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이야기했듯이 인종주의와 민족주의는 서구 제국주의가 식민지를 개척해 나가는데 있어서 두개의 수레바퀴 역할을 했다. 인종주의는 식민지와 노예들을 지배하고 착취하는데 정당성을 부여한 이데올로기였다면, 민족주의는 내부 국민들의 역량을 동원하는 수단이 되었다. 즉 국민들의 민족의식, 주권의식, 자부심을 갖도록 해서 국력을 최대한 끌어올리고 이를 밑바탕으로 식민지를 개척해 나갔던 것이다. 서구에서 민족주의의 탄생과정은 근대 국민국가의 탄생과정과 일치한다. 기업으로 비교하자면, 개인이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개인기업에서 불특정 대다수의
인종주의는 근대 서구에서 만들어진 철학이다. 근대 인종주의는 민족혈통주의, 제국주의와 어울어져 성장했다.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 지배, 차별을 정당화 하는 논리로 개발된 것이고, 그 지배와 착취, 차별에 대해 죄의식을 갖지 않도록 고안된 논리이다. 따라서, 지배자가 자신의 비인간적인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였던 것이다.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인간은 단 하나의 종이다. 백인종, 황인종, 흑인종으로 나뉠 수 없을 뿐 아니라, 유대인종 등이라는 말도 성립될 수 없는 단일종이 현생 인류다. 현생인류 외에 호모 사피엔스에는 여러 아종의
필자는 다문화 시민운동을 하면서 몇가지 특징적인 경우를 발견했다. 그 중 하나는 다문화 가정의 자녀로 구성된 레인보우 합창단을 운영하면서 동양인 혼혈은 거의 구분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한국과 중국 일본은 물론 동남아 결혼이주여성과 한국 남자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눈으로 구분짓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백인과 한국인 사이의 다문화 자녀도 구분이 거의 안된다. 피부가 약간 하얗고, 머리색이 약간 갈색인 점을 제외하곤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흑인과 한국인 사이의 자녀나 백인과 흑인 사이의 자녀는 어느정도
미국의 제 16대 대통령인 링컨에 대해선 수많은 전기와 책들이 있다. 어떤 조사에 의하면, 링컨 관련한 책이 1만 6천권에 달한다고 한다. 그 정도로 링컨은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추앙받고, 칭송받는 정치인이다. 우리 나라 정치인들에게 존경하는 인물을 뽑아 달라면, 둘 중 하나는 김구선생이고, 또 다른 한명은 링컨을 꼽는 사람들일 것이라는 말도 있듯이 그는 전세계 정치인들의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반하는 주장도 없지 않다. 그들에 따르면,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는 것처럼 엄청난 가난과 역경을 뚫고 성장하지도 않았으며
현재 이민 다문화국가의 대표격인 미국은 그 역사를 살펴보면 살펴볼수록 실제는 반자유주의적이고 "반 다문화적"인 역사를 걸어온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조지 워싱턴이고, 위대한 미국의 기초를 닦은 링컨 대통령이다. 이들은 널리 알려진 것과는 달리 자유를 숭상하지도 않았으며, 노예해방을 원하지도, 또 인권보다는 인종차별주의자에 가까웠다.그럼에도 사람들은 조지워싱턴과 링컨에 대해 자유독립의 정신과 노예해방의 정신이 깃든 인권주의자로 알고 있다. 그것은 역사가 승리한 자의 기록이다 보니
