 모두가 세계 곳곳으로 뿔뿔이 흩어져 생활하는 신세가 됐다. 

이후 그들의 삶은 비참해졌다. 서구 기독교 사회로부터 가는 곳마다 ‘예수를 죽인 민족’이라는 집단적인 증오를 받아야 했으며 이로 인한 박해는 물론, 그들이 거주하던 나라에서도 ‘제한된 구역’으로 밀려나 살아야 했다. 직업도 마음대로 가질 수가 없었던 민족이 바로 유태인들이다. 평탄한 삶을 살다가도 언제 다시 생의 터전이 송두리째 파괴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 그들은 살아왔다. 

그랬던 유태인들이 오늘날 전 세계의 경제권을 흔들만큼 ‘힘있는 민족’이 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그들의 정신, 즉 철학에 ‘해답’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급격한 환경 변화 속에서도 그들이 멸망하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던 데에는 그들에게 공동체 의식을 심어준 정신적인 철학서, 즉 ‘탈무드’(히브리어로 '가르치다'라는 뜻)와 유태교의 신념들이 힘이 되어 준 것이다. 유태인들에 있어 철학은 수천 년의 시간을 세상을 떠돌아 살면서도 ‘유태민족’이라는 공동체 의식을 심어주었고 민족을 하나로 만들어 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  

  소로스 펀드 매니지먼트의 조지 소로스 회장. [사진=조지 소로스 홈페이지]

“유태인은 탈무드를 만들었고 탈무드는 인류를 만들었다.”

탈무드는 역사책은 아니지만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며, 법전은 아니지만 법에 대해 말해주고 있다. 또 인명사전은 아니지만 많은 인물들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 백과사전은 아니지만 백과사전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한 민족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가장 큰 정신적 자산은 바로 철학이다.   


◆ 한 연구원의 집념이 만들어낸 세계의 히트상품 '스카치 테이프'


이제부터는 ‘스카치 테이프’ 얘기를 해보려 한다.

무엇인가 부러진 것들을 붙이거나 물에 젖지 않도록 종이 등에 ‘코팅’ 효과를 줄 때 요긴하게 쓰이는 스카치 테이프. 직장인은 물론 가정주부나 어린 아이 등 너나 할 것 없이 가장 흔히 사용하는 문구류 중 하나가 바로 스카치 테이프다.

생뚱맞는 사례지만 이 스카치 테이프의 탄생 전후를 잘 들여다보면 오늘날 경영자들이 건져내야할 교훈거리가 있다.

‘스카치 테이프’는 사무용품 회사로 유명한 3M에서 처음 만들었다. 지금이야 3M이 사무용품 전문회사로 유명하지만 1902년 5명의 사업가들이 모여 회사를 설립할 당시만 하더라도 광산에서 강옥이나 사금을 캔 후 연마기 같은 공업용 기계 제작업자들에게 판매하는 것을 주 업무로 삼았다. 그러던 이 회사의 주력업종이 사무용품으로 바뀌게 된 것은 결국 ‘스카치 테이프’에 의해서다.

1930년 9월 8일, 3M의 연구원인 리차드 드류(Richard Drew)가 스카치 테이프의 개발자다. 당시 코팅 접착제 엔지니어이기도 했던 드류는 차량 도색 작업자들이 자동차를 두 가지 색으로 칠하는데 어려워하는 것을 발견하고는 ‘마스킹 테이프(Masking Tape)’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마스킹 테이프는 다른 색깔에 페인트가 묻거나 깔끔하게 색칠하지 못하는 문제점을 보완해 페인트가 묻지 않도록 일정한 면을 가려주는 테이프다.

 흔히 부르는 '스카치 테이프'는 3M의 브랜드명이었다. [사진=픽사베이]
 흔히 부르는 '스카치 테이프'는 3M의 브랜드명이었다. [사진=픽사베이]

이때부터 실험에 돌입한 드류는 나름대로 몇 가지 ‘마스킹 테이프’ 시제품을 만들어 내기는 했으나 완성도 높은 제품 개발에는 매번 실패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처음 그를 믿고 끝까지 밀어주던 3M의 맥나이트 사장도 결국에는 ‘연구 중단’을 지시했다.

