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사에서 후발주자였던 '2등 기업'이 업계 '1위 기업'을 따돌리고 정상을 차지한 데에는 경영진의 차별화 전략이 큰 역할을 했다. [일러스트=프리픽]
 글로벌 기업사에서 후발주자였던 '2등 기업'이 업계 '1위 기업'을 따돌리고 정상을 차지한 데에는 경영진의 차별화 전략이 큰 역할을 했다. [일러스트=프리픽]

성경에 이런 말이 있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리라’라고. 이 의미를 기업시장에 접목해보면 ‘후발주자가 노력하면 선발주자를 이길 수 있고, 선발주자도 방심하면 후발주자에 밀릴 수 있다’ 쯤 되겠다.

우리가 태어난 것이 우리의 선택이 아니었던 것처럼 기업 경영에서 후발주자들은 선발주자를 뒤따르는 구도 속에서 경영을 시작할 수밖에 없다. 달리 생각하면 후발주자들만이 느끼는 첫 ‘난관’이자 ‘위기’인 셈이다.

하지만 기업역사 속에서 ‘1위 기업’을 향한 만년 ‘2위 기업’들의 반란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 펩시>코카콜라... 탄산보다 웰빙음료

세계적으로 ‘콜라전쟁’을 일으키며 100년 동안이나 코카콜라의 뒤만 쫓았던 펩시콜라가 정상에 올랐을 때 ‘118년 만의 1위 등극’이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부동의 1위 코카콜라를 2004년도 들어 매출로(292억달러>219억달러) 뒤집더니 2년 뒤인 2006년에는 순익(56억달러>50억달러)으로 눌러버린 것이다.

당시 펩시콜라의 성공을 이끈 것은 이 회사 경영진들의 과감한 발상전환에 있었다. 탄산음료 시장에서는 코카콜라의 아성을 무너뜨릴 수 없다고 판단한 그들은 ‘비탄산음료’로 주력상품을 전환했다. 

 펩시콜라는 탄산음료 시장에서 코카콜라의 아성을 무너뜨릴 수 없다고 판단해 ‘비탄산음료’로 주력상품을 내세워 1위를 제꼈다. [사진=펩시 홈페이지]
 펩시콜라는 탄산음료 시장에서 코카콜라의 아성을 무너뜨릴 수 없다고 판단해 ‘비탄산음료’로 주력상품을 내세워 1위를 제꼈다. [사진=펩시 홈페이지]

웰빙을 중시하는 소비자의 취향을 읽어 펩시는 ‘게토레이’ 같은 이온음료나 과일 천연주스 등의 비탄산음료 생산에 주력하는 등 전체매출에서 탄산음료 비중을 20%로 줄이는 대신 비탄산음료 비중을 80%까지 끌어올렸다. 

여기에 피자헛, KFC, 타코벨 등 외식업체와도 손잡고 코카콜라와 우회적으로 승부를 걸었다. 특히 미국 스낵의 60%를 점유하고 있는 프리토레이와 기능성 식품 퀘이커오츠사를 과감히 인수하는 등 연합전선을 펼친 것도 코카콜라를 무너뜨린 최고의 ‘공격포인트’가 되었다.

◆ HP>IBM... 하드웨어보다 솔루션

100여 년의 역사를 지니며 세계 최고의 컴퓨팅(하드웨어+소프트웨어) 회사였던 IBM도 HP의 아성에 무릎을 꿇은 케이스다. 2003년까지만 해도 이 회사는 적자상태였으며 매출액 역시 IBM의 68%에 불과했지만 2005년 2월 CEO로 부임한 마크 허드의 지휘력으로 업계 선두를 노크했다. 

그는 과감한 구조조정과 M&A를 펼치며 ‘넘버 1’에 도전장을 던졌는데, 철저한 비용절감 책을 펼친 게 주효했다. 2005년 7월 1만5300명을 감원하고 퇴직제도를 고쳐 30억달러 이상의 비용을 절감한 HP는 PC 부문에서 델의 직거래 모델을 탈피하고 소매점을 통한 전통적인 채널 전략을 취했다.

 HP가 IBM을 따돌리고 1위 탈환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드웨어 중심 탈피’ 전략이었다. [사진=HP 홈페이지]
 HP가 IBM을 따돌리고 1위 탈환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드웨어 중심 탈피’ 전략이었다. [사진=HP 홈페이지]

무엇보다 ‘1위 등극’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하드웨어 중심 탈피’ 전략이었다. 전 세계 시장의 45%를 점하고 있는 프린터의 경우 하드웨어 외에 웹 문서 인쇄를 효과적으로 지원하는 소프트웨어는 물론, PC 및 프린터·복사기 등을 관리해주는 서비스인 WMS(Workplace Management Service)를 제공했다. 또 서비스 강화를 위해 스프트웨어 업체인 머큐리인터렉티브사를 45억달러에 인수하는 등 2년 동안 30개사의 소프트웨어 업체를 인수하며 하드웨어 기업 이미지를 탈피한 것도 적중했다.