인류문명의 선구적 지역인 중동에서 최초의 대제국을 형성한 페르시아의 키루스 2세와 비교되는 인물이 바로 몽골제국을 일으킨 칭기즈칸이다. 키루스 2세와 칭기즈칸은 태어나고 자라던 환경이 거의 비슷했다. 다만, 칭기즈칸보다는 키루스 2세가 조금 더 나은 환경이었을 수는 있다. 왜냐하면, 태어나면서부터 목숨의 위협을 받긴 했지만, 목동과 함께 도망쳐 자라다가 아버지가 지배하던 변방 제후국의 왕을 계승한 뒤, 메디아를 장악해 나갔기 때문이다. 키루스 2세의 성장과정과 칭기즈칸의 성장과정은 매우 닮긴 했지만, 칭기즈칸의 성장과정은 키루스 2
인류 역사를 돌아보면, 역사의 흐름을 바꾼 영웅들이 존재한다. 초라한 유목민족의 후예로 전세계 패권을 차지한 징키스칸이 있었고, 프랑스령 조그만 섬 출신인 코르시카의 나폴레옹이 그랬다. 또한 그리스 북쪽의 조그만 마케도니아 왕국의 알렉산드로스가 있었고, 별 볼일 없는 시골 이장노릇하던 한나라 고조 유방이 그렇다. 또한 지금의 위대한 미국의 초석을 놓은 에이브라함 링컨도 시골 촌뜨기에 선거에는 나가면 떨어지는 초라한 법률가에 불과했다. 이렇게 별 볼일 없이 태어나서 성장했지만, 인류역사에서는 그 이름들을 빼놓고 역사를 이야기할 수 없
21세기 다문화 국가의 발전모델을 거론하며, 반드시 거론되는 나라들이 있다. 바로 캐나다와 오스트레일리아(호주), 그리고 뉴우질랜드가 그것이다. 이들은 모두 영연방의 일원으로 되어 있지만, 서서히 자치권 확대의 과정을 거쳐 지금은 선진 다문화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1. 캐나다 그 중 캐나다의 형성과 발전은 미국과 떼어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 즉, 미국보다 아메리카 인디언이 먼저 정착했고, 14세기 전후에는 덴마크의 바이킹이 탐험과 주거지를 갖고 정착하기도 했지만, 본격적으로 유럽이민이 유입된 것은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
인류 역사상 로마와 당나라 같은 문명의 꽃을 피운 다문화 국가들이 많지만, 그 어떤 다문화 국가도 미국과 같은 존재는 아니었다. 로마와 당나라 등은 초기 자신들만의 종족을 중심으로 국가를 형성하다가 점차 강성해지면서 "포용적인 다문화 국가"로 성장했던 예이다. 하지만 미국은 처음부터 다양한 국가 출신의 이민자들이 중심이 되어 대륙회의라는 것을 거쳐 아메리카 합중국으로 출발했다. 미국의 이주민 역사를 보면 매우 다양한 경로를 거쳐왔다. 처음 아메리카대륙에 뿌리를 내린 사람들은 아메리카 인디언들이다. 이들이 아메리카대륙에 흘러들어오
중국과 동양문명에서 가장 찬란한 꽃을 피운 것은 당나라시대였다. 지금도 중국 정부는 자신들이 지향하는 사회를 "소강사회(공자에 의하면 백성들이 충분히 먹고 살며 법과 질서가 바로 선 사회로 대동사회 전단계를 의미한다)"로 지칭하고 있지만, 최근 들어 일대일로를 강조하며 "당나라 시대"를 거론하고 있다. 그만큼 중국에서는 동양문명의 꽃을 피운 시대를 당나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당나라는 위나라 - 수나라를 계승하며 만들어진 나라였다. 당나라를 세운 이연, 이세민 부자는 수나라의 귀족출신이었다. 따라서 위나라와 수나라가 선비족
동서양을 망라한 인류역사에서 가장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던 국가들은 하나같이 다문화를 포용한 국가였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다문화 포용성"이 그 나라를 위대하게 만들었고, 찬란한 문명을 만들었던 토양이었다. 물론 그 반대도 있다. 즉, 그 위대했고 찬란했던 국가들이 망하게 된 원인도 바로 다문화 정책의 문제였던 것이다. 다시말해, 동서양에서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던 국가들은 모두 다문화 포용성이 높은 나라들이었지만, 그 나라들이 망하게 된 것도 다문화 문제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우선 가장 위대한 문명을 꽃피웠던 로마를 보자.