하지만 이 일은 드류에겐 오히려 개발의지를 더욱 불태우는 동기가 되었다. 남들 몰래 근무 외적인 시간까지 투자하며 불철주야 마스킹 테이프 개발에 매달렸고, 마침내 그는 1925년 자동차 도료용 마스킹 테이프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이어 1930년에는 방수 포장 테이프를 만들어달라는 주문을 받고 마스킹 테이프 개발에 들어간 기술을 활용, 오늘날의 ‘스카치 테이프’의 모습을 완성하기에 이른다.

기름, 합성수지, 고무 등을 이용해 투명의 접착제를 만들고 뒤에 셀로판을 입힌 ‘스카치 브랜드 셀룰로오스 테이프(스카치 테이프의 원래 이름)’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 상품 하나는 당시만 해도 변변한 수익모델이 없어 고전하던 3M에게 글로벌기업으로 탈바꿈하는 ‘단초’ 역할을 했다.


◆ "원하는 일에 업무시간의 15%를 맘껏 써라"


특히 미국 경제공황의 그림자가 엄습하기 시작하던 1930년대 초부터 일반 소비자들 사이에 ‘사용하던 물건을 버리지 않고 다시 쓰자’는 움직임이 일면서 스카치 테이프는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생활용품을 재활용하는 방법을 궁리하던 소비자들이 못쓰게 된 물건들을 수리하는 중요한 도구로도 사용하는 등 점차 상용범위가 다양해진 것이다. 매출증가는 자연스레 뒤따를 수밖에 없는 일. 천문학적인 금액의 돈을 3M은 벌어들이기 시작했다.

당시 최고경영자였던 맥나이트 사장은 스카치 테이프의 이런 성공에 고무되어 향후 자신이 회사를 35여년간 이끌어 가는데 핵심 ‘경영철학’이 되어준 ‘15% 룰’을 만든다. 자기가 원하는 일에 업무 시간의 15%를 마음대로 쓸 수 있도록 한 것이 바로 ‘15% 룰’. 드류에게 마스킹 테이프에 대한 연구개발을 중단시켰음에도 그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일에 몰두해 성공했던 사실을 자신의 경영철학과 3M의 정책으로 승화시킨 셈이다.

맥나이트의 신 경영철학인 이 ‘15% 룰’은 이후에도 3M이 ‘혁신의 대표기업’으로 성장하는데 견인차 역할을 했고, 20세기가 채 끝나기 전에 세계 80위권의 우량 기업으로 발돋움하는 일조했다..

3M의 브루킹스 S.D. 공장. [사진=3M 홈페이지]
3M의 브루킹스 S.D. 공장. [사진=3M 홈페이지]

당시 미국의 <포츈>지는 3M을 매년 가장 명망 있는 기업의 상위권에,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즈>는 ‘세계에서 가장 존경 받는 50대 기업'으로 선정했다. ‘스카치 테이프’에서 자신만의 경영철학을 찾은 맥나이트는 이후 종업원들에 자발성과 혁신을 장려하는 3M 비즈니스 문화도 만들어냈다.

그는 주변에서 경영의 기본 방침을 묻기라도 하면 으레 다음과 같이 대답하곤 했다.

“누군가 실수를 저질렀을 때 이를 심하게 비판하는 경영진은 종업원의 자발성을 죽이는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기업이 계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자발적인 직원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얘깁니다.”

경영 철학은 최고 경영자의 머리와 가슴에서 나오기도 하지만 때로는 이처럼 자신이 사업을 펼치는 도중에 일어나는 ‘사건’과 ‘이슈’ 속에서도 도출된다. 철학을 통해 경영을 얻기도 하지만 경영을 하다보니 자연스레 철학의 개념을 깨닫고 이를 재활용해 경영자의 시각을 넓히기도 한다는 말이다.

김진욱 뉴스캔 발행인
김진욱 뉴스캔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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