◆ 하이트맥주 〉 OB맥주... 보리보다 물

‘골리앗’을 이긴 ‘다윗’의 국내 사례로는 OB맥주를 1위 자리에서 끌어내린 하이트맥주가 대표적이다. 세계적으로 콜라전쟁이 있었다면 국내에선 맥주전쟁이 있었던 지난 1993년. 70% 이상의 시장점유율을 보이던 OB맥주(당시 동양맥주)에 비해 경쟁 브랜드였던 크라운맥주(조선맥주)는 기업 생존을 위한 최저 시장점유율이던 20% 선에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이마저도 OB맥주가 다른 대기업이 크라운을 인수해 맥주시장에 진출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일부러 내준 시장점유율에 불과했다. 그러나 하이트맥주가 출시된 지 3년이 지나자 1위 브랜드가 OB에서 하이트로 바뀌고 말았다. 40년 만의 일이었다.

 '암반 천연수'를 강조한 1990년대 하이트맥주의 신문 광고 이미지 [사진=지식창업 책쓰기]
 '암반 천연수'를 강조한 1990년대 하이트맥주의 신문 광고 이미지 [사진=지식창업 책쓰기]

하이트의 성공신화는 맥주 맛의 노하우가 ‘보리’와 ‘물’에서 기인한다는 점을 깨달은 경영진들이 ‘깨끗한 물’에 포커스를 맞추자는 전략이 들어맞은 덕이다. ‘지하 150m 천연 암반수’를 모토로 걸고 나온 하이트에 비해 ‘보리맥주’를 들고 나온 OB맥주는 그다지 소비자들의 시선을 끌지 못했다. 물론 1991년 벌어진 두산전자의 낙동강 페놀방류 사건도 결정적이긴 했다. 

◆ 다시다 > 미원... 가공보다 천연

조미료 시장에선 ‘다시다’의 제일제당 경영진이 펼친 ‘자연주의’ 전략이 대표적인 모델로 꼽힌다. 1970년대 중반에 등장한 제일제당의 ‘다시다’는 천연조미료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정상에 올랐는데, 당시 조미료 시장의 1위는 단연 미원이었다. 

 "그래 이맛이야"로 유명했던 다시다 TV 광고 한 장면 [사진=스마트인컴]
 "그래 이맛이야"로 유명했던 다시다 TV 광고 한 장면 [사진=스마트인컴]

화학조미료 시장에서 ‘미풍’이란 브랜드로 미원을 추격하던 제일제당은 이미 화학조미료의 대명사가 돼버린 미원을 당해낼 수 없자 ‘화학조미료’가 아닌 ‘천연 조미료’를 승부수로 내걸며 다시다를 출시했는데,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시기적으로 국민소득이 증가하면서 사람들의 음식에 대한 관심이 인공적인 것에서 자연적으로 것으로 넘어가던 것과도 잘 결부되었던 것이다. 

◆ 더페이스샵 > 미샤...가격보다 고급 

저가 화장품 시장의 개척자이자 절대 1위였던 미샤는 싼 가격 외에 ‘자연주의’라는 새로운 범주를 내걸고 나타난 더페이스샵에 덜미를 잡혔다. 더페이스샵의 경영진들은 미샤가 길거리의 점포를 늘리는 데 중점을 둔 것을 파악해 로드 점포와 지하철역은 물론이고 백화점이나 면세점, 대형 할인점 등에도 입점하며 ‘고급화 이미지’를 심어나갔다. 

로드샵 후발주자인 더페이스샵은 '절대 1위' 미샤가 싼 가격을 내세웠다면 '자연주의'를 내세운 고급화 전략으로 정상에 올랐다. [사진=Tattheera N]
로드샵 후발주자인 더페이스샵은 '절대 1위' 미샤가 싼 가격을 내세웠다면 '자연주의'를 내세운 고급화 전략으로 정상에 올랐다. [사진=Tattheera N]

여기에 소비자들의 접근성을 높인 전략도 취했다. 더페이스샵은 주로 지하철역 내부에 점포를 개설했는데 이는 재임대 형태로 이뤄지기 때문에 대형 화장품회사나 코스닥 등록기업인 미샤 등은 쉽게 선택할 수 없는 영업 방식이었다.

결과 더페이스샵은 창사 2년 만인 2005년에 매출 1501억원을 달성하여 단숨에 국내 화장품업계 3위에 올랐으며 2007년에는 처음으로 매출 2000억원을 넘어서며 미샤의 아성에 강력한 도전장을 던졌다. 한국 화장품 역사의 한 획을 그었던 로드샵 열풍이 지금은 추억이 된 게 안타까울 뿐이다.

김진욱 뉴스캔 발행인
김진욱 뉴스캔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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