흔히 사람들은 현 시대를 지구촌사회, 글로벌 시대라고 말한다. 이 말은 무슨 일을 하나 하더라도, 무슨 공부를 하더라도 "국제적인 관점"을 가지고 일을 시작하고 진행해야만 한다는 말일 것이다. 이 말을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필자의 지인이 화장품을 만드는 회사를 만들어보려고 했다. 요즘엔 화장품에도 수많은 종류가 있다. 그래서 그 지인은 화장품 회사를 차리기 전에 중국의 화장품 시장 추세, 동남아의 화장품 추이를 살펴봐야 했다. 그리고 최근 잘 나가는 얼굴 팩 제품을 생산하기로 했다. 그리고 중국시장,
지난 번에 한국인은 유전적 형질이나 생리적 형질로 볼 때 하나의 혈통이 아니라, 대륙과 해양, 남방과 북방에서 한반도로 이주한 이주민 집단임을 이야기했다. 그럼에도 하나의 민족이라는 동질성을 갖게 된 것은 오랜 세월동안 공동의 주거지를 갖고, 언어와 문화적 소통을 통해 동질성을 획득했기 때문에 '하나의 민족'이라는 의식이 형성되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같은 지역에 오랫동안 함께 거주했어도 동질의 민족의식을 갖지 않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면 스페인의 바로셀로나 지역이 그 예이다. 심지어 그들은 언어도 다르고, 민족도
우리들은 한반도에 거주하는 사람들, 또는 재외동포들에 대해 '단일민족'이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다. 혈통적으로 문화적으로 동질적이고 고유한 정체성을 소유한 단일 민족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이것에 대해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즉, 서양사람들이나 흑인들에게 물어보았더니, 한국과 일본, 중국 사람들에 대해서 구분하지 못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일본인들에게 한국인의 구성에 대해 물어본 결과 크게 네가지 부류로 구분을 지었다고 한다. 하나는 몽골과 북방유목민족 형이라는 대답이다. 즉, 한국인 중에는 몽골
지난 번에 "다문화는 컨텐츠다"라는 글을 통해 다문화가 가지고 있는 속성을 이야기했었다. 즉, 글로벌화라는 외형적이고 범주적인 규정과 달리 글로벌의 또 다른 면인 "다문화"라는 용어는 내용이 중심을 이루는 말임을 이야기했다. 그래서 글로벌화는 주로 형식적이고 범주적인 접근으로 해결이 가능하지만, 다문화는 그보다 심층적이며, 내용적인 세밀함을 가지고 접근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여기서 또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즉, 외형적이고 형식적인 글로벌화는 결코 생산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생산적인 것
우리나라에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된 종교가 들어온 시기는 대체로 임진왜란 후, 또는 조선후기로 알려져 있다. 임진왜란 시기에 왜군이 사용하던 조총과 함께 포르투칼 선교사들이 들어왔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임진왜란 때 선교가 이뤄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천주교가 본격적으로 전래된 것은 지금부터 200년 전 즈음에 청나라에 주재하는 프랑스 선교사들과 연계되어 평안도 등 서북지방에서부터 전래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 기독교는 그보다 훨씬 더 뒤에 들어 왔다. 미국인 선교사인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등이 제물포에 도착하면서 본격적으로
다문화 이야기를 하면서 곧 잘 등장하는 인물이 가야 김수로왕의 부인인 '허황옥'의 설화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허황후는 아유타국의 공주로 김해 가락국에 도착하였고, 수로왕은 이를 미리알고 기다려 왕비로 맞이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허황후의 출신지 아유타국에 대해선 여러가지 설이 난무하고 있다. 하나는 인도의 아요디야 왕국이라는 설이 있고, 두번째는 아요디야 왕국의 식민지였던 타이 메남강 근처의 아유티야 라는 설도 있다. 또 다른 소수 설로 일본이라는 이야기도 돈다. 허황옥의 도래와 관련해서는 여러가지 윤색과정을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배우면서 곧 잘 하는 말이 있다. "한글은 너무도 쉬운데, 한국어는 너무 어렵다"는 말이다. 즉, 한글은 너무도 과학적이고 규칙적이어서 글을 배우기가 굉장히 쉬운데, 막상 한국어를 이야기하려면 각종 조사와 존칭어, 거기에 형용사와 동사 중심의 언어라서 뜻을 이해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흔히 우리끼리도 "우리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흔히 한다. 그 만큼 한 사람의 말을 이해하기까지엔 인내심이 필요하고, 또 말끝에서 반전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아, 끝까지 들어봐야 그 뜻을 헤아릴
한국의 성씨가 처음 등장한 것은 삼국사기에서 전하는 것과 다르다. 즉, 김부식의 삼국사기에서는 박혁거세가 '박'에서 나왔기 때문에 '박씨'성을 갖게 되었고, '황금 알'에서 나온 김알지가 김씨성을 삼게 되었다고 서술하고 있지만, 실제 한반도에서 '성씨'가 쓰인 것은 그보다 한 참 뒤였다. 역사의 기록에 의하면 한국에서 성씨가 쓰여진 것은 백제가 가장 빨라 '근초고왕'때 였으며, 그 뒤 고구려에서는 장수왕 때, 신라에서는 진흥왕 때 쓰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
다문화 시민운동을 하다보면, 나도 사람이다보니 난감하거나 화가 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중 하나는 기껏 애써서 기업 후원, 개인 후원 받아 다문화 자녀들 교육 기회 주려고 했는데, 스스로 부담해야 할 몫에 대해 불만을 터트리는 사람들 때문이다.예를 들어, 지난해 mbc에서 나를 비난했던 대목도 바로 그런 것이다. 즉, 2016년 유엔본부 세계평화의 날 기념식 초청을 받아 유엔에 가면서, 기업 후원도 받고‥ 공연에 가는 아이들에게도 돈을 받아 이중적으로 착복을 했다는 비난이다.하지만, 다문화센타를 운영하는 원칙 중에 하나가 "무조